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선과 광케이블이 소실되어 전화와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는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중략) 1998년은 휴대전화의 열풍이 막 시작되던 해이고 민간소비에서 신용카드 사용 비중은 12.8%였다. 2018년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민간소비 신용카드 사용 비중은 65.3%에 달했다. 이제 각종 스마트폰 앱으로도 결제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전거래와 통신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졌다. 이번 화재로 수많은 가게들이 예약과 결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큰 손해를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본문 중)
손화철(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기술철학)
역사에는 죽을 때까지 단신으로 적과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무술이 뛰어난 장수라도 혼자 쓰러뜨릴 수 있는 적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역사 기록의 과장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더욱 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누군가가 죽을 결심을 하면 그가 죽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엄청나게 크다. 2001년의 9.11 테러가 그 예다. 첨단 기술의 산물인 비행기가 또 다른 첨단 기술의 산물인 고층 빌딩에 부딪히게 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약간의 비행 기술과 목숨을 버리려는 결심뿐이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지난 100여 년 사이에 발전한 현대 기술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고 큰 편리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세상을 묘한 방식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현대기술의 여러 시스템은 정교한 만큼 망가지기도 쉬운데, 그 결과는 엄청나다. 그래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범죄나 실수가 가지는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재해들을 상당 부분 극복했는데, 다른 한편 사람이 만든 기술에 의해 새로 생겨난 위험(risk)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현상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rlich Beck)은 ‘위험사회(Risk Society)’로 규정한다.
2018년 11월 24일 KT 서울아현지사 지하의 통신구에서 난 화재는 위험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지하 6미터 지점에 위치한 지름 2미터 정도의 통신구는 전화선과 광케이블이 지나가는 일종의 터널인데, 여기서 원인 모를 불이 난 것이다. 이 사고로 서울 서북권 일대에 통신 장애가 일어나서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여러 사람이 불편을 겪었다.
전화선과 광케이블이 소실되어 전화와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는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같은 사고라도 20년 전과 오늘, 그리고 20년 후의 상황에서 그 의미는 매우 다르다. 1998년은 휴대전화의 열풍이 막 시작되던 해이고 민간소비에서 신용카드 사용 비중은 12.8%였다. 2018년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민간소비 신용카드 사용 비중은 65.3%(2015년 기준)에 달했다. 이제 각종 스마트폰 앱으로도 결제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전거래와 통신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졌다. 이번 화재로 수많은 가게들이 예약과 결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큰 손해를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38년의 세상은 어떠할까? 아마도 사물 인터넷의 발달로 금전거래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다른 자동차와 도로의 지형지물과 통신하며 달리는 자율주행자동차와 드론들이 도로와 상공을 채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순간이라도 인터넷 연결이 중단된다면 어떤 혼란이 일어날 것인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물론 통신구에 화재 경보장치를 잘 해 두고, 통신이 두절되면 자동으로 우회 통신선이 가동되도록 하는 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하면 이런 사태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사회의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기술시스템은 점점 복잡해지고, 한순간이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기는데, 그것을 망가뜨릴 수 있는 요인들은 너무 단순하고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완벽한 해결이 불가능하니 대책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만들고 있는 기술 시스템의 취약성에 대한 통절한 인식과, 최대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기술발전을 이루면서 기술로 이룰 수 있는 것에만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 발전 때문에 생기는 위험에는 눈을 감아왔다.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지만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는 일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이번 화재가 난 KT 아현지사 통신구의 경우, 안전 관리에 대한 기존의 규정을 어긴 것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그 인색함의 증거다. 그러나 큰 사고가 날 때마다 언급되는 안전불감증의 대가는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꼴이다.
위험사회의 문제는 첨단기술이나 큰 규모의 기술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교회 안에 들어온 기술들 역시 이런저런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고, 안전에 대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오늘날 예배당 안에 설치된 각종 기기 및 설비들과 관련된 안전불감증은 KT 아현지사의 경우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예배당 내의 각종 안전장치 준비나 재난에 대한 대비가 취약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예배당에 불이 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생각으로 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배 중 화재에 대비해 대피훈련을 하자’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믿음보다는 안전불감증에 기인하는 것이다. 위험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최대한 대비하려고 애쓰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무능을 고백하는 일이다.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겠다며 열심히 개발해 온 기술이 결국 다시 큰 위험의 요인이 되는 이런 상황만큼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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