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우리의 소원> 평화롭지 않은 평화

 

글_멍탱(기윤실 이명진 간사)

 

 90년도에 태어나 대한민국 공교육을 받고 자라며 ‘평화’에 대해 배울 때, 제가 가장 많이 접했던 주제는 ‘통일’이었습니다. 분단 상황은 한반도의 평화에 있어 중차대한 일이라 배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접해왔던 통일 담론들을 저와 제 또래도 중요하게 인식하는지 쉽게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모든 MZ세대를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또래가 갖는 통일에 대한 관심이 이전 세대보다 확실히 덜하다는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요 ‘우리의 소원’을 듣고 부르며 자란 세대지만 대북 이슈에 대해서는 차가운 모습을 보일 때도 많습니다. 어쩌면 분단 현실보다 다른 영역에서 평화가 더 급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첫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학교에 있었고, 선생님은 역사에 남을 이 순간이 수업보다 중요하다며 생중계 장면을 틀어 주셨습니다. 수많은 환영인파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던 그 날, 근현대사를 많이 모르던 저도 감정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때, 예부터 잘 알려진 동요 ‘우리의 소원’을 참 많이 듣고 불렀었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 어렴풋하지만, 북한과 남한의 어린이들이 단체로 손잡고 함께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학교에선 우리에게 이 노래를 부를 것을 적극 장려했고, 통일 포스터, 표어, 글짓기 대회를 개최해 우수한 작품을 시상하기도 했습니다. 마침 그때가 6월, 호국보훈의 달이었으니 나라와 민족,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열기는 더 뜨거울 수밖에 없었고, 많은 이들이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환상에 젖어있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이제 곧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거라 믿었고,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사실 당시 한반도의 통일이 진짜 저의 소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른들이 칭찬해주니까, 친구들 앞에서 상은 받고 싶으니까, 무서운 전쟁은 싫으니까 평화통일을 “간절히 바란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 나라 찾는데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통일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초중고 내내 이어졌습니다. 노무현 정권 말미에 성사된 2007년 두 번째 정상회담 역시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시청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이전 대통령과 달리 육로로 걸어 금단의 선을 넘어가던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고향 광주는 2차 정상회담 당시에도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나도 곧 성인이 되는데,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나’하는 헛된 기대를 품게 할 만큼요.

 

 이처럼 10년 넘는 기간 동안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며, 한반도에서의 ‘평화=통일’ 도식을 자연스레 습득했습니다. 우리나라 평화 이슈는 모두 통일로 귀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무서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평화와 통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된 이후 평화를 가장 많이 들었던 곳은 바로 ‘군대’였습니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북남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한 이명박 대통령 시절 입대했고, 박근혜 정권 초창기에 전역한 터라 그런지 보수적인 정훈교육을 주입받고 전수하다 돌아왔습니다. 매일 아침 점호 시간마다 목이 터져라 외쳤던 우리의 결의들.

 “하나,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조국 통일의 역군이 된다!”

 요즘 세대 대북관이 크게 잘못돼있다며 한국 전쟁, 주한미군 홍보 영상을 반복해서 틀어주고 국방백서를 진리처럼 들먹이던 정훈장교의 외침.

 “대한민국 군대의 목적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 그리고 이를 수호하는 세력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이며 국토방위와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

전역한 지도 오래고 예비군마저 끝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문장들입니다.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면서 개인의 평화는 무참히 침해하던 곳, 아직도 한국전쟁의 상흔을 존재 목적으로 이용하는 곳, 민주주의를 지키는 비민주적인 집단, 많은 이들이 자부심 부리면서 재입대는 끔찍해 하는 그곳은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앞선 모순을 직시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역 후 운 좋게도 동북삼성이라 불리는 중국 내 조·중 접경지역을 두 차례 다녀올 수 있었는데, 한국전쟁에 참여한 중공군 동상 아래 문구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for peace! 평화를 위해!”

 

 

 이제 저에게 통일은 소원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도 순수했던 동기로 평화통일을 원했던 것은 아니니 원래부터 소원이 아니었단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평화롭지 않은 여러 곳에서 평화를 배운 저에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들쑥날쑥 했던 평화=통일 도식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개념으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소원이 아니라고 해서, 적대적 관계 해소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분단 현실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 군사비용으로 낭비하는 자원을 생각하면 70년 넘게 지속된 이 상태를 하루빨리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주입된 평화가 아닌, 우리가 진정 바라고 원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947년에 만들어진 노래 ‘우리의 소원’은 처음엔 3.1항쟁을 기념하며 ‘우리의 소원은 독립’으로 쓰였던 것이 1948년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서며 분단이 기정사실이 됐을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가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1) 북진 통일을 꾸준히 주장한 이승만 정권은 이 노래를 부르도록 장려했고, 이후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에서도 유행처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제가 느낀 모순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평화를 추구하고 교육하는 많은 곳과 우리의 일상이 먼저 평화로운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거시적인 평화 못지않게 중요한 개인의 평화도 함께 존중받길 바랍니다. 평화를 추구한답시고 개인의 손해를 감내하게 하는 일들이 당연해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꿈꾸는데 그 누구도 차별 당하지 않길 바랍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저의 태도가 평등해지길 바랍니다. 설령 제가 추구하는 평화의 크기가 커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누군가는 일상에서 숨 쉬는 것조차 평화롭지 않은 상태임을 자주 자각하고 싶습니다.


1) 오마이뉴스, [안병원 작곡가 인터뷰], “65년 동안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제 그만 불렀으면”, 2013. 3. 1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43482, 2021년 6월 9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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