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윤실 청년운동본부에서 청년들을 잇고 생각과 세상을 밝히는 이슈별 소모임인 ‘잇슈ON’이 지난 5~7월에 진행되었습니다.  느슨한 공동체와 고민의 해소에 갈증이 있는 청년들이 일상과 사회의 관심사에 따라 소모임에 참여하여 안전한 소속감을 누리며 생각과 꿈을 나누고, 우리와 세상을 밝히는 파동을 만들어가는 시간들이었는데요! 함께 참여했던 잇슈ON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밥이 지어지기까지

 

호로비츠(K-사원의 근무일지 멤버)

 

스트레스에 대한 예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2L짜리 물병을 드는 것과 팔을 앞으로 뻗는 것은 각각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30초, 3분, 15분, 그리고 30분씩 계속 한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견디기 힘들만큼 팔이 아프고 땀을 쏟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각각의 요소는 사소해도,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면 지치게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쥐고 있는 물병을 내려놓는 방법과 팔을 아래로 내려 쉬는 방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무엇에 분노하고 누구에게 화를 내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는 일터에서 무척 화가 나는 일이 있었는데,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톺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살펴볼수록 화가 난 이유가 너무 작고 또 초라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일에 화가 나고 흥분하다니, 나 이정도 밖에 안됐어?’하고 되묻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체면이 있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운하고 속상한 일은 으레 생기는 법이고, 말과 행동을 절제하는 것은 성숙한 사람이 견지해야 될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며, 감정의 표현이라는 증기배출구를 막은 채, 일상의 피로와 분노라는 열과 압력을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그런데 왠걸, 버티려는 의지와 달리 몇 가지 요소가 중첩되고 시간이 흐르니, 저의 마음은 급속도로 지쳐갔고 무기력과 우울함이 찾아왔습니다. 오, 맙소사.

기윤실 청년운동본부의 ‘K-사원의 근무일지’를 알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습니다.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나의 하루는 참 쉽지 않은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참여 신청을 하고 모이게 된 첫 날, 동시대를 살아가며 사회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는 삶의 압력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삶의 지향이 느껴져, 느슨한 연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대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연대를 경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원만한 나눔을 위해 ‘배려’와 ‘정직한 나눔’을 모임의 주춧돌 삼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염두하며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내면에 집중하며 정직하게 나누고, 듣는 이는 말하는 사람이 내어놓은 투명한 내면을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깜냥 안에서 따스한 격려와 위로를 건네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춰질 내가 아닌, 나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니, 우리는 성공담, 교훈, 동기부여에 대한 이야기보다 실패, 설움, 낙망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근심을 나누었음에도 모임 시간이 기다려지고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에 섣부른 조언 대신 정직한 고백에 합당한 건강한 응원과 따스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저는 ‘그동안 이러저러한 일들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라고 말함으로, 내면에 가득 차있던 증기를 빼낼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많은 열과 압력을 가하는 요즘입니다. 밥을 지을 때 열과 압력을 가하기도 하지만, 적당한 시점에는 압력을 빼고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네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열과 압력을 가해서 영향력을 키워야 할 때도 있지만, 필요한 때에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내어놓고, 또 위로 받음으로 따스한 사랑의 경험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계속 열과 압력만을 가하면 바닥이 까맣게 타서 먹지 못하는 밥이 될테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저의 수고와 열심이 고소하고 바삭한 누룽지, 윤기 좔좔 흐르는 먹음직한 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땀 흘린 오늘도 그러하길 바라며 안부를 전합니다.

추신: 보다 설레고 감동적이었던 모임의 세밀한 내용은 문 두드려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아마, 깜짝 놀라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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