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해 부근에서>

예수가 남긴 사랑의 흔적

 

동치미(기윤실 윤동혁 간사)

 

엔도 슈사쿠는 그의 책 <침묵>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작가다. <침묵>은 고통 속에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무능해 보이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다른 책 <깊은 강>은 예수를 따르는 삶이 궁극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그리고 <깊은 강>은 나의 ‘인생책’이 되었다.

2020년 봄, 필그림하우스로 피정을 떠나 <사해 부근에서>를 읽었다. 당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사랑과 섬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사랑의 소용이 의심스러웠고, 성숙한 관계 공동체의 실현은 불가능해 보였다.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사해 부근에서>는 두 개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이어진다. 하나는 이천 년 전 예수가 살던 당시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현재를 사는 주인공의 ‘나’의 이야기다.

이 책에 나오는 예수의 가장 큰 특징은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모두가 버린 열병환자의 곁에서 병수발을 들고, 나환자촌에 들어가 더불어 생활하며,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진심으로 슬퍼한다. 처음에는 예수가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돌긴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죽어가는 가족을 업고 예수께 나아온다. 예수의 모습을 보고, 혹은 그의 사랑에 마음이 움직여 따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에게 실망해 분노를 터트린다. 제자들도 하나 둘 예수를 떠난다.

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의 모습도 유명한 영화에 나오는 ‘건장한 백인’과는 거리가 멀다. 작은 키에 마른 그는 볼품이 없으며 죽음을 앞두고 바들바들 떤다. 그러나 예수는 그 와중에도 더욱 비참하고 더욱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기를 기도한다. 대신 모든 죽음의 고통이 자신에게 돌려지기를, 모든 병든 이와 어린아이, 늙은이의 고통이 없어지기를 기도한다.

사랑은 무용한 것이며, 성전과 율법이 사회를 지키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안나스는 예수가 추구한 사랑의 삶이 실패라고 여겼다. 곁에 남은 사람 하나 없었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무탈하게 아무 일 없이 지내다가 로마로 돌아가길 바라는 빌라도 역시 예수가 남겼다는 사랑의 흔적을 무시하고 무죄한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승낙한다. 예수의 사랑은 과연 무용한가? 예수는 왜 굳이 죽음의 길을 갔을까?

 

 

주인공인 ‘나’는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다 지금은 믿음을 저버린 중년의 작가다. 그런데 왜인지 예수라는 자를 삶에서 놓아버릴 수 없어서 예루살렘에 온다. 그곳에서 성경학을 공부하는 ‘나’의 친구 도다는 예수의 기적이 후대의 첨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뜨거웠던 신앙이 식어버렸지만, 그래도 삶의 유일한 의미인 예수를 찾느라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와 도다는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돌아다니며 예수의 흔적을 쫓는다.

그런데 그들이 막상 마주한 흔적은 예수의 것이 아니었다. 순례 중 ‘내’가 계속 회상하는 인물이 있는데, 예과생 시절 기숙사에서 일하던 코바르스키라는 유대인 사제다. 그는 울어서 부은 듯한 눈에 항상 음울하고 심약했으며 비겁했다. 사람들은 그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했고 무시했다. 그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코바르스키는 오래 전 기숙사에서 나와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나치에게 잡혀 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에서도 비굴한 언행으로 사람들의 무시와 미움을 샀고 결국 나치에게 죽임을 당했다. ‘나’는 순례의 종반에 그의 마지막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한 사람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코바르스키는 두려움에 짓눌려 바지에 오줌을 싸며 군인에게 끌려갔는데, 그의 옆에 그와 함께 바지에 오줌을 싸며 끌려가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예수였다.

심문하는 빌라도에게 예수는 ‘황제보다, 로마보다 오래가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예수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스치면서 남긴 흔적이다. 예수는 사람들의 슬픈 인생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사랑하려 했고, 그 흔적은 계속될 것이라 했다. 예수의 옆에서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가 죽음 후에 예수와 함께하기를 구했을 때, 예수는 그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예수와 스쳐서 남겨진 사랑의 흔적은 때론 무뎌지기도 하고 사라지는 듯도 했지만,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예수를 닮아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의 삶에, 그들의 곁에 예수께서는 함께하셨다. 사해와 같이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르는 코바르스키의 삶에도 예수께서는 함께 오줌을 싸며 동행하셨다. ‘나’는 내가 예수를 놓지 못해 그 흔적을 쫓는 듯했지만, 예수께서 ‘나’를 놓지 않으시고 따라다니셨던 것이다.

 

 

피정을 누리던 2년 전 봄, 흩어졌던 마음 중 일부는 주섬주섬 수습이 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 가던 길을 지금도 놓지 않고 가는 중인데, 그 이유는 이 책에서 귀띔을 얻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동료를 얻기 위해, 성숙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상대를 감화시키기 위해 사랑한 것이 아니었고, 당장 그런 결과를 얻지도 못했다. 그래서 실패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랑의 흔적은 또 다른 사랑의 흔적으로 전달됐고, 그 흔적은 나에게까지 왔다. 그래서 나 또한 내게 남겨진 그 흔적을 따라 내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날아가 버린 마음도 흔적이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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