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돕고 삶을 향유하며 공동체로부터 안전함을 느끼는 노인을 만나보지 못한 청년들은 사회로부터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보장받지 못할 것이며 자신의 노년을 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겠는가? 어찌됐든 우리 사회는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선과 고리를 타고 청년들에게, 빈곤자에게 도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용 없는 성장, 효과 없는 포퓰리즘, 필수재의 상품화… 청년들이 처한 사회의 상태가 이렇다면 지금의 빈곤과 불안정이 노년까지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에는 빈곤과 고립의 문제로 고통받지않을 수 있을까? (본문 중)

책  <2020 하류노인이 온다> 리뷰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에는”

 

시앤 (기윤실 사무국장, 청년센터WAY 운영위원)

 

수업 발표 준비를 하다가 마주한 소설 <나무 – 황혼의 반란> 속 “너도 언젠가 늙은이가 될 게다.” 라는 구절은 우리 사회의 노인 문제와 더불어 훗날 나와 청년들의 노년에 대해 비로소 생각해보도록 깊이 찌르는 메시지였다. 우리나라가 OECD 노인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노인취업률 1위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불명예이다. 가파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과 맞물려 이 불명예는 단기간에 벗어나기 어려운 심각한 현상임이 분명한데, 과연 대한민국은 노인과 노인이 될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러한 고민과 질문은 오늘 소개 할 책 <2020 하류노인이 온다>에까지 닿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 사회에 대량으로 생겨나고 있는 ‘하류 노인’의 존재가 사회 전반에 주고 있는 충격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이들의 특징과 사회적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와 국민의 전반적인 인식과 시스템을 진단하며 노후 붕괴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해- 제언하고 있다.

‘하류노인’이란

먼저 하류 노인은 ‘생활보호기준 정도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고령자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고령자’, ‘국가가 정하고 있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고령자’를 말한다. 이들 ‘하류 노인’에게는 3가지가 없다. 수입, 충분한 저축, 의지할 사람. 연금을 포함한 수입이 현저히 낮거나, 젊은 시절 저축해 둔 돈을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부양에 사용하게 되면 이들의 남은 노후는 보통의 삶을 사는 것조차 매우 곤란해진다. 또한 하류 노인들은 일상적인 관계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상의할 가족, 친구가 없어 도움의 손길에 닿지 못하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해있다. 이처럼 하류노인이란 모든 안전망을 상실한 상태에 있는 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노인의 생활 빈곤 문제와 지원 방식 등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며 ‘홋토플러스’ 라는 NPO단체에서 생활 빈곤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단체에 찾아 온 노인들은 상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연금 외에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몰랐어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해 죽겠어요.”, “세상에는 나 같은 노인이 수도 없이 많아요.” 이들은 정규직이나 고소득으로 일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본인과 가족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거나 갑작스런 고립상태에 놓이게 되어, 그 어느 누구도 빈곤으로부터 절대 안전할 수 없어진 것이다. 수많은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노인의 빈곤한 삶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은 역설적이게도 예상 가능한 일이다. 수입이 없어도 저축이 충분하거나, 저축이 없어도 지지체계가 있다면 이들의 존재와 일상을 ‘하류’라고 명명하는 가슴 아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노인의 삶에 개인의 노력과 예방으로 불충분한 빈틈이 있으며, 그 빈틈으로 새어 나오는 문제들을 그 때 그 때 틀어막는 사후 대책이 아니라, 단단하게 메우고 여밀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노인문제와 사회는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

저자는 하류노인 문제가 다음 네 가지 악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결코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거나 문제를 귀결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악영향은 누군가 하류노인이 되면 배우자나 자녀 등 그 가족 전체가 파산에 이르는 것이다. 노인의 자녀 세대인 3040 청장년 세대의 소득이 결코 이전 세대보다 낫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본인 이외의 가족을 부양할 충분한 소득이나 자산이 없는 경우 빈곤은 대물림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청장년들이 비혼 비출산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하류노인 문제의 또 다른 악영향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노후 보장도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리스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단편적으로 청년들의 이기심과 무책임으로 손가락질하고 말아버린다면, 또는 출산과 육아 부담을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만 맡겨버린다면, 그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하류노인의 세 번째 악영향 또한 청년의 삶과 닿아있다. 젊은이들의 소비 침체가 그것이다. 우리 사회와 주변에서 보여 지는 노년의 삶이 충분히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면 청년들은 자신의 노년을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이나 투자에 매진하게 된다. ‘소확행’과 ‘영끌’ 현상이 그 반영일 것이다. 소비가 가장 활발해야 할 청장년의 경제력과 의욕의 감퇴는 그 사회의 경기에 악순환을 가져온다.

마지막 악영향이 가장 심각하게 여겨졌다. 바로 가치관의 붕괴이다. 고령자 뿐 아니라 장애인, 노숙자, 난민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 사회의 정책 방향과 문제 해결 속도가 달라질 수 있는데 우리 사회에는 이들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없고, 짐이 되며, 그들 개인의 문제를 국가가 책임질 필요 없다’고 하는 인식이 존재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고령자 뿐 아니라 장애인, 노숙자, 난민 등 생산 능력이 없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없어 보이는 계층에게 가해가 되는 태도이며 사회보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비난이 당연해 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과 태도는 당사자들이 자립하거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게 하는 것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며, 개인의 권리와 생명을 경시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비난과 차별을 당하는 상황이 오면, 생명의 위협에 직면했음에도 지원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증가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나쁜 사회고 저급한 사회이다. 헌법이 명시한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고 보장해주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는 이미 그 존재와 기능이 일부 구성원에 의해 소멸된 것과 다름없다.

빈곤과 고립에서 존엄과 안전으로

세금이 이들에게 쓰이는 것을 아까워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가 재분배를 통해 국민 전체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도록 하는 데 있다면, 세금을 내는 것은 간접적으로 국가와 시스템을 통해 이웃을 더 잘 돌보는 것이고 공동선과 공적 책임에 참여함으로써 사회 안전망을 함께 건설하는 것이다. 나아가 언젠가 나도 보호 받을 수 있으리라는 신뢰와 연결망을 형성하면서 인간된 우리의 존엄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숭고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저자는 현재 일본에 사회보험과 복지 시스템의 불충분함, 즉 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하류노인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는 과도하게 경제를 우선시하는 사회 구조와 인간 소외에 익숙해 진 우리의 의식과 감정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빈곤과 하류생활을 개인이나 가족 단위에서 오롯이 해결해야 하는 구조를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이러한 경직된 제도와 정책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개입하고 전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가, 지금의 청년이 노인이 되었을 때에는

일본사회 노령 인구, 특히 빈곤과 고립으로 위기를 맞은 노인들의 실태를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재조명해보았다. 평온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유무형의 튼튼한 안전망이 가능한 겹겹이 필요하다. 결국 빈곤자, 하류노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보장해야 한다는 명시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국가와 사회이다. 예방책과 대책을 만들고 실행해야 하는 주체도 당연히 국가여야 한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국가와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주축이며 언젠가 노년이 될 청년들이 눈 뜨고 보고 있고, 온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빈곤과 고립으로 고통 받는 계층을 차별하거나 방치하는 나쁜 ‘하류 사회’인지, 안전과 존엄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주며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해 줄 ‘공동체’인지 청년들은 매일의 삶에서 판단하고 있다. 서로 돕고 삶을 향유하며 공동체로부터 안전함을 느끼는 노인을 만나보지 못한 청년들은 사회로부터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보장받지 못할 것이며 자신의 노년을 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겠는가? 어찌됐든 우리 사회는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선과 고리를 타고 청년들에게, 빈곤자에게 도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용 없는 성장, 효과 없는 포퓰리즘, 필수재의 상품화… 청년들이 처한 사회의 상태가 이렇다면 지금의 빈곤과 불안정이 노년까지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에는 빈곤과 고립의 문제로 고통받지않을 수 있을까? 곧 연금을 받는 연령에 도달하며 언제 경제활동을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모친과 둘이 살고 있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짚어본 문제들은 결코 남의 일도,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언제 안정을 이룰 수 있을까 언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하염없이 오늘들을 보내고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빈곤과 고립의 그늘에서 노년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우리가 목소리를 내서 바꾸고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노인에 대한 인식, 빈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잉여 계층으로 바라보는 순간 노인과 사회, 약자와 사회의 고리는 끊어진다. 우리나라의 복지 안전망과 사회보장제도들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당장 닿을 수 있는 지원과 곧장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요구해야 한다. 모친의 내일과 나의 미래에 우리의 존엄과 안전은 얼마나 두텁게 보장될 수 있을까?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검증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오늘날의 노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늘 어느 한 노인이 보낸 일상은 내일 젊은 세대들이 보내게 될 일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앤 (기윤실 사무국장, 청년센터WAY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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