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러의 프로젝트는 기독교 복음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일상의 삶,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닿아서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삶의 나침반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바꿀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이를 위해 켈러는 사람의 마음(the heart)에 집중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반복하여 일관되게 복음을 믿는 일이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롬 10:10; 12:1-2). (본문 중)
김상일(보스턴 대학교, 실천신학 박사과정)
지난번에는 팀 켈러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과 켈러가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 몇 가지를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팀 켈러의 프로젝트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다음 글부터는 7회에 걸쳐 켈러의 프로젝트의 중요한 주제 7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켈러의 프로젝트는 기독교 복음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일상의 삶,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닿아서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삶의 나침반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바꿀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이를 위해 켈러는 사람의 마음(the heart)에 집중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반복하여 일관되게 복음을 믿는 일이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롬 10:10; 12:1-2). 성경에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은 히브리어 ‘레브’(leb)와 헬라어 ‘카르디아’(kardia)인데, 이 말들은 사람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자리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켈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마음’이라는 말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지향, 우리의 깊은 헌신의 대상들이 있는 자리에 대한 은유로 사용됩니다. 즉,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것(잠 3:5; 23:26),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소망을 두는 것,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물, 그리고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것(마 6:21)이 있는 자리입니다. 모든 마음은 경향성(창 6:5), 즉 무엇인가를 향하는 방향을 지닙니다. 그리고 마음의 방향은 모든 것, 즉, 우리의 사고와 감정과 결정과 행위를 지배합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는 합리적인 것, 바람직한 것, 행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가장 소중히 간직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우리의 전인(the whole person)을 지배합니다.[1]
마음에 복음이 닿도록 하는 일이 켈러 프로젝트의 최우선 목표라고 한다면, 필자는 켈러가 그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도입하는 개념이 바로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이라고 봅니다.[2] 사회적 상상은 원래 캐나다의 철학자인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1931~)가 창안한 개념입니다. 테일러는 사회적 상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이라는 용어를 통해 내가 의미하려고 하는 바는, 사람들이 흔히 사회적 현실에 관해 자유롭게 생각할 때 떠올리는 그런 지적 도식보다는 훨씬 폭넓고 심층적인 어떤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실존에 대해 상상하는 방식,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방식, 사람들 사이에서 일이 돌아가는 방식, 통상 충족되곤 하는 기대들, 그리고 그러한 기대들의 아래에 놓인 심층의 규범적 개념과 이미지들이다.[3]
켈러가 사회적 상상 개념을 자신의 모든 저서와 강연들에서 전면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개념을 자신의 저서인 『답이 되는 기독교』(Making Sense of God)의 각주에서 꽤나 자세하게 설명한 까닭은 위에서 언급한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의 결과라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이제까지 복음주의나 개혁주의권에서 사람들의 삶의 깊은 곳까지 복음이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는 ‘세계관’(worldview)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세계관 개념이 지나치게 인지적(cognitive)인 차원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었고, 그 결과 (원래 의도와는 달리) 그 말이 현대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감성이나 정서, 습관, 몸 같은 개념들을 잘 담아내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켈러는 이런 고민 가운데 테일러에게서 사회적 상상 개념을 빌려옵니다. 『답이 되는 기독교』에서 켈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테일러가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이 용어(사회적 상상)를 대신 쓴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세계관’이라는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적인 체계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무엇(『세속화 시대』, 171)에 도달하려 했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상상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명제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기대의 배후에 깔린 더 깊은 규범적 관념과 이미지(『세속화 시대』, 171)도 포함되어 있다.[4]
켈러는 같은 책에서 사회적 상상 개념이 세계관 개념보다 비교 우위를 지닌 측면을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사회적 상상은 주로 무의식이다. 그중 일부는 구체적 신념으로 포착되어 표현될 수도 있으나, 많은 부분이나 어쩌면 대부분은 빙산처럼 표면 아래에 있다”.[5] 세계관은 이런 무의식적인 신념이나 규범 체계를 잘 포착하지 못합니다. 켈러는 사회적 상상 개념을 통해 바로 그런 세계를 포착하고자 하며, 복음이 사람들의 삶을 이끌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둘째, “사회적 상상은 지적인 체계 훨씬 이상이다. 그것이 ‘전달되는’ 매체는 이론적 술어가 아니라 ‘이미지와 이야기 등’이다. 그래서 사회적 상상은 (주로) 사고만 아니라 상상까지 빚어낸다(『세속화 시대』, 171-172).”[6]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임했다는 소식이며, 동시에 그런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상상은 복음이 사람들에게 지적인 체계 이상이 되도록 하는데 적합합니다.
셋째, “사회적 상상은 두 가지 보완적 의미에서 ‘사회적’이다. 우선 그것은 ‘사회 공간에 대한 암묵적 인식’이다. 즉 어떻게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것인지와 관계가 있다(『세속화 시대』, 173). 아울러 사회적 상상이 ‘사회적’인 이유는 그것이 ‘공동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치로 널리 공유되어’ 있기에 공동의 실천도 가능해진다(『세속화 시대』, 172).”[7] 복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화해를 이루었다는 소식이며, 더 나아가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창조세계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가 화해를 이루었다는 소식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어떤 공동의 인식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그 공동의 인식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지배를 받습니다. 켈러가 사회적 상상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은 무의식을 포함하며, 지적인 체계를 훨씬 넘어서고, 또한 공동의 인식으로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복음 또한 무의식에 닿아야 하며, 지적인 체계를 넘어 습관과 정서를 지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고, 공동의 인식이 되어, 복음을 믿는 공동체가 복음을 충분히 체화하고 삶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켈러에게 복음이란 현대 문화의 지배적인 사회적 상상을 대체하는 대안적 사회적 상상임을 이후의 연재에서 보여주고자 합니다. 독자들은 앞으로 살펴볼 켈러의 모든 저서와 강연들이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1] “마음에 대한 혁명적인 기독교의 관점”(the Revolutionary Christian Heart), 팀 켈러 블로그, 2015년 2월 6일.
[2] 밝혀두어야 할 것은, 켈러가 사회적 상상 개념을 언급하는 빈도수가 높지 않아 표면적으로는 그 중요성이 그리 커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러는 사회적 상상 개념이 기존의 세계관 개념과 비교해 우위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상상 개념이라는 렌즈를 가지고 켈러의 프로젝트 전체를 조망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켈러의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를 잘 드러내는 좋은 해석의 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3] 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Modern Social Imaginaries), 이상길 옮김(이음 2016), pp. 43-44.
[4] 팀 켈러, 『답이 되는 기독교』(Making Sense of God), 윤종석 옮김(두란노, 2018; 원서 2016), p. 361.
[5] 같은 곳.
[6] 같은 곳.
[7]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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