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다문화 사회라고요?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지난 1월 14일 저녁, 기윤실 좋은사회운동본부 이주민운동은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의 저자 손인서 박사(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교수)를 초청해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다문화’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가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너머의 진짜 현실은 무엇인지 파헤쳐보는 시간이었습니다.

1부 강연: 우리가 속고 있던 세 가지 거짓말

손인서 박사는 강연 서두에서 최근 언론과 정부가 떠들썩하게 홍보했던 “국내 체류 외국인 5% 돌파, OECD 기준 다문화 국가 진입”이라는 뉴스를 언급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통계를 근거로 한국이 명실상부한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손 박사는 이를 ‘거짓말’이라고 단언했습니다. OECD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5%라는 수치적 기준을 공식적으로 제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부와 학계가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프레임’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현실은 무엇일까요? 손 박사는 한국의 상황을 ‘이민 없는 이민 정책’, ‘인종 기획’, ‘도구적 사회통합’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습니다.

먼저 한국은 노동력이 필요해 이주민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의 정착은 철저히 막는 ‘이민 없는 이민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노동 시장 외의 시민권 접근을 차단하는 ‘차별적 배제’와, 필요할 때 쓰고 돌려보내는 ‘단기 순환’ 원칙이 그 핵심입니다.

두 번째는 국가가 주도하는 ‘인종 기획’입니다. 한국 정부는 전문 인력(주로 백인·서구권)에게는 영주권 신청 기회와 가족 동반을 허용하며 ‘모셔야 할 인재’로 대우하는 반면,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비전문 인력(주로 유색인·개발도상국)에게는 정주와 가족 결합의 권리를 박탈합니다. 손 박사는 이러한 투 트랙 정책이 “국적과 직업을 인종으로 만드는 기획”이며, 이것이 한국형 인종주의의 토대라고 분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구적 사회통합’입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다문화 정책은 이주민을 동등한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때만 포용한다는 것입니다. 저출생과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결혼이주여성을 ‘재생산의 도구’로 삼고, 인구 소멸 지역을 채우기 위해 ‘지역 특화 비자’를 발급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시민이지만 시민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철저히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이주민의 현실을 뼈아프게 짚어주셨습니다.

2부 대담: 법을 넘어 구조를, 시혜를 넘어 권리를

이어지는 대담에서는 기윤실 이주민운동 김세진 전문위원(변호사)의 사회로 더 깊은 논의가 오고 갔습니다. 김 위원은 왜 굳이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다민족’이라는 단어를 책 제목으로 썼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손 박사는 “‘다문화’라는 용어가 주는 온정적이고 평화로운 착시를 걷어내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문화적 차이나 다양성 존중이라는 말로 포장된 현실을 벗겨내고, 서로 다른 민족이 위계적으로 얽혀 갈등하고 있는 지금의 적나라한 상태를 ‘다민족’이라는 가치 중립적 언어로 직시해야 비로소 해법이 보인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최근 사회적 공분을 샀던 베트남 유학생 사망 사건과 강제 단속 문제도 다뤄졌습니다. 손 박사는 정부가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을 통해 이주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하고, 이를 통해 강력한 단속과 추방을 정당화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법 집행의 문제가 아니라, 이주민을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로 묶어두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라는 해석은 많은 참석자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최근 실패로 돌아간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손 박사는 이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돌봄 노동에 대한 천시’를 꼽았습니다. 정부가 돌봄 노동을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아르바이트 정도로 여기고 제도를 설계했기에, 이주민 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나쁜 일자리를 양산했다는 것입니다.

3부 질의응답: 현장의 고민들

행사 막바지에는 참석자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장애인 인권 운동에서 당사자가 원치 않는 ‘장애우’라는 표현을 거부했듯, 정부 문서에서 ‘다문화’나 ‘불법 체류자’ 같은 차별적 용어를 퇴출하기 위해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주민의 고령화 문제도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현장 활동가는 2000년대 초반에 들어온 중국 동포들이 이제 고령화되어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현실을 전했습니다. 이에 손 박사 역시 돌봄 노동자 중 70대가 있을 정도로 이주민 고령화가 심각하다며, 이들을 하루빨리 복지 체계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고 공감했습니다.

탈북민을 이주민 범주에 포함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있었습니다. 탈북민 당사자들은 ‘이주민’으로 불리는 것을 꺼리지만, 손 박사는 그들이 겪는 차별과 배제, 그리고 제3국으로의 재이주 현상을 볼 때 이주민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같은 민족’이라는 당위가 아니라, 이주민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줄 실질적인 지원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나가며: 환상에서 깨어나 진짜 이웃을 마주하기

긴 시간 이어진 북토크는 ‘다문화’라는 익숙한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손인서 박사의 말처럼 “이주민은 이미 우리의 이웃이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구성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손님’이나 ‘도구’로만 여기며, 진짜 시민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미뤄왔는지도 모릅니다.

기윤실 이주민운동은 앞으로도 ‘다문화’라는 환상 너머의 현실을 직시하려 합니다. 이주민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는 잘못된 법과 구조를 바꾸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눈 오는 밤, 뜨거운 고민을 함께 나눠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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