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윤실 청년운동본부에서 청년들을 잇고 생각과 세상을 밝히는 이슈별 소모임인 ‘잇슈ON’이 지난 6월부터 진행되었습니다. 느슨한 공동체와 고민의 해소에 갈증이 있는 청년들이 일상과 사회의 관심사에 따라 소모임에 참여하여 안전한 소속감을 누리며 생각과 꿈을 나누고, 우리와 세상을 밝히는 파동을 만들어가는 시간들이었는데요! 함께 참여했던 잇슈ON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주고받는 마음이 우리를 구할 거야

김은숙(나 혼자 산다 참여 청년)

 

일을 하다 집중력이 떨어질 즈음 반가운 것 중 하나는 뉴스레터이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커피나 다과를 가지러 가는 것도, 안마의자에 쉬러 가는 것도 귀찮을 때라면 더더욱 그렇다. 집중력이 바닥을 친 5월 어느 날, 웨이브레터가 도착했다. ‘재미있는 키워드 뭐 있으려나?’ 하며 스크롤을 슝슝 내리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1인가구 #나혼자산다 #따로또같이 

 

그즈음의 나는 계속 서울에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29년 살던 고향을 떠나 혈혈단신 서울에 온 지 3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회사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애틋한 교회 공동체를 만났고, 살고 있는 집도 재계약을 한 상황이었다. 민들레 홀씨처럼 떠다니는 삶이 드디어 수염뿌리 세 가닥 정도를 내린 시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인간을 집어삼키는 <진격의 거인> 속 거인들처럼, 그것도 60M급의 초대형 거인처럼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다달이 월세가 나갈 때면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왔는가? 아니면 서울에 살기 위해 돈을 버는가?’라는 질문이 스쳤고, 아직도 주택 보증보험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답변만 되풀이해서 내놓는 회사(현재 살고 있는 사회주택을 운영하는 회사) 입장을 들을 때면 지금의 나는 물론 몇 년 후의 내가 동시에 불안해졌다. 퇴근하고서도 대학원이다, 부업이다, 스터디다 하며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도대체 얼마만큼 역량을 키워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조급함을 불러왔고, 밤이 깊을수록 6평 남짓한 방에 짙게 내리는 어둠과 적막이 싫어서 사람 떠드는 소리로 채워진 영상을 틀고 잠들었다. 그럼 꼭 영상 소리에 깨곤 했지만, 소리가 없으면 잠들기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염려들은 ‘이 삶은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하는 질문으로 귀결되었고, 질문은 어떤 해답이 아닌 불안과 고독으로 귀결되었다. 서울에서 지낸 3년, 나의 핵심 키워드는 ‘불안’과 ‘고독’이었다.

서울에 남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지난 3년을 돌아보았다. 엉망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엉망이었냐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빠그라져 있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촘촘하게 채워준 은혜의 손길과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은 3년 동안 아주 순차적이고 체계적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전락하였다. 20대 시절 배웠고 추구하던 ‘은혜’와 ‘나눔’의 삶은 ‘경쟁’과 ‘인색’한 삶으로 뒤덮여 갔다. ‘경쟁과 인색은 어쩔 수 없는 삶의 필수조건이야.’라는 명제를 학습하였고, 지금의 나는 이 명제를 쫓아 살다가 길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도시의 삶에 쫄지 않고 신앙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난 후자인 것 같아. 내 믿음은 별 볼 일 없는 고작 이 정도야.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매일 불안과 고독에 일비일비하며 살아갈 바에 여기를 떠나는 게 맞지 않을까? 내 그릇은 애초에 이 정도일 뿐이니까 이것은 어리석은 도망은 아닐 거야.’하는 결론. 어리석은 도망이 아니라고 결론 내긴 했지만,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동시에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서울을 떠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여기서, 빠그라진 삶을 재정비할 수 있으면 해자’는 마음으로 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뭐라도 해보자고 다짐할 무렵, 기윤실 <나 혼자 산다>를 만났다.

 

 

나를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의무감으로 찾은 첫 모임에서 왠지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호쾌한 두 사람, 모임장 냉이와 참여자 현정 님을 만났다. 우리는 피자를 먹으면서 다짜고짜 혼자 사는 삶, 이를테면 언제부터 혼자 사는 삶이 시작되었는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어디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집 크기는 어떤지, 월세인지 전세인지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별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중요한 무엇인가를 공유한 것처럼 낯선 이를 향한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얘기하다 보니 서울에 온 지 1년이 채 안 된 현정 님이 나와 대학 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학에서만 접하던, 타향살이 중 고향 친구를 만나 느끼는 반가움이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학교 다니던 시기도 겹쳐서 학내 기독교 동아리 연합 예배에서 몇 번이고 스쳤던 인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이 모임이 오래전부터 여기 있는 우리를 위해 준비된 모임이라는 (아주 오버스러운) 생각까지 들고야 말았다.

우리는 총 네 번의 모임을 가졌는데 네 번의 만남 동안 우리가 한 것이라곤 이런 것들뿐이다. 이를테면 심리랄지, 수면이랄지, 식생활이랄지, 1인 가구 청년 정책이랄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평양냉면 이야기로 빠져버려서 다음 모임으로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 것, 냉면을 먹고 초여름의 청계천을 걸으며 일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가 갑자기 치킨 이야기로 빠져버려서 다음 모임에서 치킨을 먹으러 간 것, 치킨을 먹으며 사랑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가 마지막 모임 때 일 보 전진한 사랑에 대한 소식을 나누고 선물 교환식으로 모임을 마무리한 것. 한 기관에서 준비한 모임이라기보다 퇴근하고 꽤 심심한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밥 먹고 산책하는 모양새가 우리 모임의 전부였는데, 이것이 <나 혼자 산다>가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로봇드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주고받는 마음이 이 도시의 우리를 살릴 거야.’ 두 달간 네 번의 만남을 통해 <나 혼자 산다>가 나에게 준 것은 주고받는 마음이었다. 혼자 사는 서로의 몸 건강, 마음 건강을 물어보고, 일을 하다가 시시콜콜한 메시지를 주고받고, 혼자서는 먹기 힘든 음식을 같이 먹고, 삶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 마음을 주고받는 것. 60M급 거인처럼 도시의 삶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다가도 이렇게 이웃과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한결 살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니, 도시의 정체는, 또 삶이라는 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도통 아리송하다. 하지만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한결 안도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이곳 도시에 있는 동안은 기필코 연결되며 살아야겠다. 나그네가 나그네에게 보내는 환대, 나그네가 나그네를 친구로 맞아들이는 우정과 연결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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