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관한 한 한국 교회는 얼리 어답터이다. 단위 집단의 크기 대비 기술에 사용하는 비용을 따지면 교회가 가장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미 80년대에 전도사들은 1종 보통 면허를 가져야 했다. (중략) 복사기도 컴퓨터도 프로젝터도 대학이나 회사보다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가장 좋은 음향기기는 단연코 예배당에 있다. IT업계 종사자가 아니면서 가장 먼저 아이패드를 자연스럽게 들고 다닌 직업군은 아마 목회자일 것이다.(본문 중)

손화철(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기술철학)

 

출처: Pixabay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란 새로움 자체를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문화나 패션의 얼리 어답터도 있지만, 주로 기술과 관련해서 쓰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최신 휴대전화가 출시되면 매장 앞에서 밤을 새며 줄을 서기도 하고, 새로운 기능을 탑재한 기술을 가능한 한 빨리 구해서 사용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해당 기술을 사용할 때 즈음이면 이들은 이미 다음 단계의 기술을 시험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시행착오도 많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것들까지도 즐기며 그러기 위해 기꺼이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기술에 관한 한 한국 교회는 얼리 어답터이다. 단위 집단의 크기 대비 기술에 사용하는 비용을 따지면 교회가 가장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미 80년대에 전도사들은 1종 보통 면허를 가져야 했다. 네온사인을 교회와 술집 중 어디서 먼저 사용했는지도 궁금하다. 복사기도 컴퓨터도 프로젝터도 대학이나 회사보다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가장 좋은 음향기기는 단연코 예배당에 있다. IT업계 종사자가 아니면서 가장 먼저 아이패드를 자연스럽게 들고 다닌 직업군은 아마 목회자일 것이다. 얼리 어답터답게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돈도 많이 쓰고, 시행착오도 적지 않다.

단정할 수 없지만, 교회가 서슴없이 기술을 받아들이는 현상은 선교의 역사와 서구화의 과정이 맞물리는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기술을 맛보고 이어서 그 기술이 세상으로 퍼지는 상황을 자주 경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열방으로 나아간 우리 선교사들도 선교지에 비슷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지 않을까. 서구의 교회들이 어떠한지를 일반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 교회만큼 기술의 수용에 적극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기술의 적극적인 수용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기술을 통해 생기는 변화의 의미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럽다. 예를 들어 규모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교회에 설치되어 있는 빔 프로젝터를 생각해 보자. 경우에 따라서는 커다란 스크린이 예배당의 정중앙에 설치되기도 한다. 그런데 과거 십자가를 예배당 안에 설치할지 여부에 대한 신학적 토의가 있었던 것처럼 스크린이 예배당 한 중앙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빔 프로젝터를 예배의 어느 순간에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 역시 부재한 경우가 많다. 때로는 설교자나 성가대가 화면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 설교자, 성가대, 회중의 시선은 서로 어긋날 수밖에 없다. 교회가 한자리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에서 스크린을 통해 상대를 보고 시선이 어긋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은 많지 않다. 말씀과 찬송이 화면에 떠오르는 것이 정확히 누구 또는 무엇을 위한 배려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잘 알려진 미국의 재세례파 계열의 기독교 공동체인 아미쉬 공동체는 지금도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고전압의 전기를 거부하며 살아간다. 기술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문명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미쉬 사람들은 기술이 자신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과 힘을 알기 때문에 조심한다. 사실 그들은 신기술을 배척하지 않고 사용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특정 기술이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동체 문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을 하면 그 기술의 사용을 중단한다. 또 기술을 사용하되 소유를 거부하거나 사용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지만 택시는 타고 다니고, 전화를 사용하지만 집 안에 두지 않는다. 외부의 통제에 스스로를 맡기지 않기 위해 고전압의 전기는 사용하지 않지만, 엔진을 돌려 스스로 생산하는 전기는 사용한다. 이들은 기술을 거부한다기보다 천천히 받아들이는 ‘레이트 어답터’(late adopter)라 불러야 한다.

 

마차를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는 아미쉬 공동체

 

아미쉬 공동체의 선택은 좀 극단적이고, 확장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문명에 쉽게 끌려가지 않겠다는 그들의 결심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기계 하나가 우리가 하는 어떤 활동을 쉽게 만들거나 바꾸면, 그 활동의 의미와 맥락이 달라진다. 그 변화는 사소할 수도, 긍정적일 수도, 근본적일 수도 있기에 점검이 필요하다. 그 점검을 얼마나 꼼꼼히 하느냐가 얼리 어답터와 레이트 어답터를 구분하는 기준일 텐데, 굳이 얼리 어답터가 될 필요는 없다. 교회가 어떤 기술을 사용할 때에 일정한 논의를 거치고 사용의 이유를 밝히는 과정이 있다면 얼리 어답터가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 교회가 기술의 얼리 어답터인 것은 그 자체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물질적인 영역의 기술과 함께 정신적, 문화적인 부분에서의 변화가 모두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기술만 살아남은 느낌이다. 가부장적 질서, 여성의 낮은 지위, 행정과 재정의 불투명성, 비민주적인 의사소통, 건축과 부동산에 대한 깊은 애정 등 과거에 교회가 이미 타파했던 것들은 다시 살아나서 퇴행을 거듭하는데, 첨단 기술은 늘 환영받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을 어떻게 견인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교회가 어느 부분에서 진취적이 되고, 어느 부분에서 보수적이 되어야 할지는 예수님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식민지 치하 유대 사회에서 여러 가지 급진적인 사상적 전환을 선도하셨으나, 목공 도구, 운송과 소통 수단, 건축술에 큰 관심을 보이신 흔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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