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가 본-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몬드(기윤실 청년센터WAY 간사)

 

 

“망했다. 완저이(완전히) 망했다.”

영화PD 이찬실. 나이 마흔. 돈도, 집도, 남자도, 새끼(자녀)도 없음. 평생 꿈이라고 믿고 모든 걸 바쳐 달려온 영화업계에서 (내 잘못도 없는데!) 강제로 실직상태됨.

그렇다. 아무래도 찬실이는 정말 망한 것 같다. 찬실이 스스로도 어이없는 상황에 망연자실한다. 아니 그보다 앞서 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2019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2020 백상예술대상, 부일영화상 등등을 받으며 독립영화계의 라이징 스타로 승승장구하나 싶었으나 타이밍도 절묘하게 2020년 3월 개봉을 앞두고 코로나 19가 터졌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정말 복이 많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것도 ‘복덩이’다.

 

 

영화PD인 주인공 찬실은 지금까지 항상 같이 일하던 영화감독의 죽음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실직자 신세가 되었다. 10년동안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일만 하며 살았고 앞으로도 평생 영화를 만들며 살 줄 알았건만 본인의 잘못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너무나도 어이없게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러나 주저 앉아 슬퍼하고만 있기에는 당장의 현실의 문제가 크다. 정말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돈 한푼 없는 상황 속에서 친한 배우인 ‘소피’의 가사도우미를 시작하기로 한다. 그러다 소피의 불어선생이자 단편영화감독인 ‘영’을 만난다. 10년동안 영화만 한다고 연애도 못했는데 왠지 이 남자,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현실적인 이 영화는 찬실의 눈에만 보이는 ‘장국영’이 등장하면서 비현실적인 ‘비밀’이 생긴다.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의 빈방에서 <아비정전>의 장국영처럼 흰 런닝셔츠와 트렁크를 입은 남자가 나와 자신은 장국영이며 보이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라고 소개한다. 당황스러운 등장이지만, 인생의 전부였던 영화를 그만 두고 보잘 것 없고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하며, 영화를 다시 할 수 있을지, 다시 해야할지를 고민하는 찬실의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장국영은 찬실의 연애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정말로 원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보챈다. 찬실이 자신의 전부였던 영화를 그만두겠다며 옛날부터 모아온 영화잡지, 책, 비디오를 버리려고 하자 그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눈물까지 흘린다. 찬실이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였던 영화 <집시의 시간>(1989)을 다시 떠올려보게 하면서, 영화가 삶의 모든 목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찬실은 삶과 꿈의 주도권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지 않기로 결심한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이에게 ‘그래도 괜찮다’며 텅빈 것만 같은 시간들을 버터낼 수 있도록 응원과 위로를 건낸 것이 ‘장국영’, 즉 찬실이 사랑했던 ‘영화’였다. 찬실에게 영화라는 존재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살아갈 원동력을 주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세상의 시선은 찬실의 삶을 ‘너무 늦었고 보잘 것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실은 꿋꿋하게 살아갈 희망을 발견한다.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갑작스러운 사태가 불거지면서 청년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있었던 꿈을 잃을 뿐만 아니라 없던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어느 시대보다는 환경이 나으니 희망을 가지라는 섣부르고 오만한 위로를 건네고 싶지는 않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지난 해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가 늘었고, 올 1~8월 자살을 시도한 20대 여성은 전체 자살시도자의 32.1%로 전 세대 통틀어 가장 많았다고 한다.1) 이는 다른 청년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같은 20대 청년으로서, 다만 이 지난한 시대를 함께 ‘존버’하며 끝까지 곁에 남아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오늘도 청년센터WAY가 청년들의 장국영이 되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되새긴다.

 

 

영화는 쇼팽의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한다. 이어 (곧 운명을 달리할)감독은 말한다. 

“영화는 숫자가 아니야. 영화는 별 하나, 별 두개도 아니야…”

 

영화는 초겨울에 시작해 한겨울을 지나 봄에 가까워져간다. 찬실이는 거듭 말한다. “망했다 완저이(완전히) 망했다” 하지만 이삿짐을 나르던 영화하는 후배는 ‘그래도 망한건 아니’라고 말한다.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돈 한푼(을 비롯한 집도, 남자도, 새끼도)없는 찬실이는 이제 할 일이 많아졌다. 계속 이렇게 추워지면 얼어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찬실이는 겨우내 모기도 다 죽었건만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 집주인 할머니의 마당에 있던 화분들은 거의 다 죽고 그 마저도 죽을뻔했던 하나 남은 앙상한 화분은 집안에서 마침내 꽃을 피운다.

 

우리에게도 따뜻한 봄날이 마침내 오기를. 그때까지 이 기나긴 겨울을 함께 버텨주기를.

 

 


1) 임재우, <‘조용한 학살’, 20대 여성들은 왜 점점 더 많이 목숨을 끊나>, 한겨레신문, 2020-11-13,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9898.html#csidxc4ec72ad0825e719fffcffe398edd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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