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제로웨이스트, 자발적 불편의 연대를 찾아서…

 

김희경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자발적불편 운동 기획위원

가치가게 운영자)

 

처음 본 낙타

“사람들이 낙타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는 그 큰 몸집에 공포심을 느껴서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낙타가 온순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두려움이 사라져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이 동물이 무슨 짓을 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이 동물을 깔보게 된 사람들은 굴레를 씌운 후에 아이들에게 주어 몰고 다니게 했다.” 이솝, 이솝우화전집, 현대지성, p. 185

 

인간의 삶에서 두려움이 사라질 때,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우리 선조들의 삶의 근간에는 늘 ‘종교’가 있었고, 대 자연의 모든 것을 신으로 떠받들며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떨던 시대가 있었다. 기독교는 그러나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다스리고 관리할 책임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늘 그렇듯, 인간의 악한 본성은 이 뜻을 왜곡하고 편리하게 제멋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정복’과 ‘다스림’이라는 용어로, ‘이용’과 ‘파괴’를 합리화하였고, 이제는 아예 하나님이 없다, 혹은 마치 스스로 신이 된 것 마냥 ‘과학’을 도구로 ‘자연에 굴레를 씌워 마구 몰고 다니는’ 형국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이대로 편하게 우리가 살아간다면 지구에서 인류의 생존은 채 수십 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진단이다. 이미 해마다 멸종하는 동식물들이 줄을 이루고,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바다는 ‘플라스틱 스푸’가 되어버렸다는 포스터를 보기도 하였다. 이제는 해산물 구입에 앞서 ‘미세플라스틱 검출’ 여부가 중요한 안전기준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놀랍게도 이런 위협은 우리의 평소 작은 습관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원래는 적은 자원으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사용하도록 개발했다는 플라스틱 제품들이 언제부터인가 ‘1회용’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씻지 않아도 되고, 보관하지 않아도 되고, 불편하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게, 언제 어디서나 값싸게 구입해 필요를 채우고 버리면 되는 것들로, 그렇게 우리의 작은 ‘편리’에 대한 욕망을 채우는 방식으로 이 ‘썩지 않는’ 물질들이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제는 조금씩 의식적으로 이런 값싼 행동을 제한해 보려는 움직임이 생겨나지만, 그에 대한 대안은 생분해 물질을 30% 섞은 비닐, 재사용되지 않는 유리병, 비닐 막을 두른 종이테이프, 너무나도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1회용 종이박스들, 그리고 여전한 과대포장…

마치 두터운 벽처럼 뭔가 해보려는 의지를 꺾고, 한 개인의 노력의 하찮음을 비웃는듯한 소비와 유통의 구조 앞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기업의 생존이 결정될 수밖에 없고, 소비자의 선택이 ‘불편하지만 생존’에 맞추어진다면 기업들도 변화될 수 있으리라는, 이 단순한 가설을 믿고 싶다.

석유제품들의 값을 올리고, 유리 제품들의 재사용을 의무화하고, 과대포장을 엄격히 규제하고, 포장 없는 선물의 가치를 홍보한다면, 물론 이런 제도화의 기본은 불편함의 가치를 아는 소비자의 몫일 터이지만, 조금은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사실 이런 호소 앞에 소비자는 기업을, 기업은 소비자를 탓하겠지만, 핵심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망에 있고, 이는 곧 ‘나태함’이라는 고질병에 기인할 터다.

 

사실 자발적 불편은 적극적인 실천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도덕적 의무를 넘어 연대를 통한 제도개선에까지 닿아있고, 그 의무는 당사자가 생산자이든 소비 주체든 가리지 않는다. 이솝이 이야기한 ‘무슨 짓을 해도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낙타’에게서, 그래서 굴레를 씌워 낙타를 잘 다룰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주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아이들’의 손에서 낙타를 되찾아 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곧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이고, 하나님께서 우리게 주신 ‘그분의 형상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우리 삶은 늘 크고 작은 ‘선택’ 앞에 존재한다. 아이일 적에는 그 선택이 초래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당장의 욕망에 손쉽게 굴복해버리지만, 선택들의 연속이 안목을 키우고 성인으로 자라게 한다. 이제는 나의 삶의 안락함, 기복의 단계를 넘어 나의 선택이 야기할 지구적 환경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본다. 환경운동가 비 존슨이 이야기한 불필요한 것들은 거절하고, 소비를 줄이고, 쓰던 것 다시 쓰고, 분리배출 꼼꼼히 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썩혀 퇴비화하는 노력. 결코 만만치 않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 노력이 습관이 될 때까지, 나 홀로 고군분투 하기보다는 함께할 이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막상 찾아보면 불편하게 사는 것의 가치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다만 그 수가 아직 충분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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