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발걸음으로 정의와 평화의 길을 걷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그리스도인의 선언

 

독립, 평화, 혁명

1919년 3월 1일, 우리의 선진들은 유구한 한반도 공동체의 주인들로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독립을, 세계만방에 대해서는 평화를 선언했다. 이 선언이 분출한 배경은 공화적 자유와 평화였으며, 선언의 결과인 모든 임시정부의 정체(政體)는 민주공화정으로의 혁명이었다. 이 선언을 살아내기 위해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른 선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일본제국’이 한반도와 아시아를 능욕하다가 그들의 왕 3대를 채우지 못하고 패망한 역사는 부도덕한 패권과 이웃 공동체에 대한 탐욕을 체제에 내장하는 행위, 곧 거대 집단을 범죄 조직화 하는 죄악이 자기 파멸로 치닫는다는 교훈이다. 타자에 대한 억압을 선으로 여기는 체제에게는 앞선 근대 문명과 자원이 오히려 스스로를 살라버린 땔감이었다.

우리 선진들은 국권을 되찾을 방도로 당당한 선언과 희생을, 찾아야 하는 이유로 혁명, 곧 이상(理想)을 채택했다. 무능한 왕과 귀족의 체제를 버리고 본래의 주인인 민(民)이 저작하고 이끌어나가는 민주공화제의 여정이 곧 독립의 여정으로 제시됐다.

후일 “독립이 될 줄 알았냐?”던 변절자들 만이랴, 그 때 누가 일제 사멸이 26년 남은 줄 알았을까. 부당한 압제 아래, ‘좋은 것’과 ‘옳은 것’의 판단이 갈라섰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옳은 것’만이 실상이라는 믿음 위에 있다. 그 믿음을 굳게 지켜 현실로 만들어 낸 희생이 얼마나 고마운가.

지성, 사죄, 평화 연대

일본이 패전 74년을 맞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기미독립선언서가 천명한대로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반성과 사죄가 생존의 길이라 판단하게 하고, 그들의 도덕성을 격려할 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피해국들의 통합성이 미약함을 보고 사죄의 절실함을 도외시한다면, 아직도 파탄 난 집단 도덕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다시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구현하려면 스스로 강한 도덕 자산을 확보하고, 그들의 위력(威力)이 크든 작든, 도의(道義)와 인도(人道)에 입각한 평화의 체제로 돌아설것을 요구하여야 하며, 이에 부합한 말과 행동을 격려할 것이다.

일본은 ‘패전 50년(1995) 총리 담화’에서 미흡하나마 식민 지배를 반성하였고, 남북한에 이를 표명했으며, 2010년 한일 양국 지식인 1,000명이 병합조약 자체가 불법이고 무효임을 밝히자, 간 나오토 총리가 이를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기미독립선언의 높은 뜻을 실천하려는 양국 시민사회가 연대함으로 맺은 결실이었다. 2019년 일본의 지식인들은 1987년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민주혁명’으로 인해, 1910년 병합조약의 ‘전문(前文)도 본문도 거짓’이라는 핵심적 역사 인식을 일본 총리가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도덕’과 ‘평화’라는 열쇠

일본을 탓하지 않겠다는 3.1정신은, 우리 스스로의 도덕적 자산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그토록 인도와 정의를 갈구하던 집단이 헌정을 유린하고 정치 권력을 탈취물로 여기는 체제를 가만둔다면, 압제에 항거한 선열들을 능멸하고 희생자들을 더욱 수치스럽게 하였다면, 공정한 질서를 기만하고 차별을 온존케 한다면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일본 대중들의 마음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겠는가.

2013년,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전범기업 상대 확정 판결을 고의로 지연시켜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보상받지 못하게 한 중범죄와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이른바 ‘한-일 위안부 합의’로 자국의 피해 당사자들을 모멸한 순간들은 참으로 어딘들 묻어버리고 싶은 우리의 부끄러움이다.

또한, 지난 74년간 해소하지 못한 분단과 남북 적대관계는 일본이 승전국에만 머리를 조아리고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어그러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였다. 이를 증명하듯, 남·북·미·중 간에 평화가 예견되자 북·일 수교 논의도 되돌아오고 있다.

인간의 도덕은 완전무결의 영속이라기보다는 오류를 바로잡는 속도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부정한 정치권력을 수년이 못 되어 평화로운 촛불로 물리쳤기에, 그 힘으로 아시아 평화의 큰길을 열어가고 있기에 실리와 도덕 모두에서 일본에게 ‘사악한 길’에서 벗어날 동기를 선물한다.

교회여, 한국 교회여…

오늘날 한국 교회는 교회 밖의 싸늘한 시선이 하나님의 경고인 줄 알아야 한다. 100년 전 선배들의 신앙 유산은 물론, 후대들이 누릴 자부심조차 갉아먹고 있다. 떠나는 신앙인들을 다잡고자 하여도 정의를 외면하는 교회는 그들을 붙잡을 매력이 없다.

3.1정신은 불의한 정권과 이민족의 압제 모두를 거부하고, 타 종교인들과 공동선을 일으켜 공동체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은 신앙의 혁명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불의한 정권을 축복하고 압제를 미화하는 망령에 사로잡힌 줄도 모르고 타 종교인들에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주님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달으라고 하신다(마7:3).

복음이 이 땅에 뿌린 ‘자유’를 부정하고, 교인들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 목회자들의 헌금도둑질과 성폭행,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하는 기막힌 죄악을 보고도 저항이 없는 다수의 교인들은 주님이 다시는 메지 말라하신 ‘종의 멍에’(갈5:1)를 지고 있다.

그러나, 복음은 일하신다. 예배당이 비어가는 이유는 성도들이 광장으로 나와 ‘소리치는 돌’이 되었기 때문이다.(눅19:40) 교회의 회복은 그들을 받아낼 신앙 역량에 달려 있다.

3.1혁명이 우리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불기둥과 구름기둥처럼 우리가 갈 길을 시대를 앞서 제시하니, 이처럼 고마운 선물이 또 있을까. 우리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이 길을 걷는다.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2019년 2월 28일

3.1운동 100주년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 일동

 

강명순, 강병선, 강용성, 강춘근, 고상환, 고은영, 고형원, 고효정, 곽은이, 구일, 권경욱, 권민수, 권영인, 권장희,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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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범, 신동식, 신석환, 신성철, 신유식, 신현주, 신효영, 심혜린, 안성영, 안세현, 안애숙, 안재영, 안지영, 안현일, 양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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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은, 한성준, 한원식, 허건영, 허 현, 현지윤, 홍만조, 황병구, 황석희, 황성기, 황송희, 황숙영 (최종 32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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