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택배 노동자 과로사 외면에 분노한 시민사회

‘고 정슬기와 함께하는 기독교·시민사회’ 출범
살인적 심야 ‘로켓배송’에 택배 노동자 쓰러져
쿠팡 “본사와 상관없는 일” 책임 회피에만 급급
“국회 청문회 열어 진상 파악·재발 방지책 마련”

 

“지난 5월 28일 쿠팡CLS 남양주 2캠프에서 택배 노동자 정슬기 님이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사망 100일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을 우선시하는 거대 기업 쿠팡은 사과는 고사하고 작업 지시와 압박이 이루어진 명백한 정황에도 본사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며 유족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배송을 전담하는 자회사 쿠팡CLS의 심야 로켓배송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난 고 정슬기 노동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시민사회가 힘을 합쳤다. 기독교와 시민단체 인사들은 24일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택배 노동자 고 정슬기 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 정슬기 노동자는 지난해 3월부터 쿠팡 배송을 위탁받아 처리하는 ‘굿로지스’와 계약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 실제 업무를 지시하는 곳은 쿠팡CLS였다.

그는 평소 오후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하루 10시간 30분, 주 6일 근무했다. 한 주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에 달했고 야간근무 30% 할증까지 고려하면 무려 77시간을 일했다. 그날도 그는 새벽 배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갑자기 사망했다. 사인은 심실세동과 심근경색 의증으로 과로사의 대표 질환이었다.

쿠팡CLS는 굿로지스 같은 영업점과 로켓배송 서비스 계약을 체결한다. 쿠팡은 아침 7시까지 배송 완료하지 못하면 지연 배송으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택배 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쿠팡 택배와 물류를 담당한 노동자들이 잊을 만한 하면 쓰러지는 것은 이런 살인적 시스템 탓이 크다.

그러나 쿠팡은 숨진 택배 노동자들이 자사 소속 직원이 아니라며 발뺌하고 있다. 노동자가 쿠팡과 직접 계약한 건 아니지만 쿠팡CLS 직원이 직접 업무 지시를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쿠팡의 주장은 거짓에 가깝다. 많은 국민이 이용하고 수십조 원의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라는 점에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고 정슬기 노동자도 과로사 직전 쿠팡CLS 직원이 카카오톡으로 무리하게 업무를 지시한 기록이 남았다. 직원이 “슬기 님 6시 전에는 끝나실까요. 00님(동료 택배 노동자) 어마어마하게 남았네요”라고 하자 정슬기 노동자는 “최대한 하고 있어요. 아파트라 빨리 안 되네요”라고 답했다. 직원이 “네 부탁드립니다. 달려주십쇼 ㅠ”라고 거듭 독촉했고 고 정슬기 노동자는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도 쿠팡은 고 정슬기 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실에 따르면 쿠팡의 살인적인 로켓배송 시스템으로 지난 2020년 쿠팡 칠곡센터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진 고 장덕준 노동자를 비롯해 지난 4년 동안 최소 13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사망했다. 쿠팡은 노동자들이 쓰러져 나갈 때마다 유족과 동료 노동자에게 사과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개인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고 정슬기 노동자를 위한 시민사회 대책위는 24일 출범 기자회견에서 쿠팡의 이 같은 무책임하고 뻔뻔한 태도와 살인적 로켓배송 시스템을 성토하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출범 선언문에서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라며 “로켓배송을 확대하겠다는 쿠팡의 계획은 노동자들을 계속 죽음으로 몰아넣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대책위 고문을 맡은 박득훈 목사(성서한국 사회선교사)는 “개인사업자인 택배 기사의 업무 시간과 업무량은 전문배송업체와 택배 기사의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는 쿠팡의 주장이 서류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이는 실질과는 정반대”라며 “쿠팡CLS는 엄연한 갑이고 전문배송업체는 을이고, 그 업체와 수탁 계약을 맺은 택배 노동자는 힘없는 병”이라고 질타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연대 발언에서 “쿠팡은 입사 모집 홈페이지에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라고 하고서는 새벽 배송과 야간노동으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당장 이 살인적인 노동조건부터 개선하지 않고서 노동자 건강을 운운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준비위원장은 “택배 노동자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과로 노동은 쿠팡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며 “고 정슬기 님의 과로사는 쿠팡이 만들어낸 타살이며 당연히 쿠팡CLS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 대표로 나온 고 정슬기 노동자의 부친 정금석 씨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다”며 “국회는 속히 쿠팡 청문회를 열어서 노동자들의 사망 사유를 명백하게 밝히고 다시는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 주시기를 청원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날 출범식에서 국회와 쿠팡을 향해 △정슬기 님의 죽음에 진정성 있게 사과할 것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대책 마련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로켓배송(심야 노동) 중단 △택배 노동자 과로사방지 사회적 합의 동참 △국회 쿠팡 청문회 즉각 개최를 요구했다.

다음은 대책위 <출범 선언문> 전문.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지난 2024년 5월 28일 쿠팡 택배 과로로 사망한 고 정슬기 님의 아버지 정금석 님이 9월 2일 국회 토론회에서 절규하는 심정으로 외친 말입니다. 슬프게도 이 외침은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피맺힌 외침과 똑같습니다.

지금 전국에서 쿠팡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안산에서 죽고, 인천에서 죽고, 충북 목천과 청주에서 죽고, 경북 칠곡에서 죽고, 서울 마장에서 죽고, 송파에서 죽고, 구로에서 죽고, 경기 동탄에서 죽고, 남양주에서 죽고, 제주에서 죽고, 경기도 시흥에서 죽었습니다. 2020년 이후 알려진 것만 해도 쿠팡에서 사망한 사람이 무려 21명이나 됩니다. 그들은 배달노동자였고, 물류센터 노동자였고, 조리 노동자였고, 대리점주였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산재사망사고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쿠팡은 전 국민 로켓배송 시대를 열 계획이라고 합니다. ‘우도’라는 섬에서도 로켓배송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서 쿠팡의 계획은 노동자들을 계속 죽음으로 내 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정슬기 님이 사망한 원인은 명실상부한 과로, 즉 연속된 고정 심야노동입니다. 쿠팡에서 1년 2개월 일한 정슬기 님은 평소 밤 8시 30분에 남양주 2캠프에 출근해 최대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이렇게 주 6일을 근무했습니다. 주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으로, 산업재해 판정 기준에 따라 야간 노동시간(오후 10시~오전 6시) 30% 할증을 적용하면 주 평균 노동시간은 무려 77시간 24분이 됩니다. 한 달에 4일밖에 쉬지 못했고 그 결과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고 몸무게는 10Kg이나 빠졌습니다. 이런 노동을 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슬기 님의 죽음에 대하여 한 의사는 “연속되고 고정된 야간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은 찾을 수 없었다”, “이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건 너무나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이라서 어느 나라도 시행되지 않는 노동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슬기 님을 비롯해 쿠팡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을 한 것입니다.

정슬기 님이 사망하기 4년 전 2020년 10월 12일 경상북도에 있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1년 4개월 동안 일했던 28세 노동자 장덕준 님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데, 장덕준 님의 사망 원인도 정슬기 님처럼 노동강도가 세고 업무량이 과도한 고정 심야 노동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그의 어머니 박미숙 님은 200시간이 넘는 CCTV 영상 분량을 7개월 동안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영상에는 장덕준 님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자주 나오고 죽기 얼마 전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모습이 발견됩니다. 장덕준 님이 과로로 무려 15Kg이나 줄어든 것에 대해, 그리고 뛰어다니며 일한 것에 대해 쿠팡은 장덕준 님이 다이어트를 해서 몸무게가 준 것이고 뛰어다녔다고 하지만 골프를 쳐도 저 정도는 된다고 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4년이 지나 발생한 정슬기 님의 죽음에 대해서도 쿠팡은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200시간 분량의 CCTV 영상을 7개월 동안 봐야만 했던 그 어머니의 고통을.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밤낮없이 동분서주하고 있는 정금석 님의 심정을.

쿠팡은 2021년 6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질 당시, 전통적 택배사의 고용 관계인 하청과 특수 고용이 아니라 직고용한 정규직 기사들이 배송한다며 합의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후 쿠팡은 기존 택배사와 같은 고용 구조로 탈바꿈했고 기존 택배사가 하지 않는 야간 배송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쿠팡은 아무런 사회적 제약 없이 노동자들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것입니다.

정부는 어떻습니까. 국토부는 지난 2년간 쿠팡 터미널 5곳을 점검한 뒤 노동시간과 휴식 시간과 폭염 대책 등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게다가 이 보고서는 택배노동자와 물류노동자 단 두 명만 인터뷰하고 쓴 것이라고 합니다. 폭염과 혹한 속에서 강도 높은 분류작업과 배송으로 노동자가 계속 죽어 나가는 데도 말입니다. 특히 배송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한 물량이 0.5%를 넘으면 위탁업체의 배송구역을 회수하는 악법인 ‘클렌징 제도’에 대한 현장 확인은 진행도 안 했다고 합니다. 대체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거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쿠팡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을 멈춰 세우기 위해 기독인들이, 교회가, 그리고 시민사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합니다. 정슬기 님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것입니다. 쿠팡이 진정한 사과와 참회를 할 때까지, 재발 방지대책을 세우고 제대로 실행할 때까지, 법과 제도를 바꿔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때까지 정슬기 님 아버지 정금석 님과 함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가 고정 심야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불의한 구조, 즉 자본에 대한 노동의 열위 구조를 타파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기독교의 본질적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하는 민주 시민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세로 우리 <쿠팡 택배 노동자 고 정슬기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이하 정슬기 대책위)는 아래와 같은 사항을 쿠팡과 국회와 정부에 요구하며 요구가 이루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해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

정슬기 님의 죽음에 진정성 있게 사과하라!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로켓배송(심야노동)을 중단하라!

택배 노동자 과로사방지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라!

쿠팡 청문회를 즉각 개최하라!

쿠팡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라!

2024년 9월 24일

쿠팡 택배노동자 故 정슬기님과 함께하는 기독교와 시민사회 대책위원회

다음은 대책위 참여 인사 및 단체 명단.

△고문단 –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 은퇴), 김상근 목사(전 KBS이사장), 김영주 목사(기독교 민주화운동본부 이사장), 박득훈 목사(성서한국 사회선교사), 방인성 목사(교회개혁 실천연대 고문), 신경하 목사(전 기감 감독회장), 안광수 목사(수원성교회 원로), 안재웅 목사(한국YMCA전국연맹유지재단 이사장), 이근복 목사(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삼열 박사(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이승렬 목사(한국기독교 사회봉사연구소장) 강내희(중앙대 명예교수), 강성남(전 언론노조 위원장), 김세균(서울대 명예교수), 남구현(한신대 명예교수), 단병호(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명진스님(전 봉은사 주지), 백도명(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손호철(서강대 명예교수), 신학철(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 양길승(전 녹색병원 원장), 장임원(중앙대 명예교수), 최갑수(서울대 명예교수)

△공동대표단 – 정병오 대표(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상임대표)외 참여단체 대표

△공동집행위원장 – 남기업 소장(토지+자유연구소), 손은정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김소연 운영위원장(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참여단체 –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도시공동체연구소. 민주시민기독연대, 성문밖교회, 성서한국, 수원성교회 사회환경선교부, 영등포산업선교회, 일산은혜교회, 장신대신대원사회선교모임, 희년함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김용균재단, 노동건강연대, 민생경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평등사회를사회를위한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백기완노나메기재단,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생명안전시민넷,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의당, 쿠팡노동자의건강한노동과인권을위한대책위원회, 한익스프레스물류창고화재참사故김형주님유가족모임(언약교회 성도) 이한빛(전 수원성교회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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