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이 2025년 3월에게”

<5.18 광주기행> 후기

 

글: 홍천행 간사, 이명진 간사

오월 광주가 건네는 민주주의 수업

2025년 3월 28일~29일, 양일간 기윤실과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성서한국, 청어람ARMC 소속 12명의 활동가들이 함께했습니다. 각기 다른 세대와 지역에서 자란 이들이 1980년 5월의 현장을 찾은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과거의 광주가 지금의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듣고 싶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광주로 내려가는 길, 휴게소에서

광주로 내려가는 길, 휴게소에서

발걸음의 무게를 묻다

광주로 떠나기 전 사전 모임에서, 참가자들의 자기소개는 각자의 민주주의 체험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영남에서 자라 호남의 배우자를 만난 활동가는 시댁 식구들이 전하는 ‘제5공화국’ 드라마 속 광주 기억을, 부산 출신 활동가는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재조명 운동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해외에서 성장해 한국 현대사의 공백을 안고 있는 활동가는 ‘비어있던 기억을 채우려 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광주를 찾는 이유는 결국 오늘의 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금남로 벽면의 245개 총흔이 말하다

전일빌딩 245의 벽면과 꼭대기층 바닥 등에 박힌 헬기사격 자국은 시간을 초월한 경고장처럼 다가왔습니다. 전시관에서 마주한 1980년 5월의 흔적들은 유리장 속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경고였습니다. 벽면의 245개 탄흔 각각에서 “과거를 외면하는 권력은 반드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군사정권이 발사한 실탄이 시민을 향했던 그날과, 지난 12월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특전사 병력을 투입한 모습이 영상자료에서 중첩되었습니다. 계엄군의 M16 소총과 2024년 국회 유리창을 부수던 특전사의 모습이 45년의 시간차를 두고 공명했습니다.

전일빌딩245에서,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는 활동가들

전일빌딩245에서,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는 활동가들

자치공동체의 정신을 재발견하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치공동체: 정의·나눔·연대’라는 기록물이었습니다. 1980년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 동안 시민들이 자력으로 계엄군을 물리친 후 광주를 세계사에서 유래 드문 자치공동체로 만든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5월 24일 여성들의 나눔 공동체 활동 사진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1980년 5월 24일의 주먹밥과 2024년 12월의 선결제 커피가 45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광주 자치공동체의 정신이 2024년 겨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수천 명이 함께 만든 ‘선결제 지도’로 부활한 것입니다.

518시계탑 앞에서 설명중인 이명진 간사님

518시계탑 앞에서 설명중인 이명진 간사

518민주광장의 발언대가 전하는 것

발걸음을 옮겨 금남로로 향했지만, 구 도청과 구 상무관은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당시 희생자들의 주검을 임시 안치했던 구 상무관을 생각하니,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부상자들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주었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518민주광장에서 우리는 역사적 공간의 힘을 온전히 느꼈습니다. 1980년 5월 시민들이 모여 진실을 외쳤던 그 장소에서, 2024년 겨울 탄핵 촛불집회의 발언대로 이어진 민주주의의 흐름이 새삼 감격스러웠습니다. 80년 5월 시민들이 외쳤던 “비상계엄 철폐”와 “유신세력 척결”의 구호가 2024년 12월의 “윤석열 탄핵, 퇴진, 파면”의 구호와 겹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외침 덕분에 2024년의 평화로운 응원봉 집회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요?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출발점, 전남대학교

전남대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전남대학교 정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1980년 5월 18일 아침 계엄군에 맞선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며 5·18 민주화운동이 촉발되었다는 생각에 엄숙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문에는 5·18 사적지 제1호 사적비가 자리하고 있어, 당시 학생들과 시민들의 저항과 희생을 기리고 있습니다. 정문에서 후문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느낀 평온함은 과거 이곳에서 벌어진 치열한 항쟁과 대비되어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차분한 밤공기 속에서도, 이 길 위에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희생의 흔적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했습니다.

 

전남대 정문 앞에서

전남대 정문 앞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짓을

다음 날 아침 광주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5.18 자유공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현재 장성으로 이전한 상무대가 있었던 곳이고, 1980년 5.18 당시 수많은 시민들을 끌고와 불법 심문과 고문을 자행하던 곳입니다. 구 상무대의 정확한 위치엔 현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그 옆자리 518자유공원에 당시 공간을 비슷하게 재현해 두었습니다.

518자유공원(구 상무대 모습 재현 공간)

 

불법 심문과 고문, 한 방에 수십명의 시민들을 가두고 불편한 자세를 유지시켰던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모습

 

1980년 5월 18일의 항쟁은 약 10일(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부터 5.27 시민군 최후 항전까지)의 역사로 끝났지만, 살아남은 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이후에도 오래도록 지속되었습니다. 조작된 진술을 강요하는 불법 심문부터 고문과 폭행, 성고문, 식사 제한 등 인권유린은 전방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한 분도 있었고, 겨우 살아남았지만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받다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사과받지 못한 상처 속에서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조작된 증거로 거짓 재판을 받게하는 모습

 

신군부는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광주 시민들에게 거짓 재판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때 실형을 선고받은 분들 대부분은 이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잔혹한 역사입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며

광주기행 마지막 순서로 국립518민주묘지(신묘역),  망월동 광주시립공원묘지(구묘역)을 방문하였습니다.  5.18 당시 희생당한 분들은 제대로 된 예우를 갖추지도  않은 채 수레와 청소차 등에 실려 이리저리 매장되었습니다. 집단 매장이 이루어진 망월동 일대를 찾은 유족들은 이곳을 시민 묘역으로 조성하여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렸습니다. 그리고 한창 뒤인 1997년에야 국가차원에서 신묘역을 조성해 희생자 분들을 다시 모실 수 있었습니다.

5.18 민중항쟁 추모탑 앞에서

 

5.18 신묘역엔 5.18 전후로 희생당하신 분들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묘지가 조성돼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모티브인 ‘문재학’님, 5.18 추모곡 <임을위한행진곡> 서사의 중심에 있는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묘역도 이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구묘역 입구엔 5.18 시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의 비석이 박혀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오랜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망월동 광주시립공원묘지(구묘역) 초입 전두환 비석 밟기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와 질문

광주항쟁이 있은지 45년이 지난 지금도 최초 발포명령권자, 실종자들의 암매장 지역 등 많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혐오세력은 북한군 개입설, 공수부대원 사망설 등 온갖 가짜뉴스로 광주의 비극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계엄군의 총칼에 시민들이 스러져간 금남로 거리에서, 2024년 12.3 계엄을 ‘계몽령’이라 주장하는 개신교 집회도 있었습니다.

이런 시국에 다시 한번 1980년 5월 27일 새벽을 기억합니다. 최후 항전을 앞두고 광주시민들에게 외쳤던 가두방송을 떠올립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주십시오”

질문을 품고 다녀온 광주에서 잊을 수 없는 물음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1980년 5월이 2025년 3월의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느냐’ 묻는다면 우리는 떳떳할 수 있을까요.

망월동 광주시립공원묘지(구묘역) 표지석 앞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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