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니,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 <며느라기>
익명의 자칼1)
일러두기
- ‘며느라기’는 드라마만 보았습니다. 인스타 웹툰 내용이 드라마와 같은지 다른지 잘 모릅니다.
- 드라마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공감된 부분에 제 경험을 곁들인 글입니다.
- 아빠가 엄마의 서러움을 어찌 아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육아와 집안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적어도 육아에 관해서는 작중의 엄마와 아빠가 처한 상황이 내 일 같이 느껴졌기에 이 글을 써보았습니다.
1) 30대 후반 워킹대디.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육아에 진심이고 싶은 아빠.
“최근 본 드라마 중에 가장 감정이입이 된 작품이 뭐니?”
저는, 주저함 없이 <며느라기>라고 답할 것입니다. 제 감정이 너무 메말라서일까요? 어지간한 영화나 드라마에는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시월드’라는 기혼-유자녀 여성들의 경험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제 삶의 일부가 보이고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그 이유는, ‘육아’ 이야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이 드라마 전체 서사를 관통하는 주제는 아닙니다. <며느라기>라는 작품을 통해 원작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한 기혼 여성이 시댁에서 겪는 고충과 크고 작은 차별이 그간 당연하게 여겨져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글을 통해 나온 공감과 평가가 있기에, 다른 분들이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던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며느라기>에서 ‘임신-출산-육아’ 이야기는 주로 시즌2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시즌1에서는 혜린-구일 부부의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장면을 통해 아주 간략하게, 이어서 시즌2에서는 사린의 임신, 혜린-구일 부부의 현실 육아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이 갔던 지점을 다섯가지로 설명하려 합니다.
#1 “사실 축하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시즌2, 5화 중)
임신, 과연 정말 기쁜 소식일까요? 축하 받을만한 일일까요? 불임으로 고생하는 부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을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린에게 임신이란 너무나도 달갑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부정하고 싶고, 최대한 늦게 알리고 싶어합니다. 임산부 뱃지를 달고 다니거나 임산부 석에 앉는 것도 꺼립니다. 무엇보다도 임신 때문에 직장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중대한 일에서 열외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지요. 이런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닙니다. 사린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접한 시어머니는 태아에는 엽산이 필수라며 콩이 절반쯤 담긴 콩밥을 주고, 아이를 위해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비린내가 나는 잉어탕도 줍니다. 산모가 다치면 눈 앞의 산모는 제쳐두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태아부터 걱정하는데다가 눈치없는 남편 구영은 선물이라며 주는 것이 태어날 아이의 신발이니, 아이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런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임신한 산모에게 축하보다는 공감과 격려, 응원이 필요해보입니다.
#2 “이만큼 컸으면 어른들 먹는거 먹여도 돼. 내가 내 손주한테 안좋은거라도 먹였겠니?”(시즌2, 8화 중)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이의 부모는 가족, 친척, 지인, 하다못해 길을 걷다가 처음 만나는 어르신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잔소리를 듣습니다. 작중(시즌2, 5~7화)에서도 혜린-구일 부부가 시어머니(기동)에게 아이(미아)를 맡기면서 먹이면 안되는 음식 리스트를 적어주었는데도 (리스트에 엄연히 적혀있는) 키위와 사탕을 먹인다던가, 미아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는데 다른 아이들이 같이 노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미아를 보고는 “애가 동생이 없어서 외로워하는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둘째 생각해봐”하며 아이 셋을 키운 자신의 육아관만 맹신합니다. 그 때 시절과 지금의 육아방식이 다르다고 하면 “뭘 그렇게 유난스럽게 애를 키우니?”(시즌2, 7화)라고 하며 핀잔을 주죠. 게다가 5월 중순 때이른 폭염주의보에 일면식 없는 아주머니께서 아이가 감기든다며 두터운 외투에 털모자까지 씌우고 다녀야 한다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와 그 부모 세대 사이에서 육아관으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은 매우 흔합니다. 먹는 것, 입히는 것에 대한 할머니-할아버지 세대의 자부심 섞인 관심이 오히려 아이와 젊은 부부를 힘들게 합니다.
#3 “돈은 남자가 벌고, 애는 여자가 키워야지”(시즌2, 11화 중)
과거에, 아니 지금도 흔히 듣는 말이죠. 작중에서 구일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부모(기동-남천)이 한 말입니다. 이 대사가 시사하는 바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육아 전선의 골키퍼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보편적이라는 것입니다. 육아는 엄마가 시작해서 엄마가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죠. 작중에서도 그렇습니다. 유치원에서 가정에 전달할 이야기가 있을 때나, 학교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연락을 하게 되는 사람도 엄마라는 것이죠. 저 역시 피치 못해 아이를 봐야 할 상황이면 꼭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엄마는요?” 물론 엄마에게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남자가 아이를 봐야한다는 상황에 대한 어색함이 무의식적으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엄마가 아이를 봐야할 상황에 “아빠는요?”라고 묻는 경우는 없습니다. 육아가 엄마와 아빠 공동의 몫이라는 인식이 예전에 비해 보편적이어졌지만, 수렵채집사회부터 존재했던 남성중심사회가 너무 길어서인지 [여성=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는 공식이 인류의 DNA에 입력되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4 “엄청 바쁘시다~ 어휴 잘났어 증말!”(시즌1, 6화 중)
워킹맘에 대한 일부 전업맘들의 인식입니다. 작중 민사린의 회사 직속상관인 워킹맘 도 팀장이 초등학교 교통봉사를 마치고 다른 학부모들에게 커피 한 잔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근무 중에 잠시 나왔기에 “회사에 복귀해야한다”고 하며 거절하니 다른 학부모들은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봅니다.
<며느라기>의 작가가 작중에 이런 스토리라인을 넣은 이유는 실제로 전업맘들이 워킹맘을 은근히 따돌리는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있는 이유는 워킹맘은 워킹맘이, 전업맘은 전업맘이 서로 더 힘들다며 비방하는 게시글을 쓰는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사례를 거론한 이유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런 갈등의 주된 이유가 임산부거나 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낮 시간대에는 시간이 남는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일것입니다. 작중에서도 이런 인식이 드러난 예가 있습니다. 사린이 임산부 요가를 수강하려고 했는데 오전 11시 타임만 개설되어 있어서 포기한 일이 있었습니다(시즌2, 8화). 실제로 백화점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30~40대 여성이 선호하는 강좌들은 대부분 낮 시간대에 개설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워킹맘의 문화생활이나 사교 영역에서의 활동을 제한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이 고민은 더욱 깊어집니다. 전업맘은 학교나 학원 등을 통해 만나 그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친목을 다지고, 교육과 진학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를 교환합니다. 그러면서 친해진 전업맘의 아이들끼리 또래 그룹을 형성하죠. 반면 워킹맘은 그런 그룹에 낄 수 없기에 그 아이들도 이미 친해져있는 또래 그룹에 끼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야하는 워킹맘의 이런 고충은 같은 워킹맘이 아니면 알기 어렵습니다.
#5 “아니 회사는 퇴근이라도 있지 육아는 끝이 없잖아!”(시즌2 3화 중)
“애들 있으면 뭐 하나 하기가 쉽지 않구나!”(시즌2 3화 중)
워킹맘이든 워킹대디든 회사 퇴근은 곧 육아 출근입니다. 사린의 직속상관인 도 팀장은 아침에 카페에서 휘핑크림이 듬뿍 올라간 캬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침부터 애 둘 학교 보내고 나면 당이 뚝뚝 떨어진다니깐… 전쟁이 따로없다.” 육아를 하는 집은 아침 등교·등원 전부터 전쟁입니다. 식사 준비부터 등원까지 과정이 하나도 순탄치 않습니다. 아이의 수많은 요청과 끝없는 질문공세, 투정, 그리고 꾸물거림을 기다려 줄 새 없이 재촉하면서 준비하다보면 어질어질해집니다. 간신히 등원을 시키고 출근까지 하고나면 정말 당이 뚝뚝 떨어지죠. 마른 수건 쥐어짜듯 체내의 에너지를 끌어내서 일을 합니다. 퇴근하면 유치원 하원 후 학원 일정을 소화한 다음 귀가해서 저녁을 먹습니다. 이 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또 수없이 많은 요청과 투정을 다 받아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잠든 다음에야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이가 먹다 남긴 음식과 쓰레기, 장난감들을 정리하면 그야말로 몸을 가눌 힘마저 없어집니다. (사실 그날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서 정리는 생략할 때도 많습니다) 주말은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이 일을 반복해서 해야합니다. 외출을 하면 아이의 투정과 요구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외식, 간식, 시설이용(키즈카페, 놀이공원 등)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토로할 때면 “그래도 이쁜 자기 자식 키우는데 그 정도 힘든건 감수할 수 있잖아”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백번 옳은 말씀이지만, 그럼에도 육아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자신의 취미, 취향, 꿈과 같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개인적인 욕구 충족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중에서 사린이 쌍둥이 아들을 둔 자신의 친구 유미가 독박육아에 지쳐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보며 “애들 있으면 뭐 하나 하기가 쉽지 않구나!”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는 장면과 딱 맞습니다(시즌2, 3화).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일상 중의 일상인 주말 늦잠, 독서, 음악감상, 영화관람 같은 것이 육아인들에게는 매우 특별하고 갈급한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죠.
한편, 드라마 <며느라기>의 본 에피소드나 리뷰에 관한 영상의 댓글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결혼, 출산을 해야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절대로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것, 다른 하나는 구일-구영 형제 같이 자상하고 잘생긴 남편이면 당연히 시집살이, 집안일, 육아 정도는 기꺼이 해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바로 <며느라기>가 시사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육아인들의 깊은 고충을 드러내주는 것이지요. 경험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육아를 하는 젊은 부부가 육아에 대한 고충을 호소하려해도 기성세대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나 때는 애 서넛씩 낳아 길렀는데, 겨우 하나둘 낳아 기르는게 뭐가 힘드냐? 육아가 힘든건 당연한 것이고 애들 크면 다 복이 돌아온다”거나 “육아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서 육아는 양해해줄 수 없다”, 또는 “육아하는 집은 다들 그러고 살아 왜 이리 유난을 떨어?”라고 하는 것이 우리네 사회(주로 기성세대)의 흔한 인식입니다. 우리네 사회 자체가 임신-출산-육아에 관해서는 모두 당사자가 아닌 시어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남성인 제가 겪고 느끼는 것이 이정도인데, 하물며 여성들은 그간 얼마나 더 힘들고 어렵고 서러웠을까요? 출생률이 0%에 수렴하고 있다는데 위기를 느껴 온갖 출산 장려정책과 현금지원, 복지제도를 내놓는다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육아인과 어린이들의 실생활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육아빠의 시선으로 본 <며느라기>
저는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드라마 <며느라기>의 이야기를 빌려 두 가지를 제언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일과 육아의 양립’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워킹맘의 수와 출생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과거에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성이 많을수록 출생률이 떨어졌지만, 지금 유럽에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제도가 잘 정착될수록 출생률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2) 워킹맘-워킹대디가 모두 일을 하면서 동시에 육아협업을 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일회성 장려금이나 복지 혜택을 늘이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다른 하나는 육아에 대한 ‘공동체적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아이를 부모만 키운다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가 속한 공동체에서 모두 아이를 키운다는 의식을 가졌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의미를 ‘유아세례’에서 찾고 싶습니다. 신학적, 역사적으로 유아세례가 옳은지, 그리고 그 유래와 방법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또한 유아세례가 한국 개신교의 가족주의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예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아세례는 기능적 측면에서 ‘공동체적 육아 의식’을 교회 내에서 가능하게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 교회에서는 유아세례 집례자가 아이에게 세례 집례를 마친 다음 아이를 안고 예배당 안을 돌면서 당일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에게 아이의 얼굴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 의식의 의미는 아이를 대신해 부모가 신앙을 고백한 것에 대한 증인이 됨과 동시에 아이의 신앙적 양육에 대한 공동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유아세례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자리에 모인 유아세례의 증인들이 적어도 교회 공동체라는 울타리 내에서는 이 아이를 함께 양육하자는 의미인 것이죠.
구일의 퇴사로 <며느라기>의 육아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구일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자신의 아버지 남천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결정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당연히 남천은 극대노했지만, 그럼에도 구일은 퇴사를 해서 그들이 계획한 행복을 찾아갑니다(시즌2, 11화). 개인적으로는 이 결론이 매우 찝찝했는데, 아직 ‘일과 육아의 양립’이 아직은 불가능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란 결국 그들이 갈 수 없는 견고한 벽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마주한 채, 차선의 행복으로서 퇴사를 선택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만일 혜린-구일 부부가 일과 육아의 양립이 가능했다면, 그리고 육아에 대한 공동체적 의식이 있는 사회에서 살았다면, 과연 구일이 퇴사를 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죠. 사실 퇴사하지 않고 일과 육아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그렸다면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과 육아의 양립’이란 지구 반바퀴 쯤 돌아야 갈 수 있는 유럽의 거리만큼이나 요원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출산이 곧 애국이다!”3)라고 말한 사람이 장관 후보자가 되고, ‘사모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육아와 살림을 남편에게 의존하지 말라”4)고 가르치는 우리네 사회와 교회의 현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성이나 육아를 하는 이들에게 <며느라기>같은 드라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 사회에 ‘일과 육아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로 한걸음 씩 더 나아갔으면 합니다.
2) 세계일보. “10년 차 목사 아내, ‘불량 사모’가 ‘사모佛·스웨덴, 일·가정 양립 지원… 워킹맘·라떼파파 ‘육아협업’행전’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 참고 – https://segye.com/view/20200910528623, 이 외에도 ‘일과 육아의 양립이 출생율 증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매우 많음.
3) 새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012년 <매일신문>에 기고한 ‘[의창]애국의 길’이라는 컬럼에서 “지금만큼 애국하기 쉬운 시절도 없다”, “결혼과 출산이 그 방법”이며 “결혼만으로도 당장 예비 애국자가 될 수 있고, 출산까지 연결된다면 비로소 애국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셋 이상 다산까지 한다면 ‘위인’으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독신보다 오래 산다”, “암치료의 특효약은 결혼이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4) 뉴스앤조이. “10년 차 목사 아내, ‘불량 사모’가 ‘사모행전’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 –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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