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스트 대원들이여? 긴급 전쟁 발생, 즉각 전투에 합류하라
김영선
석 달 전 환경부에서 주최하는 ‘환경 도서 독후감 대회’에 응모해서 몇 권의 환경 도서를 읽었다. 당선되지도 못할 글쓰기 실력으로 도전장을 내밀다가 환경부에 낚였다. 환경 도서를 읽다가 나처럼 지독한 게으름뱅이인 귀차니스트가 환경 전투 대원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는 가는 아이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환경을 위해 한 걸음씩 걷는다. 귀차니스트에게 한 걸음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아는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19보다 더 위험한 건 ‘환경전쟁’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투가 치열하다. 환경부에 낚인 나는 환경전쟁의 전투 대원으로서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첫째, 계단을 오르내리기다. 코로나 19로 살쪄서 고민이었는데 잘 됐다. 확 찐 살을 뺄 절호의 찬스다. 천부적 귀차니스트에겐 5층 계단도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내리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가족은 엘리베이터를, 나는 계단을 이용하다가 가끔은 가족들이 나를 따라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이럴 땐 전투 대원을 이끄는 대장이 된 듯 기분이 좋다.
둘째, 분리수거다. 아, 그리운 귀차니스트여, 영원히 그리워라. 얼렁뚱땅 대충 설렁 던져둔 분리수거가 서서히 정교해져 간다. 양파, 달걀, 조개류, 견과류 껍질과 뼈다귀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물건마다 삼각형 모양의 재활용을 확인하고 비닐류의 이물질을 제거한다. 금속류와 플라스틱이 분리하고 분해가 되지 않으면 쓰레기통으로 넣는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려니 머리 아프지만, 기본 중에 기본이니 기어코 넘으리.
셋째, 설거지 빼앗기다. 가족에게 잔소리하고 또 해도 요지부동이다. 남편과 아들에게 퍼붓는 폭풍 같은 잔소리도 쇠귀에 경 읽기다. 모범을 보이느라 구시렁거리며 설거지를 빼앗는다. 물을 잠그고 세제를 아주 적게 묻히고 닦은 후에 물로 헹구라며 시범을 보인다. 설거지는 내 임무가 아니다. 지구야, 전투가 종료되면 멋진 훈장을 내려다오.
넷째, 아들 말리기다. 코로나 19로 남편, 나, 아들, 딸이 한 집에 북적거린다. 허구한 날 반찬 타령이다. 코로나 19라는 긴급 상황이니 김치나 두어 가지 반찬으로 살자고 하니까 가족이 수긍하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식당을 못 가는 상황이기에 꽃게탕, 보쌈, 순댓국 등의 일품요리를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3개월 전만 해도 마음껏 시켜 먹었지만 이젠 안 된다. 아이스 팩과 스티로폼, 박스 등의 넘쳐 나는 쓰레기를 두고 볼 수 없다.
“안 돼. 다시 생각해 봐. 냉동실에 먹을 게 있잖아. 마트에서 사 올게.’
20대 건장한 청년과 싸우는 건 쉽지 않지만, 냉동식품 주문량이 팍 줄었다. 환경전쟁 전투 대원 임무 완료.
다섯째, ‘플렉시테리언’으로 산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이라는 30쪽 내외의 그림책을 읽고, 플렉시테리언임을 선포했다. 가족은 ‘고기를 좋아하는 엄마가 설마 안 먹겠어?’라는 눈빛으로 쏘아본다. 나도 자신은 없지만, 시작이 반이니 일단 내지른다. ‘육식을 멀리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며칠을 지내니 먹을 게 없다. 빈약한 식탁에 내 젓가락이 갈 곳이 없다. 이러다가 지구를 구하기 전에 내가 굶어 죽겠다. 전투 대원이 잘 먹어야 전쟁을 이끄는 법. 살기 위해 시금치 무침, 연근조림, 고추 장아찌, 샐러드 등을 만들었다. 직장에서는 확실하게 고기를 삼가지만, 집에서는 아주 조금 육식을 한다. 요리는 내 체질이 아니지만, 요리를 할 수밖에 없다.
여섯째, 환경 정보 수집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환경의 심각성과 문제점, 대응방안을 알면 전투에 유리하다. 환경에 관한 책과 동화, 그림책을 읽는다. 환경 블로그를 넘나든다. 블로그의 환경 정책도 둘러본다. ‘환경’을 검색해서 영상을 시청한다. 환경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때야, 속히 오라.
일곱째, 줍깅이다. 쓰레기 줍기와 조깅이 합쳐진 말이다. 귀차니스트에게 산책이나 운동은 끔찍하다. 나가기도 귀찮고 사람들도 두렵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아들을 꼬드겨서 나간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서서히 늘리리라.
여덟째, 실내 온도는 낮추고 옷은 두툼하게 입기다. 아, 무겁고 불편해라.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기세를 떠올리자. 잊지 말자, 전시상황.
아홉째, 전기코드 뽑기다. 대기 전력 소모가 크다고 한다. 전기 코드 뽑기와 같은 작은 일이 더 실천하기 어렵다. 다시 보자, 전기코드.
열째, 떠벌리기다. ‘나는 환경운동가입니다.’, ‘나는 플렉시테리언입니다.’라고 떠든다. 가족과 친구, 직장에서 떠벌리느라 입이 아프다. 조용히 늙고 싶었는데… 일상을 올리는 블로그에 ‘환경’에 대해 올리느라 손이 아프다.
이 모든 일이 재미있냐고? 오우 노노노, 결코 아니다. 재미없다. 귀차니스트에겐 맞지 않는다. 환경운동은 내게 올림픽 선수가 선수촌에서 코치가 무서워 훈련받는 것과 같다. 무엇이 무섭냐고? 지구의 기온이 오르면서 빙하가 녹고 땅이 사막화되면서 기후 난민이 발생하는 게 무섭다. 육식 증가와 무차별적 개발로 급격히 사라지는 푸른 숲, 바다가 쓰레기 산으로 변하는 것, 농약과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불안전한 식생활, 에너지 위기가 겁난다. 환경문제는 코앞까지 들이닥친 코로나 19보다 더 무섭다.
느린 거북이걸음처럼 환경 전투대원으로서의 임무 수행이 뿌듯해진다. 환경운동이 유쾌해진다. 줍깅 친구도 생겼다. 걸으니 몸이 가볍다. 고기를 줄이니 속이 편하다. 전기를 아끼니 돈이 된다. 환경을 공부하니 치매가 예방된다. 설거지를 빼앗으니 가족이 반긴다. 무엇보다 초록별 지구가 반긴다.
아, 세상의 모든 귀차니스트여? 긴급 전쟁이 발생했다. 환경 전선이 치열하다. 속히 전선에 복귀하라.
“귀차니스트 대원? 환경전쟁 전선에 이상 있나?”
“네, 이상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