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배송 논쟁’ 속 노동자의 생명권 묻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경제활동인구 기준 1인당 연간 택배 이용률은 2024년 204.3회에 달한다. 택배 물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배송 노동자의 생명권은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쿠팡에서는 지난 10월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을 포함해 올해에만 네 번째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물류센터 노동자를 포함하면 8번째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사장:지형은 목사, 이하 기윤실)과 영등포산업선교회는 지난 12월 11일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쿠팡 등 심야배송 제한안 논쟁에 관한 집담회’를 열고 택배·물류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와 심야배송 제한안을 둘러싼 사회적 쟁점을 논의했다.
국회는 2021년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택배 분류 전담 인력 투입, 택배기사 사회보험료 원청 부담, 주 60시간·1일 12시간 초과 노동 금지 등을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쿠팡은 당시 물류업체라는 이유로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지 않았고, 합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후 쿠팡은 2021년 국토교통부로부터 택배사업자 승인을 받았지만, 합의 이행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쿠팡은 올해 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노동조건 개선과 사회적 대화 참여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뚜렷한 변화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우상범 박사(한국노동사회연구원 전 객원연구원)는 쿠팡의 급성장 배경으로 로켓배송 중심의 배송 구조, 비정규직 중심 고용 방식, 정부기관 전반에 대한 로비, 해외 상장 기업 구조에 따른 책임 회피형 지배구조를 지적했다.
우 박사는 최근 과로사 사례를 언급하며 심야배송 문제가 논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원칙적으로 야간 배송을 금지해야 하는 게 맞다”며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면 0시~5시 구간에 한해 인력 충원을 전제로 제한적으로 운영하거나, 품목을 신선식품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야간 배송 할증료를 부과해 이를 노동자 처우 개선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손은정 총무(영등포산업선교회)는 “기업이나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고발하고 악행을 드러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회적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 6일 심야배송을 하다 41세에 사망한 고 정슬기 씨 사례를 언급하며, 심야배송 문제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 총무는 11월 23일 광화문에서 열린 ‘과로사 없는 택배 만들기 시민대행진’에서 나온 발언을 소개하며 ‘생명을 담보로 하는 새벽 배송은 원하지 않는다’는 시민의 목소리를 전했다.
세 번째 발제를 맡은 이창호 본부장(기독교윤리실천 자발적불편운동본부)은 “더 빠르고 더 편하기 위해 한 영혼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심야배송 문제는 소비자 대 노동자의 갈등이 아니라 상생과 지속가능성의 문제”라며 “기독시민은 약자 보호와 공동선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소비자의 편리함과 노동자의 생명권을 대립 구도로 보지 말고, 상생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