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돌들의 춤; 강정에 사는 지킴이들의 이야기>
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글_냉이(기윤실 홍천행 간사)
이 책의 엮은이 중 하나인 딸기는 평화바람1) 활동가다. 평화바람 사람들은 2019년 평화활동가대회에서 처음 봤고, 그 이후에는 내가 2020년 군산에서 일하던 단체 근처에 평화바람부는여인숙(현. 군산평화박물관)이 있어서 거리를 오가며 종종 뵀다. 이 책에서 딸기는 강정 지킴이2)들을 처음 봤을 때, “얼굴에 시커멓게 탄 사람들이 머리에 이상한 거 쓰고 있으니까 ‘이 사람들 뭐지? 미쳤나?’”3)라고 생각했다지만, 이 생각은 내가 평화바람 사람들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기도 했다. 외적으로는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인데 태도에는 긍지가 넘쳐흘렀다.
이 책의 인터뷰이들인 강정 지킴이들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군사주의의 물결을 거슬러 대항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강정 해군기지가 세워지고, 구럼비 바위가 발파되었음에도 강정을 떠나지 않는다. 다 잃어버린 것 같은 평화를 일상의 저항행동을 통해 다시 세워나간다. 이들의 저항행동은 물리적인 투쟁 행동이 아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는 절인 생명평화백배를 하고, 오전 11시 길거리 미사를 올리고, 정오에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는 비폭력 평화운동인 인간띠잇기를 한 뒤에 할망물식당에서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혜영은 이러한 삶에 대해 한겨레21에서 “묘하게 아팠고, 희한하게 좋았다”4)고 말했는데, 제주에서부터 시작된 예멘친구들과의 만남이 그랬다. 나는 2018년에 제주로 온 예멘 난민5)들과 함께 제주에서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그 이후로도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실없이 옆구리를 찌르고 장난치는 삶, “Habib alqalb(love of my heart)”라는 아랍식 인사말을 구글번역기로 번역해서 “심장애호가”라고 보내는 친구의 카톡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삶, 쌀쌀한 가을날에 한강에서 따릉이를 탈 때, “Anta bard?(너 춥니?)”라는 나의 질문에 “Ana said(나 행복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괜스레 감동하는 삶 말이다. 이러한 일상이 묘하게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들의 본국에서는 지금도 내전이 진행 중이고, 이따금 가족·친지들의 부고소식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예멘 친구들과의 만남 때문에 이런 삶을 계속 살고 싶다는 추동이 내면에서부터 일어났다. 누가 내게 제주에서의 시간을 물으면 그 시간 이후로 인생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신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러한 삶으로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부르셨다고 느꼈다. 이 책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널려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강정 지킴이는 강정으로의 발걸음에 신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고 여긴다. 정선녀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미사에 함께 하며 기타 치고 노래했고, 그 자리에서 독서와 복음이 읽혔어요. 그때마다 ‘여기가 복음이 이루어지는 곳이다’라는 것을 강하게 체험할 수 있었어요.”6)라고 고백한다. 카레는 “어느 날 자다가 일어났는데 ‘쥬빌리에서 좀 더 있어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한 내면의 소리였어요.”7)라고, 혜영은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게 공동체다’라고 생각했어요. …… 그 당시엔 개신교인으로서 목격한 것을 증언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8)라고 말한다. 미국의 ‘가톨릭 워커스’라는 천주교 평화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빅스 신부는 미국의 대학교, 작은 교회, 공동체 모임에 가서 강정의 투쟁을 소개하고, 강정에서의 미사를 ‘성찬례적 저항’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9) 반디는 “오전에 미사천막에서 성경읽기를 했어요. 강정에 온 지 1년쯤 되고 바쁘기는 한데 이렇게 지내는 게 맞나? 신앙인으로서 뭔가 더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할 때였죠. 교회 수련회를 갔는데 환상을 본 거예요. 해군기지 안에 성경책 활자들이 막 돌아다니는 것 같았어요. 해군기지를 품어 안으려는 의지의 표현 같았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기지 안에 직접 못 들어가지만 목소리는 들어갈 수 있잖아요. 성경 낭독이 떠올랐어요.”10)라며 자신이 경험한 기이한 영적 체험을 얘기하기도 한다.
이렇듯 지킴이 중 꽤 많은 이들이 신적인 부르심에 응답해서 강정으로 갔지만, 현재 지역교회 공동체와 연결되어서 지지와 응원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교회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 나로서는 이들을 응원하고 기꺼이 사랑으로 보내주는 교회 공동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8월 초부터 기윤실 간사로 일하고 있다. 활동가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뒤, 내가 하는 일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시민사회 활동가, 그리고 사회선교사라고 생각했다. 기독교 시민단체 간사, 또는 활동가로 불리는 건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회선교사는 그렇지 못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은 목회자나 선교사로의 부르심이라고만 생각해 온 데다가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개 선교사라고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을 스스로 사회선교사라고 정체화한 이유는 내 활동의 동력이 그리스도교 신앙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나를 이 일로 부르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작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우리를 부르신다. 마태복음 25장 40절11)의 말씀을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곧 내 음성을 듣는 것이다.”라고 바꿔 읽는다면 신의 음성은 마이크를 쥔 이들이 아닌, 말하는 힘을 잃어버린 주변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 강정 지킴이들이 구럼비 바위 소리를 듣고 강정으로 모였듯 말이다. 우리가 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평화와 사랑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서 연대하고 위로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이 고작 개인의 구원과 영생을 말하는 좁은 의미의 복음이 아닌,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복음임을 나는 믿는다.
1)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을 중심으로 군산, 강정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활동단체이다.
2) 제주 해군기지 반대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강정에 온 육지사람들을 이르는 말. 2011년부터 강정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돌들의 춤, p.13)
3) 위의 책, pp.175-176
4) https://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3681.html
5) 대부분 출입국관리법령상 난민인정이 되지는 않았고, 인도적 체류자 사증발급(G-1-6 VISA)이 이루어졌다.
6) 위의 책, p. 26
7) 위의 책, p. 79
8) 위의 책, pp. 96-97
9) 위의 책, p. 138
10) 위의 책, p. 155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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