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VE letter 76호 보러가기
혹시 영화 ‘러브 액츄얼리(2003)’ 속 스케치북 고백에 설레신 적 있나요?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영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꿈꿔봤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때론 복잡하고, 때론 아프기도 하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오빠’, ‘배우자 기도’ 같은 단어들은 설렘과 동시에 부담감을 주기도 하니까요.
교회 안에서 연애가 쉽지 않다고 느낀 적 있나요? 사랑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은요?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우자’를 기다리며 막연히 기도만 하다 지쳐버린 경험은요? 사랑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지만, 동시에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기독 청년들에게 사랑과 신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 웨이브레터에서는『기독청년의 넘실넘실』- 청년들은 왜 연애하기 힘들까? 영상과 촬영에 참여한 기윤실 청년위원인 진영 님의 촬영 후기를 실었어요. 영상과 촬영 후기를 통해 판타지로 포장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까요? – 냉이 드림
‘판타지’를 떠나 ‘판도라’를 열다
(기독청년의 넘실넘실 2 촬영 후기)
글_오리너구리(윤진영 기윤실 청년위원)
들어가며 : 연애와 결혼이라니
반갑습니다. 기윤실 청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 목회자이자 목회자 청년, 목회 노동자 윤진영이라고 합니다. 늘 눈으로만 동참했던 웨이브레터에 얼마 전 함께 촬영한 ‘[기독청년프로젝트 Season 2] 『기독청년의 넘실넘실』- 청년들은 왜 연애하기 힘들까?’에 대한 사전 코멘트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기독청년프로젝트 II를 통해 소희 님, 자은 님, 종원 님, 현아 님과 저…. 이렇게 다섯 사람이 교회 안팎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청년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솔직·발칙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청년들은 왜 교회 안팎에서 연애하기 힘들까요?’가 주제였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사실 대화의 많은 분량은 교회 밖보다는 교회 안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대화의 스파크가 상당했던 기억입니다. 결국 영상의 두 편으로 나누어 편집했다고 전해 들었어요. 그 두 편도 아마 엄청난 분량을 덜어내 완성된 결과물일 겁니다. 연애와 결혼이라니, 아담과 하와 이래로 인류의 행복과 고통이 농축된 이 엄청난 대서사시의 주제를 어쩌다가 건드려 버린 걸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LA다저스 모자를 쓴 다섯 명의 연애와 결혼의 썰은 영상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 주세요.
(중략)
청년들은 왜 ‘교회 안에서’ 연애하기 힘들까요?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연애를 하기 힘든 큰 이유 중 하나가 저는 이런 ‘판타지’에 함몰된 사랑 이해에 있다고 생각해요.
(중략)
하지만 판타지는 말 그대로 판타지일 뿐이지요. 판타지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런데 판타지가 현실을 압도하니까, 연애와 결혼이 힘들어집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 사랑에 대해 교회 내의 판타지가 유지되고 확산될 수 있는 건, 이에 대해 대화할 수 없는 교회와 청년공동체의 현실에서 기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중략)
기독청년프로젝트의 이번 대화는 그런 판타지를 보다 또렷하게 발음하기 위한 한 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할 수 있으면 대화하게 되고, 대화할 수 있으면 어떤 판타지는 그 낭만적 아우라를 상실한 채 현실에게 그 본래의 자리를 돌려줄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믿음의 소통이었기에…. 어쩌면 우리 다섯 사람은 그토록 대화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가며 : All you need is love?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스케치북 고백은 진심을 전한 뒤 돌아서는 남성의 다음 대사로 마무리됩니다. “Enough, Enough now.” 이것이 오늘 청년 그리스도인들의 연애와 결혼에 판타지가 진정으로 남기고 싶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이건 판타지였으니, 다 확인하였으면 그만,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성서를 통해, 예수를 통해 발견하고 대면하는 사랑은 판타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 사랑들은 처절할 정도로 현실적이며 구체적입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이 충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위해서 사랑이 간절했던 이들의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모험의 궤적들에 판타지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그래서 판타지가 아니라, 한 번 열리면 닫을 수 없이 수많은 것들이 튀어나와 현실을 뒤덮는 판도라(의 상자)에 더 가깝습니다.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에서 연애와 결혼을 감행한다는 건 기존의 판타지들을 가로질러서 사랑으로 촉발된 걷잡을 수 없는 시공간의 상자를 여는 것, 그리고 그 불가역적 사건을 공동체로 대면하고 지지하며 견뎌내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청년의 연애와 청년의 결혼, 청년의 사랑을 오늘 여기 우리의 현실 언어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발화하고 대화해 봅시다.
제가 느끼기엔 기독청년프로젝트는 그런 노력의 한 조각이 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대화 실험이었습니다. 부디 이 실험에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Enough, Enough now”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겐 아직도 보다 많은 말벗과 더욱 오랜 대화가 필요합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오직 사랑(All you need is love)”이라는 달콤한 판타지를 떠나 “사랑이란 사실은..(Love actually)”의 살벌한 판도라를 여러분과 함께 열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케치북은 그만 내려놓고, 우리 같이 대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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