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가 본_영화] <소공녀> 환대와 신념

 

신근범 청년위원

(홍대부고 교사, 기윤실 청년위원, 청년센터 WAY 운영위원)

 

 

<소공녀>(Microhabitat, 2017)는 요즘 같은 계절에 잘 어울리는 영화다. 추운 겨울, 월세가 올라 집을 나오게 된 주인공 ‘미소’가 이 집 저 집을 떠돌면서도 특유의 밝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지금 내 삶에 미소가 있을까, 나는 미소같이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남기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씁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일당을 받고 산다. 가난하지만 착한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고, 담배와 위스키에 일당의 절반가량을 소비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으며, 한약을 꾸준히 먹지 않으면 머리가 하얗게 세는 병을 앓고 있다. 새해가 되어 월세가 오르고 담뱃값도 올라 재정 상태가 적자가 되자, 미소는 연애, 담배, 위스키, 한약 대신 집을 가장 먼저 포기한다. 갈 곳이 없어진 미소는 대학 시절에 함께했던 밴드 친구들(문영, 현정, 대용, 록이, 정미)을 차례로 찾아간다. 이 다섯 친구들이 미소를 어떻게 맞이하고 또 어떻게 떠나보내는지를 중심으로 영화의 주요 서사가 전개된다.

 

미소와 친구들의 만남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문영은 혼자 사는 싱글 여성으로 집에 미소를 재워 줄 공간적 여유는 있지만, 회사 일이 바쁘고 잠에 예민하여 미소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한다. 현정은 남편, 시부모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 미소를 재워 줄 처지가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정은 식구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미소를 집으로 들여, 하룻밤이나마 미소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대용은 아파트에 혼자 사는 남성으로, 미소에게 빈방을 내어 주긴 하지만 이혼으로 인한 상실감과 우울증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미소를 제대로 맞지 못한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술을 마시며 훌쩍이다가 잠들뿐이다. 록이는 노부모와 함께 사는 노총각으로, 갈 데 없는 미소의 처지를 알고 대뜸 결혼을 제안한다. 온가족이 합심하여 미소를 감금하고 소유하려 하자, 미소는 질색하며 서둘러 록이네 집을 탈출한다. 정미는 부자 남편과 함께 저택에 살고 있어 너그럽고 여유롭게 미소에게 방을 내어 준다. 정미는 수일 동안 미소를 호화롭게 대접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얹혀사는 주제에 눈치도 보지 않고 담배와 위스키를 맘껏 즐기는 미소의 생활이 염치없다고 비난하며 미소를 쫓아낸다.

<소공녀>가 나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타인을 어디까지 환대할 수 있는가?’이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는 다섯 친구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미소를 떠나보내지만, 사실 그들은 저 나름대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게 마땅히 할 도리를 다한 것처럼 보인다. 왜 미소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냐고, 그건 우정을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누가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모든 손님을 가족으로 삼을 수는 없다. 개인의 양심이나 우정만으로 동거를 영속할 수는 없다. 그러나 끝내 집을 구하지 못해 한강변에 텐트를 치고 사는 미소의 모습은 너무도 또렷하게, 머리 둘 곳 없으셨던 그분의 얼굴을 생각나게 하고, 또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새로운 상식과 질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환대하는 신앙을 어떻게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사는 동안,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미소를 다 떠나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공녀>가 나에게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신념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이다. ‘미소’는 돈도 없고 집도 없지만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사람들에게 구원자, 치료자, 위로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신비로운 권능은 독특하면서도 굳건한 미소의 신념으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인생의 목표가 빚 없이 사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전세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있고,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만 있으면 된다.’라는 신념으로 집을 가장 먼저 포기할 수 있다. 철없고 염치없다는 비난을 들어도, 한약을 먹지 못해 백발이 되어도, 미소의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남자친구가 미소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로 돈 벌러 떠나가겠다고 하자, 미소는 그와의 이별보다는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준비하겠다.’라는 그의 선택 자체에 배신감을 느끼고 슬퍼한다. 세상과 다른 기준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미소의 신념은 마치 흔들리지 않는 나라처럼 그녀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을 준다. 혹시 당신이 타협으로 점철된 일상에 지쳐 있다면, 소공녀의 거룩한 미소를 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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