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10일(주일)-10월8일(주일) 매주 주일 5주동안 서울 광천교회에서 부부교실이 있었습니다.
참가한 분의 후기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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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보다도 따스하게 느껴졌던 추석이 지났음을 굳어버린 송편을 보며 느낍니다. 7년을 한결같이 힘들다고 느꼈고, 난 시댁의 식구보다는 일하러 잠깐 들른 타인처럼 허한 빈 공간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추석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기에 고된 줄 모르고 그렇게 몇일이 지났습니다.
“여보! 수고했어.” 라는 한 마디가 그간의 피로를 풀어주며 간혹 마음상한 일이 있을 때는 빨리 치유가 되는 말이 줄은 몰랐습니다.
부부교실의 조별 나눔을 통해 알았지만 사실 저희 시댁은 시어머니께서 한 번도 가족들과 겸상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시집오기 전까지.
지금도 가끔 식사를 준비 할 때 제 밥과 숟가락은 놓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작은 예지만 생활 속에 묻어있는 며느리 천시(?)는 저를 우울하게 했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이 미울 때가 많았습니다. 편들어 주지 않는 남편. 그걸 밑천 삼아 당당하게 대하셨던 시댁의 분위기. 저의 우울함. 부부싸움으로 연결.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남편과 시댁 어른들께서 특별히 제가 미운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부부교실을 통해 알았을 때 제가 그리 분노할 것도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부부로서 부모로서 해야 할 일들은 늘었지만 남편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는 엄마의 역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그로 인해 우울해 하는 큰 아이를 생각하고 오랫동안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대로 변화되기만을 기다릴 수 없어 한 달 여 동안 남편을 설득해 부부교실에 동참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열정대로 남편이 따라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참석 하지 않겠다고 화를 내는 남편을 보면서 한 때 포기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남편의 동참을 유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미약하지만 변할 것이 있다면 저라도 변해야 할 것 같아 처음에는 저 혼자 등록했습니다.
부부교실에 부부가 아닌 혼자 등록했기에 주변에서 우려의 말씀을 많이 해 주셨지요. 저의 노력을 알았는지 아침까지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큰 소리쳤던 남편이 오후수업에 참석하면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추석날 친정에 다니러 갈 때 차가 많이 막혔지요. 남편과 연애기간까지 12년을 차를 타면서도 막힌 도로나 귀성길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 날 막힌 도로에 서있으면서 내심 얼마나 불안했는지…….. 남편이 화 낼까봐 짜증낼까봐.
결국 의정부까지 갔다가 친정에도 못가고 양주 집으로 되돌아 왔을 때의 기분은 조금 서운했습니다. 막혀도 덕정동과 노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데……
차가 막혀도, 시간이 많이 걸려도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들지라도 고향길, 친정가는 길은 이 모든 난관이 있어도 우리고 가고 싶은 마음 난 그런 마음이었거든요.
화가 났지요. 그간 3일동안 내가 보여 준 노력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따지고 싶었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여보 내가 짜증내서 미안해요. 친정에 가고 싶은데 다시 돌아오니까 괜히 짜증이 나네. 그렇지만 빨리 친정에 가고 싶다.” 아주 절제된 목소리와 얼굴 표정으로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내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말해죠. “이대로 가면 4-5시간 걸려.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하루 종일 효도하고 하룻밤 자고 모레오자”고 난 남편이 짜증내지 않고 아니 소리 지르지 않고 차분히 대답해 주어서 고마웠고 서운한 마음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친정집에서도 예전에 없었던 자상함이 제 마음을 봄 눈 녹듯 녹여버렸습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내가 화를 내었더라면 별 것 아니지만 충분히 언성이 높아질 일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순간 저도 감정조절 할 수 있었고 ‘나 전달법’으로 말 할 수 있었구요. 남편은 흥분하지 않고 내 말을 들어 주었지요.
요샌 부부가 쉬운 사이가 아니라고 느껴져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늘 챙기고, 보듬어주고, 말 한마디에도 신경 써서 예우해야 하는 그런 사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5주간의 교육 후에 반성하건데 분명 전 남편을 나에게 있어 최고의 사람이 아니라 주위에서 최고의 사람으로만 대우했던 것 같습니다. 정작 우리 둘의 관계는 흐려지고 서로 함부로 하는 사이가 되었던 것은 남편 혼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저 또한 남편을 나의 왕으로 섬길 때 내가 원하는 부부, 부모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루하루가 기다림 속에서 보냈던 5주의 교육이 끝나고 마지막 부부가 무릎을 꿇고 손을 잡고 드렸던 통성기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소리내어 남편의 감사함과 저의 잘못,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제 남편은 말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눈물이 남편의 손을 잡고 있는 저의 손등에 떨어졌을 때의 벅참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내 남편도 벼할 수 있구나. 너무 몰랐고 냉전하기만 했던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보았을 때 노력하지 않고 시도해보지 않고 나쁜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저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눈물이 밑천이 되어 남편과 살아갈 남은 날들을 부유하게 살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부자입니다. 제 아에서 아니 우리 가족 안에서 천국을 찾았거든요. 하루 매 순간마다 함께 있어 감사함을 느끼고 배려하고, 보듬어 주는 이 마음들이 너무나도 벅차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람을 소중히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충격은 서로의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라고 해요. 부모도 자식도 위험한 순간도 아닌 배우자가 가장 큰 충격을 준다는 말이 다시금 내 남편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네요.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 남편이 있어 제가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열며 남편을 위해 맛있는 찌개를 끓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기쁨인지 저 이제 알 것 같아요.
가슴을 열어 정말 뜨겁게 사랑합니다. 제 남편을.
p.s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과 1기 부부교실 형제, 자매님과 하나 밖에 없는 제 남편, 또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2006년 10월 21일
전선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