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신학은 한국사와 한국 종교사의 풍부한 유산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들도 120년 전 고려-조선시대 문집과 역사서를 공부하고 한국 신화와 설화들을 연구했다. 한국 기독교 인문학이 왜 시들고 있나? 한국학과 신학을 연결하는 작업이 적기 때문이다. 왜 한국 기독교가 쇠퇴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가?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의 종교와 역사와 문화를 외면하고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헐버트(Homer B. Hulbert 訖法, 1863~1949)는 1887년 한국인 어학 교사로부터 『동사찬요』(東史簒要)(8권, 1606)를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의병장 출신 남인 오운(吳澐)의 작품이었다. 오운은 3조선설(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을 수용하고 『동국통감』(東國通鑑)을 따라 기자조선을 높여서 문명이 기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았으나, 단군조선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 첫 장은 단군조선이었고, 그것을 공부하기 시작한 감상을 헐버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첫 페이지에서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만났다. 창조주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모험을 찾아 아버지에게 지상에 인간의 형태를 입고 내려가게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허락이 나서 그는 ‘바람’의 형태로 지상에 하강했다. 나는 그 구절을 보자마자 신약전서의 그리스어 원어에 나오는 삼위일체의 제3위가 호흡이나 바람의 뜻인 프뉴마(πνεῦμα)로 불리는 것이 떠올랐다. 이 ‘바람’(Wind)이 시냇가 나무 밑에 있는 처녀를 발견했다. 그는 그녀에게 숨[바람]을 불어넣었고, 그녀는 전설적인 한국의 시조인 아들 단군을 낳았다. 여기에 삼위일체, 성육신, 무흠수태(無欠受胎), 동정녀 탄생이 선언되어 있지 않은가! 이것이 서기전 2334년 경 곧 4270년 전에 일어났다고 선언하고 있다.[1]

헐버트는 이 구절이 신학자와 진화론자 모두에게 좋은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신학적으로 접근했고, 한국인이 근본적으로 유일신론자들이었다고 강조했다. 애니미즘, 귀신 숭배, 마술, 신인동형론 등의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보이지 않는 한 분인 환인(桓因)이 바로 하ᄂᆞ님이며, 그에 대한 우상은 만들어진 적이 없으며,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하게 초월해 계신다고 이해했다.

헐버트는 1900년 전후 <한국 평론(Korea Review)>에 한국사를 연재하기 위해 오성근(吳聖根)과 함께 공부할 때는 중섭(重燮)이 편찬한 『동사강요』(東史綱要)(7권, 1884)를 사용했다. 이는 『동국통감』과 『동사찬요』외에 소북파 조정(趙挺)의 『동사보유』(東史補遺)(1646)와 소론 임상덕(林象德)의 『동사회강』(東史會綱)(1719 무렵) 등 비주류 사서들을 종합하면서 조선 말기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역사의식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들 남인이나 북인의 사서들은 불교 승려 일연(一然, 1206~1289)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1281)의 단군 신화를 수용하고 고조선이 중국과 대등한 시기에 존재했음을 강조했다. 『동사보유』는 환웅이 설립한 신교(神敎)의 영적 기초 위에 단군이 문명을 이룩하면서 민족 주체성을 견지했다고 서술했다. 『동사회강』은 단군 이래의 문화적 독자성과 유구함을 서술하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논했다. 헐버트는 한국 민족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건국 신화들을 분석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단군 신화를 기원 신화로 이해했다. 나아가 한국인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전설, 동화, 민요 등 민중의 구전 전통도 중시했다. 헐버트가 『동사강요』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한문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 번역 조사요 문서 비서인 오성근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1900년 거행된 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Royal Asiatic Society-Korea Branch)의 첫 총회에서 게일(James Scarth Gale)은 서기전 1122년 기자가 이주한 후 한국은 중국의 중화주의의 최면에 걸려 있었고, 한국인의 생활은 중국인의 생활의 복제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헐버트는 한국은 2,000년 이상 독자적인 민족 생활을 유지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한국의 독자적인 유적과 유물들을 조사했고, 중국과 차별되는 고인돌과 같은 고고학적 유물들을 중시했다. 헐버트는 단군의 문화적 역할을 강조했고 한국 기원의 단군과 다른 영웅들은 중국과 현격히 달랐다고 강조했다.

헐버트는 자신이 창간 편집한 <한국 평론(Korea Review)>에 1901년 1월부터 “한국의 역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서론에서 단군과 기자의 지속적인 전통은 ‘사실에 근거’해 있다고 간주했다. 그는 그 전통들을 뒷받침하는 많은 유물들을 보고 단군과 기자의 역사적 존재를 믿었다. 제1장의 첫 부분에서 헐버트는 삼국유사에 근거한 중섭의 『동사강요』에 있는 단군신화의 본문을 자유롭게 번역했다.

태고 때 창조주인 환인 제석으로 불리던 신적인 존재가 있었다. 그 아들 환웅이 천상의 권태에 지쳐 허락을 받아 땅으로 내려와 세속 왕국을 건설했다. [중략] 곰은 3주일간 큰 믿음과 인내로 기다려 4주째에 완벽한 여인이 되었다. 그녀의 첫 소원이 출산이었기에 ‘아들을 달라’고 애원했다. 영적인 왕인 환웅은 바람을 따라 움직이면서 그녀가 물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를 감싸고 돌면서 그녀에게 숨을 불어 넣었고, 그녀의 애원은 응답되었다. 그녀는 아이를 박달나무 아래 이끼 위에 뉘였다. 그가 박달나무의 주, 단군이었다. 문화군에 한국적 삼위일체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2]

헐버트는 한문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기독교의 삼위일체 개념을 택했다. 그는 환인을 창조주로, 환웅을 성령으로, 단군을 성육신한 주로 묘사했다. 헐버트는 단군을 예수의 경우와 같이 성령(바람)에 의해 잉태되고 완벽한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기술했다. 그는 단군이 예수와 같이 왕-교사-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신인(god-man)이었다고 암시했다. 헐버트가 단군신화에서 삼위일체적 하나님을 받아들인 것은 용어 문제 토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게일은 아직 역사적 단군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일은 10년 정도 후에 이를 수긍하게 된다.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

 

선교사들 가운데 한국학에 가장 깊은 경지에 들어간 두 사람의 태도는 달랐다. 중국의 영향을 강조한 게일은 결국 일본의 문명과 통치를 수용하고 일제 식민화를 지지한다. 헐버트는 한국 문화—언어, 인종, 종교, 역사—의 독자성을 믿고 중화주의에 짓눌렸으나 죽지 않고 민중의 노래, 전설, 이야기 속에 살아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고 유지하려고 했다. 그 노력의 예가 아리랑 채보와 단군 신화 속에 있는 유일신 하나님의 발견이었다.

1963년 윤성범은 단군신화를 헐버트의 번역을 인용하면서 기독교 삼위일체론 관점에서 해석했다. 윤성범은 단군신화가 7세기 만주에서 유행하던 경교(Nestorianism)의 영향 하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팔머는 고대 한국인의 하나님 개념과 성경의 하나님 개념 사이에 유비가 있다고 본 윤성범의 주장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인정했다.[3]

헐버트와 대종교의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무관하다. 1906년에 창시된 대종교의 경전인 󰡔삼일신고󰡕는 366자로 되어 있는데, 상제 일신의 본체는 조화신(造化神=父)이나, 작용으로 교화신(敎化神=師)과 치화신(治化神=君)으로 기능한다고 서술했다. 조화신은 환인, 교화신은 환웅, 치화신은 단군이 되어 삼일신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의 신과는 다른 신들이다.

1980년대에 대종교는 “기독교가 ‘하나님’을 사용할 권리가 없다”, “기독교 ‘하나님’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하나님을 죽이고 유대인의 야훼 하나님을 이식했다”, “기독교가 대종교의 ‘하느님’을 도둑질해 가서, 한국인의 정신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까지 했다. 그러나 개신교는 하나님을 재발견하고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만들었으며, 그동안 한국인이 지녔던 하나님 개념을 풍부하게 해왔다. 따라서 개신교의 하나님 때문에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던 원고의 소송을 대법원은 기각 처리했다.

한국인에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 사건은 낯설지 않다. 여러 건국신화에 천신이 내려오거나 알에서 나와 인간이 된다. 동학도 시천주 → 사인여천 → 인내천으로 사상이 진화하면서 하늘 섬김이 사람 섬김과 동일하다고 보았다. 땅을 다스려 하늘처럼 만들려는 환웅이 만든 하나님교(신교)가 한국인의 첫 종교였다. 그래서 선교사들도 이 하나님을 원시 유일신으로 받아 들여 1900년경에 기독교의 새 용어(neologism)로 창출했다. 근대 선진 종교의 상징인 유일신 하나님을 대종교 등이 거꾸로 빌려가서 지금도 쓰고 있다. 그러므로 초월성만 가진 ‘하느님’이 아니라 초월성(heavenliness), 유일성(oneness), 위대성(greatness), 삼위일체성(Trinity)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르고 더 좋다. 하늘의 뜻을 땅에서도 이루는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것, 그것이 하나님 섬김의 요체이다.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 용어 하나에도 장구한 역사와 신학적 고민이 용해되어 있다. 단순한 부성(父性)만 강조하는 용어가 아니라 삼위일체—아버지 하나님의 거룩성, 위대성, 유일성과, 성령의 창조하는 활동과, 신인(神人)의 평화로운 왕국, 곧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이루어가는 통치—가 강조되어 있는 용어이다.

한국 기독교 신학은 한국사와 한국 종교사의 풍부한 유산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들도 120년 전 고려-조선시대 문집과 역사서를 공부하고 한국 신화와 설화들을 연구했다. 한국 기독교 인문학이 왜 시들고 있나? 한국학과 신학을 연결하는 작업이 적기 때문이다. 왜 한국 기독교가 쇠퇴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는가?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의 종교와 역사와 문화를 외면하고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과 과거를 무시하는 기독교는 한국인으로부터 무시 받는다. 서양 번역서만 보지 말고, 한국인의 고민과 상상력이 금맥처럼 뻗어 있는 한국 고전과 역사서도 읽어서, 그 채굴한 금으로 금관을 만들어 한국 민중의 머리에 씌워 보자.

 

양화진에 묻혀있는 헐버트 선교사의 묘비.

[1] H. B. Hulbert, “Echoes of the Orient,” Chapter VI (Typescript, 1936), 62.

[2] Hulbert, “Part I. Ancient Korea Chapter I,” Korea Review (Jan. 1901): 33-34.

[3]윤성범, “환인 환웅 왕검은 곧 하나님이다,” 『사상계』(1963년 5월): 258~271; Spencer J. Palmer, Korea and Christianity(Seoul: Hollym Corporation, 196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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