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가 본_드라마] <멜로가 체질>
조혜진 청년위원
“돈은 언제까지 없는거야?”
-“돈은 계속 없는거야.”
“응?”
언제부턴가 주변에 주식을 시작하는 사람과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었고 수다 시간 화제도 그에 맞춰 변화했다. 한동안 YOLO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가 젊은이들의 트렌드인 듯 싶었으나, 기후 변화 및 코로나 19 시대를 살며 불안감이 커진 청년들은 재테크로 눈을 돌렸다.
2020년을 사는 청년들은 욕망에 충실하다. 청년의 때는 무릇 가벼운 주머니만큼 신념과 사상 또한 청렴한 것이 상징인 시절도 있었으나, 요새는 풍요로운 삶과 안정성을 대놓고 추구하는 것이 크게 남세스럽지 않다. 속물 근성이라고 표현하기엔 그러한 추구가 기본권과 직결된 시대가 오기도 했고, 또한 추구 한다고 바로 자산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가난한 삶을 받아들였지만, 최선을 다해 풍성한 삶을 추구하는 것. 쉽게 설명할 수는 없는 요즘 청년들의 스탠스이다.
스스로 뽑고, 나만 아는 Personal Awards에서 2019년 드라마 부분 대상작은 ‘멜로가 체질’이었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화제성은 높은 웰메이드 작품이다. 영화 ‘스물’, ‘극한직업’으로 히트한 이병헌 감독이 드라마를 연출하며 감독주의적인 요소를 많이 첨가했다. 현대 청년들의 의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명대사와 동영상 클립도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주인공 중 하나인 ‘진주’는 드라마 작가이다. 지망생 ▷ 보조작가 ▷ 작가 데뷔로 이어지는 성장기를 거치며, 주체적인 신념과 가치를 드라마 곳곳에서 드러내는 매력적인 인물인데, 그녀는 부를 추구하고, 성공을 바란다.
극 초반, 오랫동안 500원짜리를 모아 만든 가족의 저금통을 훔치면서까지 명품 가방을 손에 넣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확실하고 가시적인 보상’이 되어주는 가방의 존재를 찬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명 드라마 작가의 보조 작가 면접을 볼 때도, 작품 활동의 목적에 대해 ‘가방’이라는 대답을 하는(것처럼 유추할 수 있는) 씬도 있다.
이처럼 진주는 욕망을 분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지만 본인의 인생관과 자아정체감을 잘 유지한다. 극 중 상대적 취약계층인 공시생 동생의 끼니를 틈틈이 챙기고, 같은 공시생인 동생의 연인에게까지 선물을 하는 ‘복지적 성격의 이타심’을 발휘한다. 또, 돈은 언제까지 없냐는 동생의 물음에, 진지하고 현실적인 썰을 풀며 돈에 대한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권고한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치관이 한 존재 안에 공존한다.
오랫동안 기독교 내부와 어른들은 교회가 인생의 ‘답’을 가진 것처럼 마케팅했다. 성경적 세계관이 해석하지 못 할 일상이 없음은 맞지만, 점점 복잡하게 분화되고 예측할 수 없는 시대 변화 속에서 ‘고정적인 답’은 위험하다. 재무관과 돈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청부론 vs 청빈론 극단의 이원론 속에서 청년들의 건전한 재무관은 길을 잃었다. 인생동안 돈과 긴 관계를 맺어온 어르신들이 제시하는 길에 배울 점이 있긴 하지만, 살아온 시대가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다른 세대가 보기에는 청년들이 돈과 맺는 관계가 불안해 보일 수도 있다. 어른 세대보다 풍요롭게 자랐지만 만족할 줄 모르고, 많이 배웠지만 나눠줄 줄 모르는 젊은 세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욕망에 휘청대는 듯이 보인다. 돈을 모으지 않는 소소한 ‘탕진잼’에 심취한다거나 한탕주의를 바라는 ‘비트코인’에 올인한다든가.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추구와 욕망에는 늘 타당성이 있었다. 재테크로 눈을 돌린 인과 관계 속에서도 그 타당성은 꾸준하다.
드라마에서 쇼윈도에 있는 명품 가방의 ‘나를 가지세요’라는 내래이션을 환청으로 듣는 진주의 눈빛이 탐욕스럽지만은 않고 오히려 정직해 보이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돈에 대한 고민의 답을 쉽게 내리긴 어렵다. 돈, 대체 돈이란 무엇인가. 매일같이 번민한다. 대출 업무를 담당한 지도 2년째다.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저소득 ·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늘 다양한 ‘빈곤의 문제’를 마주한다. 모바일로도 간편 대출이 되는 세상이지만, 한계가 있는 자원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분배해야 하다보니 절차가 까다롭다. 받는 서류의 종류도 많고 심사 과정도 복잡하다. 그래서 업무 중에 필연적으로 많은 사연, 많은 얼굴들을 마주해야 하는데 안타깝지 않거나 절실하지 않은 이는 없겠지만, 유독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은 역시 또래인 ‘청년’들이다.
부채가 많거나 신용등급이 낮거나, 심지어 연체의 위기에 처한 청년들의 통장거래내역서에도 ‘커피 한 잔’을 구매한 흔적은 발견된다. 하지만 이를 비난할 수 없다. 그들이 저신용의 코너로 몰리게 되기까지, 사회와 공동체가 주지 못한 행복감을 이 ‘커피 한 잔’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고군분투하는 모든 캐릭터들의 사랑스러움을 담담하게 담아내기에, 극이 끝날 때 쯤 모든 출연진은 나의 절친한 벗처럼 느껴진다. 청년센터WAY에서 만나게 되는 청년들에게도 그런 시선을 주고 싶다. ‘지원’에 의존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평가 절하 하거나, 왜 허리띠를 좀 더 조여매고 절약하지 않는지 답답해하거나,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맘몬도 숭배한다며 정죄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었음을 존중하고 본인도 모르게 축적해 둔 이야기들을 함께 발견하고 싶다. 돈은 계속 없는 것이라 해도, ‘그럼에도 넌 부자되어서 돈 걱정 하지 말고 행복하렴.’이라고 얘기해주는 친구가 되고 싶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