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0일에 진행된 기윤실 좋은사회운동본부의 “함께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노년의 삶”에서는 한국 사회를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갈 노년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그 중 몬드는 청년들이 행복한 노인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준비를 해야할지에 대해 나누었는데요. 이 외의 다른 발제는 아래 링크에서 영상과 발제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행복한 노인이 될 수 있을까요?
몬드(기윤실 최주리 간사)
1. 들어가며
저희 기윤실의 명함 뒷면에는 각 활동가들이 기윤실 운동을 통해 꿈꾸는 것을 적습니다. 제 명함의 뒷면에는 ‘청년들이 행복하게 나이들 수 있는 안전한 실패의 장을 꿈꿉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기윤실 청년센터 웨이와 청년운동본부의 담당간사로서 저의 기윤실 활동은 주로 청년 이슈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층뿐만 아니라, 노인층도 제 주된 관심사인데요. 누구나 청년이 될 것이고 청년이고 청년이었던 것처럼, 누구나 노인이 될 것이고 노인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청년들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열정이나 패기가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순히 청년들이 나약해서가 아님은 대부분 알고 계실 겁니다. 개인적으로 청년들의 체념과 무기력은 희망없음에서 비롯된다고 보는데, 그 희망은 청년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분야 활동가이자, 청년인 활동가로서 노년의 삶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은 저희 외할머니로 인해서였습니다.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과 함께 상경하게 되어 1년여 간 외할머니댁에서 살면서 노년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셨던 외할머니는 나이가 들자 거동이 불편해지시게 되었고, 주로 집안에서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며 집안일이나 화단 가꾸기, 교회 활동, 이웃과 친척들을 만나고 돌보기 등을 하셨습니다. 나이에 비해 정정하신 외할머니의 하루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활동은 TV보기였습니다. 평소 TV를 자주 보지 않던 저는 문득 제가 살게 될 노년의 삶도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 명함에 쓰여있는 것처럼 행복하게 나이들 수 있을까요?
2. 행복하게 나이들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무조건 돈이 많아야 한다거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야 한다, 혹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의 청년이 어떠한 삶을 살겠다고 결정하고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든 행복하게 나이들 수 있는 사회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청년들 개개인에게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사회나 제도를 바꾸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들의 행동과 건의를 바탕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해서, 제도나 정책이 바뀌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들이 행복하게 나이들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돈, 사람, 놀거리라는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돈_성실함이 배신당하지 않는 사회구조]
점점 심각해지는 양극화와, 가난과 부의 대물림으로 인해, 요즘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를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들이 개인의 게으름이나 부족함보다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부터 해결되어야할 사안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무리 성실하게 일하고 알뜰하게 아껴도,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회는 분명 행복한 노년의 삶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일 겁니다.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과 상대적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을 보며, 청년들의 미래도 암울할 것이라고 전망하기 쉬운 상황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지금부터,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데에 꾸준한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시민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될 필요는 없다. 도쿄대 명예교수인 우에노 지즈코는 그의 책<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서 “간병 없이 살겠다며 열심히 운동하고, 치매를 예방한다고 두뇌 체조에 매달리기보다는 간병이 필요해져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 안심하고 치매에 걸릴 수 있는 사회, 장애가 있어도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할 일이 아직도 너무 많다.“라고 말했습니다.1)
단순히 정부나 기업,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평에서 그치거나 관심을 꺼버린다면 아무도 우리의 삶과 미래를 대신 바꾸어주지 않습니다. 기윤실과 같은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상황에 따라 가능한만큼 함께 활동에 참여하거나, 우리 주변에 관심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나 사각지대와 이에 대한 대책이나 지원이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약자에 대한 배려로 한 사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고 우리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약자가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람_느슨한 네트워크]
영국에서 2002년부터 12년간, 2년마다 만여 명의 5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사회적 고립과 기억력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에서는 사회적 고립이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기억력이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2) 사회적 고립은 인지기능을 저하시키고 이는 치매로 이어질 수 있는데요. 하지만 동거인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상황이 더 나은 것만은 아닙니다. 가장 외로운 사람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이고, 고령자의 자살률을 살펴보면 ‘독’거 고령자보다 ‘동’거 고령자가 더 높다고 합니다.3)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보편화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혈연 중심의 깊고 끈끈한 관계구조가 더 빠르게 해체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인생활공간은 독립적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공용 공간과 소셜 프로그램에서 자유롭게 서로의 삶을 오픈하고 나눌 수 있는 코리빙 하우스가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코리빙 하우스인 ‘맹그로브’는 건물 내에 짧지만 잦은 스침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해서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함께 하고 싶은 1인 가구 청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모임에서 서로의 인적사항을 다 공개하지 않고 닉네임을 사용하며 원하는 만큼의 익명성을 누리는 문화에 만족하고 안전함을 누리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저희 청년센터 웨이의 여러 프로그램에서도 익명으로 참여할 수 있는 모임들을 진행해왔는데, 나이나 직업, 경력에 상관없이 서로를 그 사람 그 자체로 만나고 대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편하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씀해주시는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행복한 삶은 운명의 배우자나 영혼의 단짝과 같은 관계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느슨한 공동체를 통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놀거리_나 자신과 나의 즐거움을 아는 것]
‘논다’ 라고 하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느끼기 쉬운데요. 그러나 어떤 때에,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을 할 때 즐겁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취향과 취미를 발견하는 과정은, 많은 도전과 실패로 가득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취향을 잘 알게 된다면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에도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결국 진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쓸모없는 것을 하는 즐거움을 누릴 줄 안다면 이 각박한 세상을 버텨낼 여유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건강이나 퇴직 등의 이유로 이전에 비해 효율과 생산성이 낮아지는 일상을 살아가게 될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그 시간들을 헛된 시간으로 여긴다던지, 앞서 조흥식 회장님의 발제에서 말씀하신 ‘무위고(無爲苦)’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무용함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자체의 가치를 아는 노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하는데요.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은 전 인류가 불임이 되어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세상은 절망과 체념으로 가득 차 있고, 정부에서는 시민들에게 ‘평온한 죽음’이라는 의미의 자살약, ‘콰이어터스(Quietus)’를 권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틀면 수시로 흘러나오는 콰이어터스의 광고를 보며 사람들은 희망없는 미래를 앞두고 더 이상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평소 이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를 좋아하던 저에게 이 영화는 그 어떤 다른 영화보다 현실적이고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회적 가치가 떨어져가는 나이든 사람에게 삶을 마감할 것을 종용하는 잔인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내 삶의 가치를 끝까지 주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마음에 맴돌았습니다. 그러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노년의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여러 고민과 공부 끝에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이 절망의 시대에 굴하지 않고 내가 속한 한 평만큼의 사회를 변화시킨다면,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면, 그 작은 한 평들이 모여 결국에 사회 전체를 변화시켜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바라게 되었습니다. 기윤실의 청년운동은 같은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함께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미래를 바꾸어나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오는 명언처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에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요.
1) 우에노 지즈코, 2022,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동양북스, p212
2) Sanna Read, Adelina Comas-Herrera, Emily Grundy, (2020) Social Isolation and Memory Decline in Late-life, 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B, Volume 75, Issue 2, p367-376
3) 우에노 지즈코, 2022,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동양북스, p31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