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파도타기] 책<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는 힘

글_몬드(기윤실 청년센터WAY 최주리 간사)

 

 ‘resiliance’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은 ‘죽음’에 관한 어느 대화에서였다. 죽음에 대해서 인식했거나 가깝게 느꼈던 적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저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고민해봤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이가 자신의 이러저러한 굴곡진 개인사와 그 끝에서 인생의 바닥을 치고 다시 오르기 위해 애썼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 다시 일어나기 위한 돌파구를 찾았을때 누군가가 그에게 그게 바로 자신의 resiliance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는 resiliance는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는 힘’을 뜻한다고 한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게 지금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이라고.

나란 사람은 타고나기를 예민하고 지치기 쉬운 멘탈로 타고 났다. 분명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훌훌 털어버리고 어느새 해맑게 웃고 있는 ‘멘탈갑’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한때는 그렇지 못한 내가 잘못되었다거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내가 갖지 못한 튼튼한 마음의 힘을 부러워하며 지친 내 멘탈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의 연차가 하나 둘 쌓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20대 후반을 지나며, 타고난 것의 한계가 오는 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어했던 사람들 중, 오래오래 건강한 멘탈을 갖고 있던 이들은 오히려 마음의 상처나 병이 있었거나 약한 멘탈이어서 이를 부둥켜안고 지난한 싸움을 이어온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사람 중 하나가 이 책의 작가인 요조였다.

 

  “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사래도 치고, 뒷걸음질도 친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96쪽

 

요조는 가수이자 작가이자 책방주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다양한 직업을 오가며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잘하면 잘하는대로 그렇게 주어진 삶 속에서 넘어지고 일어나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채식을 하고 달리기를 하며 제주도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서 떡볶이에 관한 책(<아무튼, 떡볶이>)을 썼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수많은 실패가 알알이 박혀있다. 상황에 따라 고기를 먹기도 하고 정체되어있는 달리기 실력에 낙심하기도 한다. 가수로 먼저 데뷔했음에도 그의 노래보다 그의 글이나 책을 더 많이 아는(혹은 그마저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에서 따온 이름임을 수없이 말해왔지만 아직도 “요조? 요조숙녀할 때의 그 요조?”라고 묻는 사람들을 여전히 만난다. 일상은 크고 작은 무너짐의 연속이지만 그 실패마저도 품어 안아 예술로 담아낼 수 있는,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말한다. 실패를 사랑하는 것은 예술가가 아닌 그 어떤 직업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실패를, 더 나아가 실패하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무너진 마음에서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나온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던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었고 남들만큼 부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쉽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했고 세월이 흐르며 그에게 약점은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고집이 되었다. 나는 철옹성같은 그의 싸워내는 삶에서 고단함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없듯, 그가 인정하지 않으려했던 약점들은 누구에게나 있는 부분들이었기에 그가 스스로를 넉넉하게 포용하며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를 보며 실패나 약점은 사실 생각보다 별 것 아닌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약점을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에 유독 야박한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네가 뭘 잘했다고!’로 시작하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어온 K-어린이들은, 약점투성이의 모습을 들키면 경쟁에서 도태될까 걱정해야하는 K-청년이 되었다. 나도 물론 그 중 하나였고,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잘하지 못할 일이라면 애초에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 고집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기윤실 청년센터WAY를 담당하면서부터였다. 코로나 19로 인해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들은 향후 10년 이상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시급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많은 이들이 헌신하고 도와온 청년센터WAY였기에 조바심이 났다. 이제 막 만들어진 청년센터에서 처음 해보는 일들을 배워가며 만들어가는 일은 재미있기도 했지만, 생각한 만큼 잘 준비되지 않은 모습이나 실패하고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좋은 사람들과 하는데도 스트레스를 받는 이상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심리상담에 참여하게 되었다. 청년상담센터 위드WITH를 섬기면서 내담자의 입장은 어떠한지 궁금한 마음에 시작한 상담이었지만, 지금 당장 마음건강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상담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더 잘하지 못해서 아쉬워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아도 부족한 모습 그대로의 나 자신을 마주하며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삶을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배워나갔다. 내가 남의 실패를 용서하듯 나 자신의 실패 역시 용서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실패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자유로운 사람은 ‘삶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

 

  “거리에도 ‘구겨진 얼굴’은 많다. 집회 현장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은 조용하고 얌전하지 않다. 늘 화를 내고, 얼굴을 빨갛게 만들며 언성을 높이고, 머리를 깎고 피를 토할 듯 절규하고 있다. 나는 그 구겨진 얼굴들을 보며 이제 절대로 ‘저렇게까지 흥분할 일이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고 싶을 만큼 매일같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듣지 않고 변하지 않아 결국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진 채로 거리에 나온 노동자들과 여성들, 장애인들, 그 밖의 약자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구겨진 얼굴을 마주했을 때 ‘얼굴을 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 구겨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는 것. 최대한 자주 그 구겨진 얼굴을 따라 옆에 서는 것. 책방을 운영하면서 힘들고 귀하게 배운 태도이다.” 176쪽

 

우리가 마주한 사람들의 ‘구겨진 얼굴’ 뒤에 있는 그들의 필요와 이면을 바라보고 돕고 함께하는 연대 속에서 세상은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용납과 넉넉함이 사라진 요즘 시대에, 나 스스로와 서로의 실패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넘어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제는 인생의 굴곡이 없었거나 원래부터 멘탈이 강철이었던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 이제는 안다. 실패를 겪고 그 실패를 끌어안으며 이겨내기 위해 애써본 노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대단한 것임을. 나는 그러한 이들이 진심으로 부럽고 존경스럽다. 스스로의 약점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고 그마저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내 옆에 작가 요조를 항상 둘 수는 없겠지만 다만 이 책은 내 곁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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