기독교윤리실천운동 Untitled Document
 
 
     
 
아이디 비밀번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아래의 글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시작」(손봉호, 1994)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전문의 내용을 보기 원하시는 분은 옆의 버튼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장기려, 이명수, 이만열, 최창근, 이세중, 김인수,
손봉호, 원호택 등 38명의 기독교인들이 발기인이 되어 1987년 12월에
정식으로 발족한 모임입니다.

이 운동은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에 매주 목요일 점심 시간에 모여 성경공부를 하던 몇몇 그리스도인 교수들이 1987년 봄에 처음으로 구상하였습니다.
5공말,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고 헌법 개정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때였습니다.

   
그때 우리 사회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대개 세 가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고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 평등을 위하여 구조 개혁을 시도한 비교적 진보적 기독인들의 태도였습니다. 그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섰던 사람들은 이원론적 경향을 가졌던 극보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교회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개인적 신앙 생활과 전도에 모든 관심을 기울였으며 평등과 민주화 등은 세속적인 문제로 신앙인이 관심 쓸 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극단 사이에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부의 비민주성과 사회의 불평등이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옳지 못함을 알았지만, 그것들을 고치는 방법이 반드시 급진적이라야 하느냐 하는데 회의를 가졌습니다. 더구나 혁명적, 나아가서 폭력적 방법으로 민주화와 평등을 성취한다는데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이들은 급진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 의하여 불의와 타협하고 심지어 불의의 소산에 참여하는 비도덕적인 사람들로 낙인찍히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보수주의자들은 급진적인 기독인들을 혁명적이고, 폭력을 용인하며 심지어는 용공적이라고 맞섰습니다.
   

한국 교회의 이런 모습은 다소 변형되긴 했지만 대학의 그리스도인 학생들에게도 반영되었습니다. 상당수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민주화와 사회평등을 위한 급진적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온건 그리스도인 학생들은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심한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대학 사회 전체가 부르짖는 민주화와 사회평등 이상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그것을 이룩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급진적 방법에 쉽사리 동참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과연 법 질서를 어기고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가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은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한 이상도 없고 용기도 없는 비겁한 젊은이들로 취급되는 것이 싫었고 억울했습니다. 더군다나 불의에 대항하여 투쟁하지 않는 자는 그 불의에 동참하는 것이란 흑백논리가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설득력있게 들렸고 그것이 그들의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갈등은 구태여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여야 할 의무를 가진 기독인 교수들에게도 이것은 결코 가벼이 취급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기독 교수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며 토론했으며 몇몇은 좀 더 적극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한 한 흑백논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민주와 평등의 사회 이상을 달성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여러 가지 방법이 병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와 사회 평등 등 사회 이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개개인의 도덕적인 삶과 윤리적 모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구조가 훌륭하더라도 그 구조 아래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이지 못하면 좋은 구조는 아무 소용이 없고,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 모범을 보이지 못한다면 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 아무 비판도 할 자격이 없음을 자각했습니다. 구조 개혁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자신들의 삶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시작된 것이 바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입니다.
 
그것은 구조 개혁 운동의 대안이 아니라 보완이고 그것은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담당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도 인격적인 하나님과 그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성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기독교적 인간관의 핵심이며 바로 이 점에서 기독교적 인간관은 다른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인간관과 구별됩니다.


 

 

그 때문에 개인의 책임을 구조로 환원시키는 이론은 그것이 아무리 이론적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기독교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개신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인 “믿음을 통한 구원”을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윤리적인 행동과 삶을 강조하나 그것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어떤 보상을 위한 공로도 될 수 없음을 깊이 인식합니다. 다만 윤리적인 삶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며 믿음의 외적인 표현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올바로 살고 성경이 명령하는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교회와 사회를 윤리적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눅17:10)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