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 일조해 온 한국교회, 사회 분열 아닌 통합 앞장서려면

기윤실·크리스챤아카데미 대화 모임 “떠돌이 신자와 소통하며 교회·사회 개혁하는 동력 얻어야”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올해 여름,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때아닌 이념 논쟁을 부추겼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해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며 ‘진보 진영’에 공산주의 세력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독립운동가 5인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홍범도 장군을 “소련군”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후 행사에서도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가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이념”,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이념 논쟁을 야기한 게 우연이 아니었음을 재확인했다.

신앙의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화’를 통해 양극화 문제를 풀어 가자는 취지로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정병오·정현구·조성돈·조주희)과 크리스챤아카데미(채수일 이사장)의 대화 모임은, 또다시 이념 논쟁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논의했다. 12월 1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모임에서는 ‘회귀한 이념 논쟁 속 한국교회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과)가 발제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이 정치 양극화를 단단히 하기 위한 ‘갈라치기’ 전략으로 이념 논쟁을 꺼냈다고 봤다. 온건 중도 보수층보다 강성 팬덤 보수층의 호응을 고려한,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던 윤석열 대통령의 어조는 지난 10월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누그러졌다. 이를 두고 김호기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회귀시키려 한 이념 논쟁은 국민들에게 철 지난 색깔 논쟁으로 비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또한 윤 대통령이 10월 3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야당과 소통하고 협력하겠다며 보인 태도 변화는 이념 논쟁을 ‘갈라치기’ 전략으로 사용한 것을 방증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념 논쟁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양극화한 이념 논쟁은 재점화하거나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고도 했다.

김호기 교수는 이념 갈등 자체가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이념 논쟁에 과도한 사회적 비용이 지불된다면 이를 감소시키고, 이 에너지를 새로운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양극화가 선거에서 1~2% 차이더라도 이기면 모든 자원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 제도’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며, 정치제도 개혁과 바람직한 정치 문화 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생산적인 공론장과 성숙한 토론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태도는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관용할 수는 없기에 교회가 그 경계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종교는 어느 사회든 정신적 가치의 구심이다. 어떤 이념이더라도 진리와 정의보다 앞설 수 없다. 교회가 기독교적 진리와 정의에 기반해 철 지난 색깔 논쟁을 극복하고 이념 논쟁에 대응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포용과 통합의 정신을 회복하고 어떻게 사회에 진리와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을지 묻고 답을 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랜 시간 개신교의 극우 세력을 연구해 온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이사는 한국 사회가 양극화한 데는 한국교회 탓도 있다고 했다. 그는 김진홍 목사 등이 주도한 2003년 3·1 구국 기도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개신교의 극우주의 정치 세력화가 시작됐다고 봤다.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중심으로 개신교가 주도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담론이 형성되면서 개신교가 거대 정치 연합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밟아 왔다고 말했다.

김진호 이사는 이러한 양극화는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소수에 불과한 개신교 극우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쳐 교회가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고 극우 세력이 개신교계를 과잉 대표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방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주류 제도권 교회의 혐오와 극단화한 목소리를 견딜 수 없어 떠난 이들을 ‘떠돌이 신자’라고 명명했다.

김 이사는 “한국 개신교 내부에서 (일부 대형 교회를) 지탄하고 자성하는 목소리와 함께 재정 투명성, 이웃에 대한 나눔 등을 강조하는 교회들도 생겨났다. 발제자가 말한 진리와 정의, 포용과 통합은 한국교회를 앞에서 이끌어 가는 이들에게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실망하고 변방과 경계를 넘나드는 떠돌이 신자들이 변화를 부르짖고 있다. 이제 그들을 찾아내고 소통하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추락하고 있는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동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했다.

한편, 조성실 시사평론가는 최근 촉발된 이념 논쟁은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의 적절성을 물었던 한 여론조사에서는, 20대의 15.7%가 이 이슈에 대해 ‘모름/무응답’이라고 응답했다. 한국 사회 20대 청년 6명 중 1명은 이념 논쟁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조성실 평론가는 “2030 세대를 짓누르는 이념은 끊임없는 경쟁과 생존의 문제, 비교로 인한 좌절과 고립이다. 우리는 2030 세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 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함께할지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된 즈음 태어나거나 자란, 그야말로 탈이데올로기 키즈들에게 최근 촉발된 이념 논쟁은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며 “전통적 이데올로기에 가려져 있지만 핵심 이슈 중 하나로 부상했던 페미니즘 같은 것들이 우리 사회의 통합과 평화를 위해 반드시 논의돼야 할 이념”이라고 말했다. 조성실 평론가는 “교회가 이런 사안에 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어떻게 말할지 더 깊은 고민과 씨름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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