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노동은 발암 물질’ … 당장의 편의보다 정의로운 불편 택해야”
보다 효율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의 논리, 그리고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누리기를 원하는 본편 존엄의 추구는 끊임없이 부딪쳐왔다. 오랜 대결 구도가 이번엔 ‘심야 배송’ 제한 논쟁에서 펼쳐졌다. 두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기독교인이라면 효율과 이윤보다는 생명과 존엄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사장:지형은 목사)과 영등포산업선교회(총무:손은정 목사)는 지난 11일 ‘쿠팡 등 심야 배송 제한안 논쟁에 관한 집담회’를 열고 심야 배송을 둘러싼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히 ‘쿠팡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고 부를 만하다. 심야 배송 논란의 중심에 선 기업을 꼽자면 단연 ‘쿠팡’이어서다. 우상범 박사(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전 객원연구원)는 쿠팡을 ‘생태 교란종’이라고 표현했다. 다른 택배 회사들과 달리 쿠팡은 2021년 체결된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사건이 계속 벌어지며 2021년 주요 택배회사들이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체결했다. 분류 작업에서 택배 노동자를 배제하고 요금을 인상하며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 그리고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당시 쿠팡은 지금만큼 규모가 크지 않았고 자체 배송이 적어 합의 대상에서 빠졌다. 이후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하며 유통 공룡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괄목할 성장에는 이면이 있었다. 쿠팡은 일명 ‘클렌징 제도’를 통해 배송 노동자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클렌징 제도’란 당일 배송 시간을 지난 물품이 0.5%만 넘어도 배송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다. 사실상의 상시 해고 제도와도 다름없다. 과중한 업무에 실린 쿠팡 배송 노동자들은 지난 4년 동안에만 20명이 넘는 이들이 과로사로 목숨을 잃었다.
우 박사는 “지난 11월 새벽 배송을 하다 숨진 오 모 씨의 근무시간표를 보면 4~5일 연속 야간 배송이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7일 이상 야간 근무자도 존재한다”면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노동을 발암 물질로 분류한다. 야간 노동이 지속되면 몸은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되지 못한 생체리듬의 파괴가 누적된다”면서 야간 노동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올해 10월 쿠팡이 포함된 3차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지만 합의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상범 박사는 “개인적으로는 심야 배송을 전면 제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신선식품으로만 심야 배송 품목을 제한하거나 고객에서 2~3배의 할증을 부과해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에 사용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택배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조직화하고 노조에 가입해 대응할 필요도 있다”고 진단했다.
‘심야 배송도 개인의 선택’이라는 주장은 심야 배송 제한을 반대하는 주요 논리 중 하나다. 강제로 시킨 노동이 아니라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직업인데 법이 제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손은정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는 “과로사조차 개인이 선택했다고 할 수 있느냐”며 반론의 목소리를 높였다.
손 목사는 “심야 배송을 지속적으로 하면 근골격계질환과 부상, 심장질환과 같은 질병은 물론 고립감과 우울증도 유발한다. 지난해 41세의 나이로 사망한 정슬기 님의 경우 쿠팡에서 일한 지 불과 1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단 몇 년 사이에 과로사 사건이 이렇게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사태를 바라봐야 함을 뜻한다”면서 “‘사람이 죽지만 편한 길’과 ‘사람이 죽지 않는 다소 느린 길’이 우리 앞에 있다면 이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문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부의 역할도 당연히 중요하다. 우선 개인사업자로 ‘오분류’된 택배 노동자들을 ‘노동자’의 위치로 돌려놓는 것이 급선무다. 손 목사는 “쿠팡 배송 노동자들은 독립 계약자 신분으로 업무지시를 받고 노동은 하지만 개인사업자로 오분류되어 4대 보험과 산재보험 등 노동권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야간 노동 금지 조항도 적용받을 수 없다. 정부가 할 일은 이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을 되찾고 권리를 찾게 해주는 것”이라며 “누군가를 연료 삼아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독 시민의 역할을 주문한 손 목사는 “‘우리의 편리가 누군가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해야 한다. 세상의 빠름에 바름을 찾아가는 행동하는 기독 시민이 필요한 때”라며 “정부와 국회에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기업에게는 윤리적 책임을 촉구하며 소비자에게는 거룩한 불편함을 기대하는 활동을 통해 행복하고 따뜻한 세상을 꿈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