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가난한 젊은이들

 

[이코리아] 윙즈(WINGS)라는 곳이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어려운 청년들의 재정 관리나 부채 해결을 위해 전문 재무상담사와의 재무·채무 상담을 제공하며 청년들을 돕는 곳이다. 만 19-39세 청년이라면 누구나 상담받을 수 있다. 돈을 다루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개인의 내면과 상처가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렵고 예민한 시기에 돈을 모으기 위해 먹는 것도 아끼며 마음의 병까지 짊어진 청년들을 대하는 상담사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청년은 무한한 희망과 가능성을 가진 세대이지만, 반대로 두려움과 불안을 품고 사는 세대이기도 하다.

상담을 받은 한 청년이 10만 원을 ‘도전지원금’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지원서에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할지 적는 난이 있었는데, 그 취약 계층 청년은 ‘마음껏 먹어보지 못한 삼겹살을 실컷 먹고 싶다’고 적었다. 그 내용을 본 상담사들은 마음이 무거워서 그날은 종일 일하기가 어려웠다.

최근 전당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미증유의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급전이 필요한 청년들의 전당포 이용이 크게 늘어 ‘전당포 호황’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케이큐뉴스가 전했다. 마포의 한 전당포 업주는 “지난해 5월엔 30명 정도가 방문했는데, 올해 같은 기간에는 4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전당포를 다녀갔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것은 현대인들이 하루도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게 여기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IT 기기를 들고 전당포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어려워져 가는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들도 속출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대출 중 20~30대 비율이 2013~2019년 27%에서 2020~2021년 38%로 10포인트 넘게 치솟았다. 지난해 말 기준 30대 이하 청년층 취약차주(脆弱借主)가 전체 취약차주의 36.5%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 자문위원장)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 이하 청년층 취약차주는 46만명이다.

취약차주는 한국은행 기준으로 3곳 이상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신용(7∼10등급) 또는 저소득(하위 30%)인 대출자를 말한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신용위험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전체 가계 취약차주 대출 규모는 93조9000억원으로, 1년 전(92조8천억원) 보다 1조1000억원 증가했다. 그 전 해보다 늘어난 취약차주 수는 6만명인데, 이 가운데 30대 이하 청년층에서 4만명이 늘었다. 새로 편입되는 취약차주의 65%가량이 청년층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젊은이들의 생계유지가 그만큼 어렵고 일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9일 경기도 안성의 한 신축 상가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중이던 천장이 붕괴돼 아래층인 8층에서 일하던 베트남 출신 응우엔 형제(30·23세)가 깔려 사망했다. 형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형제는 한국에서 각각 7년, 2년 정도 머물며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건설노동자들은 콘크리트 타설 중인 윗층이 내려앉아 아래층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매몰된 사고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작업 순서상 윗층 바닥면 타설은 아래층의 벽과 기둥, 지지대가 다 설치된 뒤에야 마지막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고는 아래층 작업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서두르다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경험 많은 기능공들은 타설 중인 슬라브 밑으로는 가지 않는다. 안전한 곳에 서서 망치를 두드리거나 소리를 통해 타설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판단한다. 문제가 생기면 긴급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이는 저숙련 노동자들이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건설노동자들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처지에서 숙련공이 투입돼야 할 위험한 업무에 등 떠밀린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도 불법 체류자들은 신분상의 취약점 때문에 위험 작업 지시를 받아도 거부하지 못하고 군말 없이 할 수밖에 없다.

일반 건설현장은 외국인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한국인 노동자가 기피하는 힘든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먼 이국땅에 와서 위험한 일을 하다 죽는 현실에 대해 우리 사회는 마음을 열고 각성해야 마땅하다.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라는 책이 있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일가를 이룬 11명을 만나 그들의 젊은 시절을 인터뷰한 책이다. 작가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그들에게서 깨달음에 가득한 말을 듣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망설임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이 책에 소개된 11명의 공통점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열등생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마침내 자기의 세계를 이룬 과정을 짚어나간다.

마야자키 마나부(동물생태 사진작가)는 어릴 때부터 공부는 안 하고 산이나 들로 뛰어다녀 선생님이나 친구들로부터 ‘저 바보가 또 산을 뛰어다니네’라고 놀림 받던 열등생이었다. 밤을 새워 부엉이 사진을 찍었다.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사람들의 놀림을 받았다. 위가 잘못돼 피를 토하는 등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겼다. 죽고 싶을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어느 날 아는 편집자가 고급 필름 스무 통을 보내주더라고요. 재기 불능일지 모르는 제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있는 걸 알고 그 필름을 다 쓸 때까지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스무 통의 필름, 표류하던 청년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발 디딜 섬을 발견했다.

“이제 이 시절도 끝이 났네요! 지난날의 추억 중에서 즐거운 것들만 조금 새 삶으로 가져가렵니다. 그러면 당신에 대한 추억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고, 당신도 제 가슴속에 더욱 소중할 테니까요. 당신은 저의 유일한 친구세요. 이곳에서 저를 사랑해주신 분은 당신밖에 없었어요. 당신이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는지 제가 다 보았고, 다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제 미소 하나만으로도, 제 편지 한 줄만으로도 행복해하셨어요. 이젠 저를 떨쳐내셔야 해요! 이곳에 어떻게 혼자 남아 계실까요! 누굴 보며 여기서 지내실까요, 착하고 더없이 귀한, 하나뿐인 내 친구님! 당신께 조그만 책 한 권과 자수틀과 쓰다 만 편지를 남겨두고 갑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은 대도시의 초라한 뒷골목에 사는 중년의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과 고아 소녀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의 비극적 사랑을 다뤘다. 그들의 삶은 너무 비루하고 끝없는 고통으로 이어진다. 가난에 지칠대로 지친 바르바라는 결국 쓰던 편지를 마치지 못하고 부를 찾아 마카르를 떠난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눈물을 흘린다. 그들의 각박한 현실에 미래의 밝은 전망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헤어지는 그들의 영혼은 순정하고 고결하다. 너무 가난하기에 겉으로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는 숭고한 희생과 순결한 사랑이 차오른다. 젊은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순수하다. 그들이 사회의 미래다. 젊은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촘촘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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