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집회, ‘다음 세대’ 위해 기도한다지만…정작 ‘입시 경쟁’ 문제는 못 건드려”

[인터뷰]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정병오 공동대표

 

[뉴스앤조이-최승현 편집국장]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연일 보수 교계 포화를 맞고 있다. 10월 2일 ‘예배와 기도회를 빙자한 주일 정치 집회를 공교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직후, 반동성애 단체들은 기윤실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하고 있고, 대회를 주최하는 손현보 목사(세계로교회)는 설교 시간 번번이 기윤실 이름을 거명하며 “바퀴벌레 같다”, “이완용 같다”며 저주하고 있다. 기윤실 해체 운동을 벌이겠다는 으름장까지 놓는다.

10·27 집회에 반대하면서도 기윤실 성명 내용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성소수자 혐오보다는 주일 집회 참석을 문제 삼고, 전형적인 보수 교계의 정치 집회인데 웨스트민스터 신조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반동성애 진영이 기윤실을 이렇게까지 공격하는 이유는, 성명서 내용이 보수 신앙을 지닌 교인들에게 유효하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성명서 초안을 작성한 사람은 기윤실 정병오 공동대표다. 정 대표는 학생 시절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고신) 소속 선교 단체 학생신앙운동(SFC)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예장고신 소속 교회 장로다. 그만큼 보수 성향 교인들의 정서를 잘 안다. 평소 주일을 목숨같이 지키라고 가르쳐 오다가 이제는 그런 가르침과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나온 정신을 다 무시하고 주일날 집회에 참석하라고 하는 목회자들과 교단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그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뉴스앤조이>는 10월 15일 정병오 대표를 만났다. 그는 현재 기윤실 공동대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30년간 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는 교사다. 1987년 기윤실 태동 때부터 함께해 오다가, 기윤실교사모임에서 확대된 크리스천 교사들의 모임 ‘좋은교사운동’을 만들고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시교육청이 세운 고등학교 1학년들의 진로 탐색을 돕는 공립 대안학교 ‘오디세이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번 10·27 집회와 관련해 어느 교계 언론도 비판적으로 취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전화를 받은 게 처음이라며 “사태가 이 정도 됐으면 <국민일보>나 CBS가 연락할 만도 한데, 연락이 없다. 그만큼 집회 주최 측이 힘이 있고, 다 장악을 하고 있으니 보도가 안 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우선 이번 집회를 심각하게 보고 성명서까지 작성하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광화문 집회가 그전까지는 그야말로 ‘전광훈 집회’였잖아요. 그 집회에 많은 사람이 동조했지만, 교단 차원에서 집회 참석을 결의한 적은 없어요. 사람들이 다 선을 그었던 겁니다. 워낙 품격이 없었고 거칠고 이러다 보니까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공적 차원에서는 선을 그었다는 거예요.

10·27 집회는 순수해 보이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번 집회를 기회로) 교권을 쥐려는 것 같기도 하고, 리더십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끼어 있는 것 같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집회를 한국교회 교단과 지도자들이 공적으로 결의하고, 그걸 집행한다는 거예요. 이거는 선을 한참 넘어 버린 것이라고 봤습니다.

– 이번 10·27 집회에는 유난히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 제목이 많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100대 기도 제목’ 중 하나를 보면 “20. 이미 대한민국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는 역사 왜곡과 친이슬람 편향성뿐만 아니라 동성애 및 트랜스젠더를 미화하고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혐오로 몰아가는 내용을 가르”친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교육 전문가로서 이러한 주장들을 어떻게 보시나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한민국에 있는 40만 교사 다 모아서 물어봐도 다 의아해할 겁니다.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전부요. 왜냐면 지금 학교에서 어떤 가치 교육도 하고 있지 않거든요. 할 여지도 없고요. 공교육에서 그런 교육을 하면 양쪽에서 포화를 맞을 겁니다.

오히려 가치에 대한 교육이 너무 없는 게 문제예요. 어떤 가치를 놓고 서로 토론도 해야 건강한 사회가 될 텐데 입시 때문에 신경 쓸 겨를도 없어요. 입시·지식 교육밖에 못하고 있는 게 현재 교육계가 직면한 문제거든요. 그런 게 전혀 없는데 뭘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실제로 교육 현장은 어떤가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학교 교육 현장이 무너져서 다음 세대가 다 망가진다”고 하죠. 그런데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성소수자를 포용하자고 가르친다든지, 아니면 성 윤리를 무너뜨린다든지 그런 교육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보수 교계 주장을) 교사들은 너무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학교는 입시만 하지 그런 가치에 대한 것들을 전혀 교육하지 않아요. 동성애 문제는 이슈도 안 됩니다. ‘학교 폭력’ 같은 게 이슈죠. 학교 상황을 기본적으로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학생 인권 조례를 막아야 한다는 기도 제목도 있는데요.

아이들이 인권 조례에서 관심 있는 부분은 주로 두발·복장, 그리고 제일 핵심적인 게 핸드폰이죠. 인권 조례가 동성애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학생 인권 조례가 있는 교육청이 있고 없는 교육청이 있어요. 양쪽 아이들의 교육 가치관을 비교해 봐도, 차이가 전혀 없단 말이에요. 대구든 서울이든. 왜냐면 그게 애들의 관심 분야가 아니니까요.

–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청소년들을 위해 해야 할 ‘진짜 기도 제목’은 무엇일까요.

청소년들 같은 경우는 사실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죠. 대중문화, 매체 영향을 받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문화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어른들이 집회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겁니다.

정말 한국교회가 아이들을 염려한다면, ‘입시 문제’를 말해야 합니다. 이 경쟁에 찌들어서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너무 많아요.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도 많고요. 위기 상황에 몰려 있는 아이가 많은 상황이거든요.

그런 아이들을 불쌍히 여긴다면, 한국교회가 먼저 나서서 입시 경쟁을 없애자고 해야 합니다. 입시에 눌리고 경쟁을 하다 보니 갈등이 많은데,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어 줄지, 아이들이 자기의 삶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지 고민하라는 겁니다.

– 그러고 보니 ‘다음 세대’와 ‘청소년’을 위한 수많은 기도 제목 중에 ‘입시’와 관련한 내용은 하나도 없네요.

이미 기성세대가 ‘나는 하나님보다도 돈이 더 중요하다’, ‘출세가 더 중요하다’ 혹은 ‘우리 아이가 신앙이 좀 없더라도 돈 잘 벌고 출세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 사람의 가치는 결국 돈이고 출세니까, 그건 건들 수 없는 거고 기도 제목에 안 나오는 겁니다. 양심에 찔리는 부분은 기도 제목으로 안 내는 거죠. 자기가 마약 안 하고 게임 안 하고 동성애 안 하니까. 그런 건 기도 제목에 나오죠.

왜 아이들에게 신앙이 없느냐고 한탄하나요. 입시에 찌들어서 토요일도 학원 가고 일요일도 학원 가고 아니면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교회 못 가는 애들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상황에 먼저 주목해야죠. 집에서도 신앙 교육 안 하고 입시 교육만 하잖아요.

아이들에게 자기 신앙이 생기면, 자기 가치에 의해 판단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고, 성경을 읽고, 자기를 정립해 나가면 되는데. 문제는 (동성애 반대한다고) 그렇게 외치는 교회들의 주일학교가 얼마나 잘되고 있나요. 신앙적으로 보수라면 그런 가치를 보수해야 하잖아요. 입시보다 신앙이 우선이라는.

– 결국 10·27 집회에 나타난 청소년들에 대한 우려에는 본질이 빠져 있다는 말이겠네요.

옛날에 바알을 섬기던 것처럼 물질과 쾌락을 섬기는 거죠. 한국교회가 부흥, 물질적인 축복을 섬겨 왔던 건 회개하지 않고 나머지 외부에 적을 만들어 공격을 계속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질이 우상이 되어 버린 이 현실을 회개해야 합니다. 결국 한국의 문제는 부동산과 입시 아닙니까?

우리 아이들이 동성애나 마약 때문에 다 무너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개별 가정을 보세요. 자기 자녀 교육, 그 교회의 신앙 교육 문제를 보세요. 그것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 혐오와 정죄 말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요.

기윤실이 ‘자발적 불편 운동’이라는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을 낮춰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세력을 모아서 크게 되고자 하는, 높아지고자 하는 그런 요소를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이웃 사랑이에요. 물론 한국교회가 외형적으로 구제와 봉사를 충분히 많이 하는 건 맞아요. 그러나 나에게 남는 것을 가지고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 열심히 믿어서,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고 그것을 통해서 많이 나누기는 하죠. 그러나 여전히 주위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그 시야를 넓혔으면 합니다. 전쟁, 기후 위기로 고통받고 불의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아요. 이웃 사랑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 기윤실이 이번에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마귀·사탄·바퀴벌레·이완용’이라는 폭언도 들었는데요. 이런 낙인을 찍는 행태가 매카시즘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죠.

매카시즘과 비슷하다고 봐요. 내용을 하나씩 따져서 분별하는 게 아니고,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거잖아요. 일종의 우민화 같아요. 교인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 ‘좌파’ 되는 거죠. 그냥 한두 가지 문구를 따 와서 딱지 붙이는 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봐요.
명성교회 같은 교회는 세습해 놓고,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들이 세습 반대하니까 “저건 동성애(지지자)다” 하잖아요. 오정현 목사가 뭘 하더라도 동성애 반대만 하면 대표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교인들을 똑똑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길러야 되는데, 딱지를 붙이면서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 버리는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이게 우민화죠.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형제자매잖아요. 같은 신앙을 가지고 고백하잖아요. 잘못이 있으면 서로 품어 주면서 말하면 되는데, 바퀴벌레니 이완용이니 하는 건 과연 신앙적 태도가 맞나요? 그게 보수 신앙인가요?

–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동성애 반대가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중요한 이슈죠. 저도 사실은 동성 결혼에 관해 반대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동성애든 이슬람이든 그런 것 때문에 교회가 망하나요?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면, 물론 교회에 영향은 있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무너지나요? 지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이 죽어 가고 있고, 기후 위기로 창조질서가 무너지고 있잖아요.

저는 이번 10·27 집회가 한국교회 역사에 변곡점이 될 거라고 봅니다. 금기를 너무 많이 건드렸어요. 보수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그 신앙의 근간도 건드렸고, 공교회·총회 차원에서 해서는 안 될 일들도 했죠. 10·27 집회 이후 반드시 이것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와 각 교단이 제대로 된 결정을 한 것인가, 반성과 평가를 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한국교회는 무너지는 상황을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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