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파도타기] 삼체_세계를 멸망시키지 않는 법

 

글_제르(구자창 기윤실 청년운동본부장)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페르미 역설’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망명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01~1954년)가 이를 처음 언급했다. 페르미와 에드워드 텔러, 허버트 요크, 에밀 코노핀스키 등 4명의 과학자들은 1950년 여름 미국 로스앨러모스에서 모여 외계문명의 존재 유무에 대해 대화했다.

이들은 우리 은하에 통신이 가능한 고등 외계문명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 얘기했다. 우리 은하에만 태양 같은 항성이 최소 1000억개가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인류밖에 없다는 결론이야말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페르미와 다른 과학자들은 우리 은하에 고등 문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직접 계산해봤다. 이른바 ‘페르미의 방정식’이다. 우리 은하에서 별이 형성되는 속도, 지구를 행성으로 거느린 태양과 같은 항성의 비율, 생명에 적합한 환경을 지닌 행성의 숫자 등등. 낙관적으로 계산하면 약 100만개의 문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페르미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들은 어디 있는가?(Where are they?)” 단순하지만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든 질문이었다. 외계문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그렇게 높다는데, 정작 지금까지 그들과 소통이 이뤄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지적이었다.

과학자들은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 시도했다. 그중에는 ‘어둠의 숲 가설(Dark Forest Hypothesis)’이라는 흥미로운 답변이 있다. 이 가설의 대전제는 우주에 존재하는 고등 문명은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두운 숲속에 내던져진 사냥꾼을 생각해보자. 피아 식별이 불가능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냥꾼이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다른 존재와의 조우를 피하거나, 만나는 모든 상대를 죽이거나. 이 가설에 따르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외계 문명과 접촉하기 위해 태양계 밖으로 전파를 쏘고 우주 탐사선을 잇달아 보내는 인류는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까운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3 Body Problem)은 바로 이 어둠의 숲 가설을 뼈대로 한 SF다. 원작은 중국의 작가 류츠신이 쓴 소설 3부작이다. 넷플릭스에 있는 삼체 시즌 1은 소설 1부에 해당한다. 여기서 삼체는 태양을 3개 가진 항성계(삼중 항성계)에 있는 가상의 외계문명을 가리킨다. 우리의 지구가 있는 태양계는 항성이 하나인 일체다. 항성이 두 개면 이체, 세 개면 삼체가 된다. 태양이 하나라면, 여기에 딸린 행성의 공전 궤도는 쉽게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양이 3개인 항성계에서는 행성의 공전 궤도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삼체 문제의 핵심이다. 현 인류가 달성한 물리학 수준에서는 여기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다.

우리 은하에서 4광년 떨어진 삼중 항성계에 사는 ‘삼체인’(Trisolarans)들은 3개 태양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없는 극한 환경에 놓여 있다. 3개의 태양에 동시에 가까워지면 삼체 행성의 표면은 고열로 타버린다. 반대로 3개 태양이 갑자기 멀어지면 행성 표면은 꽁꽁 언다. 3개 태양이 나란히 행성에 근접하면, 행성을 향한 중력이 커지면서 지표상에 있는 삼체인들이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버린다. 이들은 생존이 불가능한 ‘고열기’에는 마른 오징어처럼 건조 상태가 됐다가 생존 가능한 시기가 되면 수분을 공급 받아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삼체인들은 멸망과 재건을 무수히 반복하며 힘겹게 문명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삼체인들은 결국 3개 태양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항성계로의 이주를 준비하게 된다. 이때 이들에게 지구에서 인류의 존재를 알리는 메시지가 도착하고, 삼체인들이 약 4광년 떨어진 우리 태양계로 침공을 떠나며 벌어지는 일이 주된 스토리다.

 

ⓒ넷플릭스 I <삼체> 스틸컷. 오른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원제(진 쳉 분) 박사.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포인트는 삼체인들이 먼저 지구를 찾아낸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드라마는 1970년대 당시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탐사하는 미국의 SETI 프로젝트에 맞서 중국도 같은 목적의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설정했다. 중국의 과학자 예원제는 앞서 자신들이 보낸 메시지를 받은 삼체인에게서 섬뜩한 응답을 수신한다. ‘난 이 세계의 평화주의자’라고 밝힌 한 삼체인은 지구에 ‘내가 먼저 이 메시지를 받은 건 너희 문명의 행운이다. 너희에게 경고한다. 회신하지 마라. 회신하면 우리가 갈 것이다. 너희 세계를 점령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예원제는 도리어 ‘와라, 우리 문명은 이미 자구력을 잃었다. 이 세계를 점령하도록 내가 돕겠다’며 삼체인의 침략을 종용하는 메시지를 송신했다.

예원제가 이처럼 광기 어린 행동을 한 이유는 인류에 대한 절망 때문이다. 예원제의 아버지인 물리학 교수 예저타이는 문화대혁명 도중 제자와 부인에게 배신당하고 결국 홍위병들에게 살해된다. 시간의 시작을 논하는 빅뱅 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물론을 신봉하는 홍위병들은 시간의 시작은 곧 신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반동이라고 간주했다. 예원제는 이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물리학자였던 어머니가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 예저타이를 유신론자로 몰아가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에도 예원제는 마음을 줬던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믿었던 동료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며 인간 존재에 철저히 실망해갔다. 결정타는 그의 아버지를 죽였던 나이 어린 홍위병 탕홍징과의 재회였다. 탕홍징은 혁명의 과정에서 버림 받고 노역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있었다. 과학지식을 인정 받아 다시 과학자가 된 예원제와 처지가 뒤바뀐 것이었다. 예원제는 “참회하지 않을 생각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탕홍징은 “아무도 안 한다”고 냉소할 뿐이었다. 탕홍징은 오히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예저타이를 때려죽일 것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인류에 대한 근원적인 절망을 마주한 예원제는 결국 삼체인들을 인류를 멸망시킬 심판자로 선택하게 된다.

내게는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공상과학을 넘어 한 영혼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읽혔다. 단 하나의 영혼에는 온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반대로 이는 단 하나의 영혼에 온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얘기도 된다. 만약 예원제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거나 절망하지 않도록 위로해준 단 한 사람이 있었다면, 삼체인을 지구에 끌어들이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다. 그가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단 한 사람이 있었다면, 세계의 멸망을 바라는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세계를 파괴한 경험이 있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미워하거나 속이거나 배신하거나 무관심할 때 우리는 세계를 멸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영혼은 곧 하나의 세계이므로. 우리는 이 세계를 구원하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누군가를 칭찬하고 사랑하고 진실하게 대하고 신뢰를 지키고 친절을 베풀 때 우리는 세계를 구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영혼은 하나의 세계와 다름 없으므로.

이처럼 우리는 매일 수많은 순간에 멸망과 구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우리의 무수한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 가족과 친구, 이웃뿐만 아니라 잠시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관계없이, 이 일은 매일 같이 우리에게 일어난다. 이 세계를 멸망시키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지 않는 것, 바로 여기에 이 세계의 운명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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