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천하는 자발적불편”
(2019수기공모 당선작)
이세미
얼마 전부터 시내버스에서 공공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보입니다. 기계에 대해서 무지한 저는 집에 있는 와이파이공유기만 생각하며 이렇게 광범위하게 이동하는 버스에도 가능한 일인가 놀랐습니다. 참 기술이라는 것은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제가 다니는 거의 모든 곳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집은 물론 동네 도서관, 놀이터, 카페, 식당…주요 이동수단인 지하철과 버스에서도 와이파이가 됩니다. 기술이라는 것은 분명 생활에 많은 유익을 주지만 그 이면엔 부작용들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버스의 안내문을 보고 얼마 되지 않아 공공와이파이, 블루투스를 이용한 해킹피해에 관한 뉴스를 보며 편리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편리’는 ‘편하고 이롭다’는 뜻입니다.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이 불과 20-30년 전과 비교해 봐도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로워졌는가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 2년 전 바다쓰레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본 후 전 큰 충격을 받았고, 제 생활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라는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에 분노하며 아이들을 자연에서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쉬는 날이면 공원이나 숲으로 찾아다니곤 했지만 관리사무소를 통해 잘 관리되고 있던 그 곳들은 사실 진짜 자연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자연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훼손되어지고 있는 상황에 저는 저의 책임은 뒤로 감춘 채 내가 보는 것만이 진짜인 것처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직장과 육아를 겸한다는 ‘맞벌이’를 든든한 핑계 삼아 생활에 온갖 편리함을 배치해놓고 있었습니다. 손이 닿는 곳마다 바로 쓸 수 있도록 곳곳에 물티슈를 놓았고, 일회용 행주, 수세미, 걸레는 기본이요 레토르트 식품, 포장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일도 수시로 있었습니다.
정말 편했지만 이롭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해선 안 된다’라는 의식 후 처음 시작은 단순히 생활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이 된 것을 피하기 위해 주머니와 통을 들고 집 앞 마트를 지나 15분 거리의 재래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니고, 일회용 생리대, 물티슈 등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여겼던, 생필품이라고 착각하던 것들을 끊어버렸습니다. 갑작스런 이러한 변화에 주위에선 산에 들어가겠다, 자연인으로 살 것이냐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저에겐 꽤나 절박한 일이었습니다.
이후 관심을 갖고 찾아본 책이나 강의, 인터넷을 통해 바다쓰레기, 기후위기, 생활 속 화학물질 문제 등 다양한 환경문제들과 그로 인한 인권문제들을 알게 되었고 이런 문제들이 결국 전부 연결성을 갖고 있으며,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너무 편한 것만 쫓는다’ 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산업화 이후 우린 굉장히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200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일어난 변화들은 지난 수천년동안 일어난 변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발전’이라 이름 지을만한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을 손해 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젠 최선의 노력으로 겨우 유지상태 정도만 만들 수 있다는 환경 문제 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이 고통 받는 정신적 문제, 관계의 단절, 점점 더 강한 내성을 갖는 질병들. 우린 편리함이 아닌 편함을 쫓아 점점 조급해지고, 참을 수 없게 되어 당장의 이 불편함만 해소할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만하다 믿게 되어버린 듯 합니다.
모든 편함을 거절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서만 해도 세탁기와 보일러, 냉장고 등은 우리를 많은 노동과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은 감사함으로 받고, 말 그대로 ‘과도한’ 편함을 거절하기로 했습니다. 되도록 걸어 다니고, 국내 생산된 식품-제품을 구입, 가전을 최소화하고 대기전력을 차단해 전기사용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또 자연으로 흘려보냈을 때도 해가 없는 성분의 제품을 사용합니다. 세제로 사용할 수 있는 열매를 쓰고, 생분해성 플라스틱 수세미보단 천연수세미를 사용하는 것처럼 진짜 생분해가 가능한 제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온라인 대신 지역매장을 주로 이용하고, 의류구입을 최소화 하며, 필요시 중고 물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합니다. 큰 변화 중 하나는 소비에 있어 생산부터 처리까지의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습관을 갖게 되니 자연스레 충동적 소비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엔 한계가 있어 기관, 기업 등에 개선점을 발견하면 메일이나 홈페이지, 어플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건의를 합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 삶에 주신 유익은 참 많습니다. 소소하게는 수시로 쓰레기를 정리해서 버려야했던 수고가 줄었고, 또 포장된 가공식품을 현저히 줄이며 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게 되었고, 좀 더 많은 화학물질에서 멀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한다 생각하며 큰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살림이 정말 내 가족과 환경을 살리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비록 나 한 사람이 노력 한다고 해서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칠 순 없지만 이런 변화들이 저에겐 너무 감사하고 소중한 것들입니다. 이런 변화는 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스스로를 독려하고 지속성을 갖기 위해 개인 sns와 운영 중이던 온라인카페에 위클리미션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배달음식 안 먹기’, ‘물티슈 안 쓰기’,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과 같이 매주 한 가지 미션을 정하고, 의미를 설명합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생활의 문제들을 돌아보며, 한 주 동안 개선방법을 찾아보고자 출발한 것에, 공감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함께 하기 시작했고, 50주 가까이 계속되며 미션으로 실천했던 부분을 넘어 삶 전반의 긍정적 변화를 이야기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단순히 환경을 지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느끼는 이러한 변화들이 있기에 약간은 번거롭고, 불편한 생활을 더 기쁘게 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편리함이란 것은 잘 분별하지 않으면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통념 속에 알게 모르게 잠시 동안의 편함과 나의 건강, 노력, 재산, 가치, 미래를 맞바꾸고 있는 밑지고 있는 거래일 수 있습니다.
2019수기공모 당선작 “내가 실천하는 자발적불편” – 이세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