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은 누구냐’ 묻는 말씀에 곧장 제주도 난민에게 향했죠”
믿음의 다음세대는 ‘있다’ (2)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홍천행 간사
청소년 상담사 꿈꾸던 청년, 예멘 난민과 동고동락하며 활동가로 변신
“신앙은 나를 던질 수 있는 이유 … 이주 노동자 문제 전문성 갖고파”
생각에 비해 행동이 느리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느린 발걸음으로 세계 여행을 떠났고 여행 도중 예멘 난민을 돕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군산과 수원, 서울까지 전국 팔도를 오가며 사회의 주류 시선으로부터 멀어진 소외된 자들과 함께 했다. 느리다는 행동이 이 정도인 것을 보면 아마도 그의 이상은 걸음보다 한참 앞서가 있었나 보다.
어쩌다 보니 지금의 자리에서 일하게 됐다고 멋쩍게 털어놓는 홍천행 간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하지만 그의 삶의 궤적은 우연이라기보다 신앙이 이끈 선택의 연속에 가깝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기독교 활동가로 존재하게 한다고 고백하는 그를 지난 13일 기윤실 사무실에서 만났다.
예멘에서 온 강도 당한 이들
학사 장교로 20대의 상당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고 나니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전까지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그였다. 여태껏 꾹꾹 눌러 온 만큼 첫 여행은 제대로 가고 싶었다. 일본? 대만? 주변 국가들은 너무 가깝고 짧았다. 이왕이면 길게 가보자 싶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단신으로 몸을 실었다.
광활한 러시아 땅을 지나 아제르바이잔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보수적인 교단에서 독실한 신앙생활을 이어왔던 홍 간사는 먼 지척에서도 ‘주일성수’를 잊지 않았다. 아제르바이잔의 한인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따라 목사님의 메시지가 송곳처럼 마음을 찔렀다.
“너무나도 유명한 본문,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때 목사님이 ‘여러분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곧이어 ‘약자들, 소외된 자들, 소수자들도 여러분의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한인교회는 보통 보수적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분의 파송 교단도 아주 보수적인 교단이었는데 그런 메시지를 들으니 신선했죠.”
그때 마침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입국해 지원 활동가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달랐다.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너의 이웃이 누구냐”는 말씀. 강도들을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피 흘려 쓰러진 이의 모습이 일말의 희망이라도 찾고자 제주도에 온 난민들과 겹쳐 보였다.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예약을 마쳤던 조지아에서의 일정만을 마치고 곧장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다.
홍천행 간사가 제주도에 도착한 것은 2018년 8월 중순. 제대로 짐을 풀기도 전에 예멘에서 사역했던 박준범 선교사가 설립한 단체, ‘예멘친구들을 위한 사마리안들’에 합류했고 쉼터에서 난민들과 함께 살았다. 그렇게 약 반년간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토종 한국인 홍 간사가 아랍어를 할 줄 알 리 없었고 난민들 역시 한국어가 생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제 공용어라는 영어조차 이곳에선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영어보다 유구한 전통의 공용어, 손짓발짓에 진심을 보태 그들과 마음을 나눴다.
“대단히 특별한 일을 하진 않았어요. 그저 같이 지내면서 밥 해 먹고, 한국어 공부하고, 놀러도 다니고. 정말 친구처럼, 이웃처럼 지냈죠. 그렇게 함께 했던 시간들이 지금도 잊히지 않고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제주도에서의 기억은 홍 간사의 진로도 바꿔놨다. 청소년 학과를 졸업해 상담교사를 꿈꿨던 그가 난민학 공부에 뜻을 품게 된 것이다. 깊게 공부하고 싶어 유학을 준비하면서도 난민들을 향한 마음은 놓지 않았다. 출도 제한이 풀린 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수원에 주택을 하나 빌려 쉼터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의 혹독한 겨울에 적응하기 힘들 예멘인들을 위해서였다. 순탄히 준비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유학길이 막혔습니다. 비자와 항공권까지 준비했는데 모든 것이 취소돼 버렸죠. 그런데 그 와중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어요. 난민 친구들이 일하면서 산재 처리를 받지 못하고 불합리한 처우를 겪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가니까 한국인 지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산재 처리를 해주더라고요. 자연스레 노동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옳음을 택할 수 있는 이유
지원 공고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이름만 알고 있는 단체였다. 기윤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는 지원 과정에서 자세히 알았다. 2023년 8월 입사해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이미 중추 역할을 맡아 기윤실의 행사 어디서나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 운동을 하는 형태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운동,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물꼬를 트는 역할이 있는가 하면, 다른 두 번째는 길이 열린 그 운동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확산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보는 기윤실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제 겨우 2년 반 일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사역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쿠팡 배송노동자로 일하다 세상을 떠난 고 정슬기 님의 유족과 함께 연대하며 처음으로 쿠팡의 사과를 이끌어 낸 일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 단속 과정에서 사망한 뚜안 님을 추모하기 위해 대통령실 맞은편에서 가진 기도회에서 대표 기도를 맡았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사실 홍 간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영역들은 기독교계 밖에서 훨씬 활발한 논의와 운동이 벌어진다. 오히려 기윤실이 추구하는 가치와 활동들은 교계 안에서 마이너리티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가 신앙 안에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전 오히려 신앙이 없는 분들이 자신을 투신해서 사회활동가로 산다는 것이 굉장히 경이로워요. 저에게 있어 신앙은 타인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중요한 동력이거든요. 옳음을 택할 수 있게 하는 이유이자 내 이익이 아닌 공공선에 관심을 두게 하는 근거가 신앙인 셈이죠. 물론 어디서든 가치관에 맞는 곳이라면 일할 수 있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뿌리 안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윤실은 좋은 활동처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생각에 비해 행동이 느리다고 수줍게 이야기하는 홍천행 간사. 하지만 고통받고 있는 약자 앞에서, 정의롭지 못한 현실 앞에서 지금껏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결코 느리지 않다. 벌써 홍 간사의 시선은 다음 지점을 향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해보라”던 교회학교 선생님의 조언은 지금도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2028년이면 예멘 난민들이 들어온 지 10년이 돼요. 당시 사마리안 하우스를 거쳐 간 분들만 50명이 넘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추적하고 어떤 점을 필요로 하는지 연구해보고 싶어요. 요즘은 이주 노동자들의 문제에 좀 더 전문성을 쌓기 위해서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고요. 어디서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느린 걸음이지만 순종하는 크리스천으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