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7일 일하고 260만 원 받는 부교역자 위한 ‘동역 합의서’

‘사역 기피 현상’ 극복 위한 새로운 문화 도입 필요…”문서 작성, 낯설지만 모두에게 이익 되는 길”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주 5.7일, 일평균 9.8시간 근무, 월평균 사례비 260만 원. ‘한국교회 트렌드 2024’에서 조사된 한국교회 부교역자의 현주소다. ‘부교역자는 파리 목숨’이라는 자조 아래, 잊을 만하면 부교역자를 부당 해고하는 사례가 일간지에 보도되고 있지만, 이들의 처우는 수년째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정병오·조성돈·조주희)은 부교역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해 보고자,  5월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공청회를 열고 ‘표준 동역 합의서’를 발표했다. ‘함께’라는 뜻의 동(同)과 ‘사역’이라는 뜻의 역(役)을 더해, 교회(담임목사)와 교역자(부교역자)가 상호 동등한 위치에서 합의하고 사역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법원은 2023년 12월, 전도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을 내놨다. 이 판결은 전도사를 비롯한 부교역자 전반이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았다. 지난해 12월 8일, 이 판결의 의미를 분석한 기윤실은 교회에서 근로조건 등을 명시한 서면계약을 체결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며 ‘부교역자 동역 서약서’를 제안했다. 이번 ‘동역 합의서’는 이를 발전시켜 서약서의 법적 근거를 보완하고 교회 현장 상황을 반영한 개정안이다.

 

최근 한국교회는 부교역자의 ‘사역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트렌드 2024’에 따르면, 담임목사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전임 전도사·부목사 모집 시 지원자가 ‘아예 없거나 적다’는 응답이 82.8%를 기록했다. 응답자의 절반에 이르는 49.3%는 ‘교육전도사 지원자가 아예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전도사·부목사도 사역 기피 현상을 절감하고 있었다. 교육전도사 550명 중 82.7%가 이 현상에 동의한다고 응답했고, 부목사의 경우 365명 중 91%가 동의했다.

부교역자들은 사역 기피 현상의 이유를 교회 내 업무 환경에서 꼽는다. 전도사들은 ‘경제적 이유/업무량에 비해 너무 적은 사례비'(38.9%), ‘담임목사 또는 교육목사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갈등'(16%) 때문에 사역을 기피한다고 응답했다. 부목사들도 경제적 이유(48.8%)와 상급자의 태도와 갈등(15.5%)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일반 직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조건과 휴게 시간 등을 명시한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사역자가 근로자냐”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사역 내용을 서면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드물다. 주먹구구식으로 업무가 이뤄지다 보니, 사례비나 근무시간 등이 명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기윤실은 2016년에도 ‘부교역자 사역 계약서 모범안’을 발표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강문대 변호사(법무법인 서교)는 “지난 8년간 교회 내에서 부교역자의 서면 합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거나 안정적으로 실행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교회 내 오랜 관행을 바꾸는 데 있어 그 필요성과 절실성에 대한 홍보와 호소가 부족했다는 것을 한계점으로 꼽았다.

강 변호사는 2016년 발표한 모범안이 부교역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밝히고 이를 서면으로 약정하도록 권유한 데 의의를 지닌다면, 이번 동역 합의서는 모범안에서 아쉬웠던 점 등을 보완해 실제적으로 상호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부목사와 전도사에게 달려 있다. 이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고 안정적으로 목회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목회의 수준과 질도 높아질 수 있다. 교회와 교역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합의서를 체결할 때 교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사이면서 노무사로 일하고 있는 이재호 노무사(위디노무사사무소)는 부교역자가 자율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최소의 기준’을 설정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했다. 그는 “중요한 건 교회와 교역자가 협의하고 명시하는 데 있다. 합의서는 하나의 예시일 뿐 교회 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수정하고 활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재호 노무사는 계약서 작성 문화가 정착하려면 교회 내 만연한 ‘문서 작성에 대한 거부감’을 깨뜨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회와 사역자 간 어려운 건 기준이 애매할 때다. 이렇게 문서에 명시돼 있으면 얘기를 꺼내기 수월하다. 아직은 교회에서 문서 작업을 한다는 게 매우 낯설지만 분명 교회도, 사역자도, 서로 간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 노무사는 목회 현장이 “그 어떤 곳보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라며,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는 합의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김신구 목사(고성중앙교회)는 “부목사는 담임목사에 의해 중도 퇴직을 권유받거나 반강제적 퇴직이 비일비재하고, 담임목사 사임 시 자동 사임 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성과 전문성이 보장되긴 어렵다”면서 “부교역자 가족에게 추가 사역을 강요하거나, 이들의 삶에 사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게 강제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교회답지 않아 다투는 우리>(지우) 저자 홍동우 목사는, 부교역자의 업무가 프리랜서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 1년 주기와 절기를 고려해 교역자들에게 프로젝트 위주로 업무 내용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것을 제안했다.

홍 목사는 “수련회 기간이나 절기 행사 등 집약적으로 사역이 이뤄지는 기간이 있다. 이때를 제외한 시기에는 노동시간을 확 줄이고 시기별로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분배하는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또한 목회자 사례비는 생활 보조의 측면이 강하기에 교회에서 섬세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으며, 몇몇 교회를 선정해 이 제도를 도입해 보고 실제로 도움이 된다면 쉽게 교회 내에 정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 신동식 목사는 “향후 합의서가 교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부교역자 처우 개선에 관심을 갖고, 표준 사례비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도 연구해 나가겠다”고 했다. 기윤실 공동대표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담임목사는 담임목사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부교역자는 부교역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돼야 한다. 과거 대학의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니 자리가 대폭 줄어드는 바람에 또 다른 어려움이 야기됐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주시하며 교단 차원에서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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