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와 멘토 사이

 

글_용님(이용호 청년위원, 익산 기윤실 사무처장)

 

직장인들이 말하는 꼰대

 

1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유형

2위 ˝까라면 까˝라고 말하는 상명하복 유형

3위 ˝내가 해봐서 알아˝라고 말하는 전지전능 유형

4위 ˝네가 이해해˝라고 말하는 무배려 무매너 유형

5위 ˝너 미쳤어?˝라고 화부터 내는 분노조절 장애 유형

6위 다짜고짜 ˝야!˝라고 반말하는 유형

 

 

 ‘꼰대’라는 단어는 어느새 우리에게 안 좋은 이미지의 단어로 자리잡았다. 최근에 가장 인기가 뜨거웠던 앱 ‘클럽하우스’도 이제는 꼰대들의 파티가 되었다는 관련기사도 나온다. ([머니투데이] ‘핵인싸앱’이라더니 꼰대집합소?…벌써 열기 식은 ‘클럽하우스’)

 

 꼰대라는 단어가 프랑스어 ‘콩테(Comte)’와 영남 사투리 ‘꼰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그런 얘기는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네이버에 꼰대를 검색해보면 이렇게 나온다.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의미”

 최근에는 꼰대와 관련 책들도 쏟아져 나왔다. <90년생이 온다>(임홍택, 웨일북), <나는 꼰대로 살기로 했다>(임영균, 지식너머), <나꼰대>(원호남, 바른북스), <아직 꼰대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김성남, 갈매나무) <꼰대의 발견>(아거, 인물과 사상사), <꼰대 탈출백서>(임정훈, 우리교육) 등… 이렇듯 꼰대라는 단어가 가진 어감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물론 가끔 예외도 있지만).

 몇 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청년들사이에서 ’멘토‘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을 의미한다. 사실 멘토에게는 멘티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된다.

 

 그렇다면 ’꼰대‘와 ’멘토‘사이에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멘토는 질문하고, 꼰대는 자기 할 말을 한다는 것이다. 멘토는 멘티들이 찾아와서 멘토링을 요청한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언을 한다. 다시 말하면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꼰대는 다르다. 꼰대는 조언과 요청을 구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의 판단 하에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심지어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한다. 당신을 위한 말이라며 스스로를 자화자찬한다.

 

 실상은 교회에서조차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청년을 일꾼 취급하거나 교회 직분자들이 ’라떼는‘을 연발하며 청년들을 이해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우, 지원은 하지 않으면서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 청년들과 바이블스터디를 진행중이다. 약 20명이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모여 성경을 읽고 토론하는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교회에서는 말 만하지 들으려 하지 않아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약 20명 중 3~5명이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서 성경을 배우러 온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멘토와 꼰대의 또 다른 차이점은 멘토는 격려해주고, 꼰대는 지적질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힘든 이야기, 아픈 이야기, 고민거리를 꺼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자산이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고 격려해주기보다는 ”네가 이것을 잘못했네.“라든지 ”야~ 너만 힘들어?“라는 식으로 지적하고 답은 이것이라며 정해주기도 한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다시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하려 했던 자신을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해야한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 눈먼 자, 절름발이, 문둥병자, 굶주린 자, 애통하는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과부와 고아, 갇힌 자, 종교적 규정을 지키지 못해 억눌린 자 등과 같이 아파하고,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의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다. 그런 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기 생각이 답인양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꼰대는 나이든 기성세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꼰대“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내가 꼰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꼰대 불변의 법칙이 난무하는 이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멘토가 되어주길 바란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든 주위 사람들을 기다려주고, 공감해주며, 사랑으로 격려해주는 멘토와 같은 삶이야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빛과 소금‘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글들

2024.11.20

[SURFER's MOVE] 불편한 이야기 하는 편한 사이 (기독청년의 넘실넘실 3 촬영 후기)

자세히 보기
2024.11.20

[WAYVE letter] 불편한 이야기 하는 편한 사이(기독청년의 넘실넘실 3 촬영 후기) _84호

자세히 보기
2024.11.06

[Surfer's MOVE] 결혼과 비혼 사이, 청년과 교회 사이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