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법원의 존엄사 첫 인정에 대한 기윤실의 입장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김천수 부장판사)는 2008년 11월 28일 소생 가능성이 없는 어머니로부터 인공호흡기에 의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김 모(여·75) 씨의 자녀들이 낸 소송에서, 병원 측은 김 씨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김 씨 자녀들이 경제적이며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독자적 치료중단 청구는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서울대학교병원장과 서울아산병원장이 제출한 신체감정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김 씨의 생명연장 치료가 무의미하고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연명은 인격적 행복 추구권에 저촉이 되기 때문에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판결은 환자의 상태에 대한 고려와 환자가 평소 자연스러운 사망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바 있어 판결한 것이지, 경제적이며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환자 가족의 독자적 치료중단 청구권을 인정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존엄사란 의식불명의 고통당하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해주기 위해, 의사가 연명장치를 제거하여 죽게 내버려 두는 행위를 말한다. 그것은 비자의적 소극적 안락사로서 이전에는 안락사의 범주에 속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존엄사’를 안락사의 범주에서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비자의적이라 함은 환자의 직접적 자기 의사 표시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소극적이라 함은 혈관에 공기나 약물을 주입하여 환자를 직접 사망하게 하는 적극적인 안락사가 아님을 표명한다. 소극적 안락사란 환자에게 달려있는 연명장치를 보류나 철회함을 통해 환자를 죽게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한다.

 

1998년 대법원은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을 통해 가족의 요구로 존엄사를 인정하여 환자를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가족과 의사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하였던 일이 있어 이번 판결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존엄사가 그간 여러 이유로 인정해야 함이 주장된 바 있다. 의사협회는 2002년 4월 의사의 사회적 역할과 의무를 규정한 의사윤리지침을 제정하면서, 소극적 안락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진 바 있으나, 종교계를 중심으로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는 반발이 있어왔었다. 또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안명옥 의원은 2006년 3월 ‘불합리한 연명 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의원 9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바 있었다.

 

이 같은 정황에서 법원의 소극적 안락사로서의 존엄사 인정에 대해 기윤실은 상당한 우려를 표명한다. 11월 28일의 법원이 내린 존엄사에 대한 판결은 비슷한 많은 환자 가족들의 소송을 유발한 것인바 혼란의 여지가 많다. 이와 같이 존엄사가 인정될 경우 인간의 생명을 경시여기는 풍조가 야기될 것인 바, 그 같은 미끄러운 경사길 같은 귀결이 될 것이며, 결국에는 생명존중의 입장을 후퇴시키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염려가 앞선다.(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우려를 갖게 된다.)

 

하지만 무의미한 치료를 하며 겪게 되는 환자 자신과 환자 가족의 정신적이며 경제적인 문제 고통, 그리고 혼수상태로 삶이 질이 떨어진 상태로 침상에서 계속 생명을 지탱하여야 하는 환자 자신의 어려움 등 많은 문제들이 감안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엔 환자 자신의 사전 의사 및 추정의사의 자율성과 환자 가족들의 어려운 상황 등을 고려하여 나름의 판정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계속 연명치료를 하고자 하는 가족들이 있다면, 그들의 자율적 의사결정도 인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의료보험 차원의 지원도 요청된다.

 

이를 위해 먼저 병원은 이런 환자의 문제에 대해 세심히 상담할 수 있는 체제와 상담실 등의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서 연명장치를 제거한다는 것은 환자 가족만이 부담할 짐은 아니며, 의사들도 어느 정도 함께 짐을 져야 한다. 정말 무의미한 치료라면, 의료진과 환자의 가족들의 신중한 의논을 통하여 중지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무의미한 치료임을 서로가 논의할 수 있는 합당한 제도적 장치와 합리적 협의과정이 전제됨이 없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안게 된다. 병원 내에 마련된 의료진과 환자가족, 자원봉사자로서의 법률전문인 및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병원윤리위원회(존엄사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심도 깊게 논의할 수 있는 인간적이며 신중한 장치를 만드는 일이 전제된다. 존엄사의 결정은 환자 가족만이, 의료진만이, 그리고 법조인만이 내릴 결정이 아니며, 모두가 주체가 되어 깊이 논의함을 통해 내릴 문제이다. 존엄사의 여부는 재판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기보다는, 병원 내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논의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출애굽기 20장 15절의 십계명 중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명한다. 우리의 이러한 행위들이 소중한 생명을 침해하는 일이 아닌지를 세심히 살펴야 할 것이다.

 

2008년12월2일

(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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