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윤리” (5:38~48)

 

정현구 공동대표 (서울영동교회 담임목사)

 

삶은 환경과 그에 대한 반응이 만듭니다. 그 반응은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고, 그 행동에 따라 환경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에 이르는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교회와 성도들이 보인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반응들이 만든 결과일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의 여러 이슈를 마주할 때마다 좀 더 성숙한 반응을 보였다면, 아니 상식적인 반응만이라도 견지했다면, 교회를 살리는 기회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고 하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율법해석과 그것에 따른 삶의 방식을 고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의’보다 더 나은 해석과 삶의 방식을 보여줄 때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이렇게 가르쳤으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면서, 당시 바리새인들이 가르쳤던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등의 율법을 교정하셨고 그보다 더 높고 옳은 해석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모세의 율법을 신봉했습니다. 겉으로는 복수를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과잉복수를 금지하는 법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마 5:39)라고 하십니다. 상대의 오른뺨을 치려면 오른 손등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행동은 모욕과 경멸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맞으면 상대에 대한 분노가 더 생겨서 필시 과잉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겉옷까지 주라, 십리를 동행하라, 꾸고자 하면 거절하지 말라고 하시며 비슷한 내용을 연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핵심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을 사용하신 셈입니다.

눈에는 눈으로 갚는 것이 기본적 정의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폭력을 행한 가해자나, 그에 대해 사법적 형태의 힘으로 대응한 피해자. 두 사람은 그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지만, 서로를 향한 적개심과 상처는 고스란히 남습니다.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게 만들 뿐입니다. 적은 바로 폭력 그 자체입니다. 힘과 폭력의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것, 세상 사람들이 붙들고 있는 고정관념입니다. 폭력이라는 적을 이기기 위해 폭력이 아닌, 그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폭력의 민낯을 드러내어 그것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폭력이라는 적을 이기는 강한 힘을 우리에게 사용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식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제도적 폭력으로 희생당하셨는데, 이 때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대제사장의 군병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고, 베드로는 단검을 꺼내서 군병 중 한 사람의 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 26:53). 그분은 강력한 힘으로 그것에 대응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보던 유대인들이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그때 보란 듯이 뛰어 내릴 수도 있었지만, 조용히 매달려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가한 폭력에 힘으로 대응하지 않으시고 더 높은 차원의 힘인 사랑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이것이 악인들을 구원하시고 나아가 악의 실상을 드러내며 악 자체를 이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게 하는 더 나은 반응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 그 중에 믿음, 소망, 사랑이 있습니다. 기쁨, 기도, 감사도 있습니다. 정직, 공의, 공평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양한 삶의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보여야 할 더 나은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앙적 반응이란 물맷돌을 우리의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삶에서 종종 골리앗과 같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신앙적 반응, 더 높은 반응이란 물맷돌을 골리앗을 향하여 던져야 우리는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기윤실은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기윤실이 이 역할을 잘 감당하면 한국교회가 이전보다 더 성숙하고 더 신앙적이고 더 윤리적으로 매사에 반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반응들이 거듭되면 이 땅의 교회는 신뢰를 회복할 것이고, ‘다른 반응’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이글은 열매소식지 제263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_ 정현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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