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에서 양림동까지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며 대화하는 민족의 명절 추석. 기윤실 식구들에게도 추석과 같은 날이 있습니다. 바로 ‘전국기윤실수련회’입니다. 각자의 터전에서 “세상의 길 위에서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기윤실의 표어답게 좁은 길을 걷다가, 한 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며 교제하여 사역의 활력을 되찾는 시간입니다. 수련회 첫 시간부터 만나자마자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수련회의 첫 일정이 시작된 곳은 바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자신의 삶을 내던져 헌신했던 선교사들이 잠든 곳입니다. 그들은 고국에서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권리와 안락을 버리고, 알려지지 않은 땅 ‘Corea’라는 나라에 복음을 들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병원과 학교 등 근대시설을 설립하고, 신분제와 당시 사회에 물든 악습을 걷어내는데 주력했던 선교사들. 이들 중 일부는 진정으로 조선과 조선인들을 사랑하여 일제의 무단강점을 세계에 알렸고 자주독립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씨앗과 밑거름이 되어 양화진 땅에 잠든 이들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수련회의 첫 일정을 보냈습니다.
백종국 이사장님의 개회사로 개회예배가 시작되었고, 기윤실의 자문위원장이신 손봉호 교수님의 말씀에서 묵직한 감동이 전해졌습니다. 과거 서양철학자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으로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다루어왔으나 기독교가 이런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 ‘관계’를 윤리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윤리를 개인의 의지나 선행이 아닌 인간관계에서 이해하여 이를 ‘정의’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이 기독인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신실함’이란 나를 위한 윤리가 아닌 타자의 행복을 영원히 추구하는 윤리가 되어야 한다며 말씀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양화진에서 잠든 선교사들의 일생이 떠올랐습니다. 오직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하여 자신의 안녕이 아닌 그들의 행복을 위해 희생했던 이들. 손봉호 교수님의 말씀과 그들의 인생을 보며 기윤실 운동의 방향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전국기윤실협의회의 시간에는 지역별 근황을 나누고 지역기윤실의 사업을 제안을 받았습니다. 특히 2017년 4월에 마무리 된 기윤실 비전컨설팅 결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이와 관련해서 각 지역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면서 기윤실 창립 30주년으로 이와 관련된 사업과 운동에 대한 좋은 제안을 많이 주셨습니다. 기윤실이라는 큰 지붕 아래 각 지역의 현안과 관심사별로 각개의 운동과 사업이 펼쳐지는 것, 또 그 운동들을 전개할 때마다 받는 한국사회와 교계의 피드백은 기윤실의 소중한 자산이며 역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박 2일의 전국기윤실수련회 일정은 영화<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를 관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쉐핑(Schepping)이라는 본명을 가진 독일 선교사 서서평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일제의 수탈로 궁핍했던 전남 광주를 중심으로 제주와 추자도 등에서 간호선교사로 활동하며,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을 보살피며 자신을 희생했던 선교사였습니다. 특히 여성의 자립을 위한 교육에 힘썼던 분이었습니다. 낮은 자들에게 진정한 섬김을 보여주었던 그녀는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수많은 여성들이 운구 행렬을 따르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서서평 선교사의 좌우명이 영화의 오프닝 문구로 소개 되었는데 그 문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서서평의 희생과 섬김은 호남지역 복음의 씨앗이 되어 양림동에 안장됩니다. 양화진에서 양림동까지. 조선인을 위해 그들의 신실함을 온전히 보여준 선교사님들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1박2일의 짧은 시간, 그 여정 속에서 저희는 그리스도인의 ‘신실함’과 ‘희생’을 톺아볼 수 있었고, 이러한 삶이 참 신앙이며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윤실 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는 동력과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 ‘신뢰받는 교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 우리 기독인들의 ‘신실함’과 ‘희생’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이글은 열매소식지 제259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_ 윤신일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