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 근로자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근로조건 명시한 서면계약 필요”

기윤실, ‘부교역자 동역 서약서’ 제안…”교회도 노동법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 지켜야”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대법원이 교회 전도사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전도사의 임금을 체불한 담임목사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성직자’로 여겨져 왔던 전도사 역시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이번 판결에 대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정병오·정현구·조성돈·조주희)은 ‘전도사의 근로자 인정 판결이 교회에 미칠 영향과 대책’이라는 주제로 12월 8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긴급 포럼을 진행했다.

5년 8개월 동안 춘천 ㅅ교회에서 근무한 전도사 A는 임금 약 7900만 원과 퇴직금 약 1700만 원을 지급받지 못했다며 담임목사를 고소했다. 2020년 11월 춘천지방법원은 담임목사와 전도사 A는 고용주와 근로자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교회는 교인들의 헌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또한 A의 업무는 교회에 대한 봉사 활동이라며, A가 받은 돈은 근로 대가가 아닌 사례비라고 봤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담임목사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A가 담임목사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업무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와 감독을 받았고, 교회에서 받은 돈은 근로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고 했다. 또한 A가 작성한 서약서에 겸직 금지 조항 등이 있었다며, A가 받은 돈은 생활 보조금 차원의 사례비가 아닌 생계 수단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파기환송했지만, 전도사를 근로자로 인정한 것에는 잘못이 없다며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판단을 유지했다. 공소시효가 완성된 부분을 제외하고 금액을 재산정하라는 이유를 들어, 파기환송심에서는 벌금만 50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8월 대법원은 재상고심에서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이상민 변호사(법무법인 에셀)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전도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점이 구속력 있는 판례가 됐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이전에도 전도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판결은 있었지만, 대법원에서 판례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에서 상고심과 재상고심 두 번에 걸쳐 전도사에게 근로자성 판단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기 때문에, 이후에도 법원은 관련 사건에서 전도사를 근로자로 보고 판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도사가 근로자로 인정된 것은 노동법이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해고 제한, 근로시간, 연장 근로 수당 규정을 비롯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최저임금법 등 노동 관련 법률이 적용된다는 의미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향후 부목사 또한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지금까지 법원은 부목사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 오고 있다. 이상민 변호사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부목사도 업무 수행 과정에서 담임목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면서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평등한 관계가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법원은 부목사가 담임목사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고 판단해 부목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교역자들이 사역을 시작할 때 근로조건 등을 명시한 서면계약을 체결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 여건상 당장 근로기준법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표준 근로계약서에 준하는 내용으로 서면계약을 체결하면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장기적으로 근로기준법 및 기타 관련 법을 제대로 준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노무사는 이번 판결로 전도사들도 4대 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이 의무화될 수 있다고 봤다. 이 노무사는 “노동법은 국민에게 적용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교회도 노동법으로 이런 ‘최소한’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교회는 ‘하나님의 일’이라며, 일 자체에 대한 대가가 아닌 종교적 봉사와 헌신에 대한 감사나 목회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명목으로 사례비를 지급했다. 교회의 노동 현장은 법의 적용이 미치지 않는 영역으로 취급됐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그 어떤 분야보다도 노동 인권 감수성이 상당히 후퇴돼 있다”고 했다.

이재호 노무사는 이번 법원 판결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필요성이 인정된 만큼, 교회의 상황에 맞게 ‘사역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이 노무사는 “전도사들은 사역 기간이 명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매년 연말이 되면 ‘내가 이 교회를 계속 섬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 사역 계약서를 통해 기간을 정하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는 담임목사가 부교역자를 자신의 목회를 돕는 도구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동역자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목사는 “과거 부교역자는 하루살이와 같았다. 해고를 당하면 바로 교회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보듯, 앞으로 이러한 폭력적 행위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는 교회가 사회를 이끌었는데, 지금은 사회의 인식이 교회보다 앞서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제라도 서로 동역하는 사역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기윤실은 이번 포럼에서 교회가 부교역자를 청빙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부교역자 동역 서약서’를 발표했다. 이 서약서에는 △동역 기간 △사역 시간 △사례비 △휴일 및 휴가 △전별금 △서약 해지 등 조항이 담겨 있다. 부교역자 동역 서약서는 기윤실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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