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이며 동시에 현대 과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그런데 기독교와 현대 과학이 생명과 관련된 이슈에서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다. 생명의 기원, 특히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낙태, 난자를 이용한 연구, DNA의 유전자 조작, 동성애, 존엄사나 생명 연장 문제 등이 그 예들이다. 과학은 기독교가 구시대의 유물인 성경에 갇혀서 매번 생명에 관한 연구를 방해한다고 불평하고, 기독교는 과학이 생명 윤리의 선을 넘어서 종교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성토한다. 신자들은 생명의 문제에서 기독교와 과학의 이러한 충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생명’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이며 동시에 현대 과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그런데 기독교와 현대 과학이 생명과 관련된 이슈에서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다. 생명의 기원, 특히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낙태, 난자를 이용한 연구, DNA의 유전자 조작, 동성애, 존엄사나 생명 연장 문제 등이 그 예들이다. 과학은 기독교가 구시대의 유물인 성경에 갇혀서 매번 생명에 관한 연구를 방해한다고 불평하고, 기독교는 과학이 생명 윤리의 선을 넘어서 종교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성토한다. 신자들은 생명의 문제에서 기독교와 과학의 이러한 충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과학이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살펴보자. 과학은 생명을 다양하게 정의해 왔다. 물질대사, 자기복제(생식), 자기수복(修復), 호흡, 성장, 이동, 자극에 대한 반응 등이 그것이다. 혹은 생물이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의 과정 및 상태, 또는 생물의 내적 동력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세상을 이루는 근본 물질인 원자와 분자를 이해하게 되면서 생명도 물질로 보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양자역학을 발전시켜 노벨상을 받은 슈뢰딩거는 1944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이제 생명을 물질로 봐야 할 때가 왔다고 주창했다. 생명체도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생명을 물리 화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동조한 젊은 과학자 중 왓슨과 크릭이 1953년 생명체 속에 들어있는 DNA라는 물질의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받았는데, 이 발견은 현대과학의 가장 뛰어난 성과로 평가받는다.

 

에르빈 슈뢰딩거의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원서. 국내에서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출간한 바 있다.

 

오늘날에는 생명이라 하면 곧 DNA를 떠올리게 된다. 생명 활동은 수만 종류의 호르몬, 항체, 효소와 같은 단백질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 물질들이 DNA 속 유전 정보에 따라 합성되고 조절된다. DNA라는 물질은 당과 인산으로 이루어진 두 가닥의 아주 가는 실타래이다.[1] A, C, G, T라는 네 종류의 ‘염기’라는 더 작은 물질이 이 두 가닥 실타래를 줄사다리처럼 서로 연결하고 있다. 사람의 DNA는 두 가닥 실타래를 30억 개의 A, C, G, T가 임의로 서로 연결하고 있다. 사람의 몸에는 수십조 개의 세포가 있고, 이 세포 안에는 모두 동일한 DNA가 존재하므로 결국 각각의 세포마다 30억 계단의 줄사다리가 있다는 말이다.

컴퓨터는 0과 1의 2진법으로 정보를 저장한다. 반면 생명체는 DNA에 A, C, G, T라는 4가지 물질의 배열로 정보를 저장한다. 4진법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DNA를 일렬로 펴면 서울에서 태평양을 가로지른다. 인쇄하여 책으로 만들면 그 책이 빌딩 높이만큼 될 정도다. 우리 몸의 DNA를 전부 연결하면 총 길이가 1,600억km로 지구와 태양을 500번 왕복할 정도가 된다. 이런 방대한 DNA의 정보 배열을 밝혀낸 작업이 인간 게놈 프로젝트(1990-2003)였다. 이 프로젝트로 인간 DNA의 전체 배열이 밝혀진 후 이 정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내는 연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밝혀진 정보를 ‘유전자’라 부른다. DNA가 저장매체인 하드웨어라면 유전자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DNA 배열이 99.9% 동일하고 0.1%만 차이가 있다. 인간과 다른 동식물들과는 염기 배열의 개수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상당수의 유전자가 유사하다. 같은 땅에서 같은 생명 활동을 하고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DNA 속 유전자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어느 생명체에 있든지 같은 유전자는 같은 물질을 합성한다. 예를 들어, 혈관 속 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는 다른 동물의 DNA에 넣어도 동일한 인슐린을 생산한다. 그래서 현재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는 인슐린은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를 대장균 DNA에 잘라 넣어 생산한 것이다. 인슐린 소프트웨어를 대장균 하드웨어에 깔아 구동시킨 것과 같다. 매순간 DNA 속 유전자에 의해 합성된 3만여 종의 호르몬이나 효소나 항체들이 생명 활동을 유지하여 주기에 우리는 살아간다. 이렇게 우리 몸의 수십조 개의 세포 속 DNA는 우리가 어떤 명령을 하지 않아도 일생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정말 생명은 DNA라 할 만하다.

베스트셀러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여러 다른 생명체의 몸을 빌려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온 DNA라는 화학 물질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라고 주장했다. 그는 심지어 인간의 사회 활동이나 문화 활동까지도 이 DNA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생명을 물질로 보는 현대 과학의 생명 이해는 이제 그 범위를 넓혀 정신 활동도 물질이 일으키는 현상으로 보는 데까지 나아갔다. DNA의 정보에 의해 합성된 물질이 우리 정신 활동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원서. 이 역시 국내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인공지능(AI) 분야의 창시자인 MIT의 마빈 민스키(1927-2016)는 인간 정신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사회생물학자인 하버드 대학교의 에드워드 윌슨(1929~)은 “지난 수천 년간 있어 왔던 모든 형이상학적 논의를 생물학적인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주창했다. 현재는 정신 활동의 핵심 기관인 뇌의 기능을 일으키는 물질들과 그 물질들의 물리적 현상으로부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질 로봇이 인간과 같은 정신적 능력과 의식을 가질 것이라는 주장은 점점 그 지지기반을 넓히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다른 원숭이의 머리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도 결국 이런 주장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현대과학이 말하는 생명이 생명의 전부일까? DNA를 이해하면 생명을 전부 이해할 수 있을까? DNA라는 ‘물질’이 정말 물리 화학적 법칙에 따라서 스스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눈에 보이는 육체적 생명이 생명의 전부일까? 정말 삶과 죽음 사이의 기간이 생명의 전부일까? 정신이 물질의 결과라면 우리 영혼은 없는 것인가? 현대 과학이 말하듯이 생명이 물질이라면, 우리에게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성경은 과학이 말하는 그런 의미의 생명이 전부가 아니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성경은 육체적, 과학적 의미의 생명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육체적 생명 이전에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혼을 불어넣으신 영혼을 가진 생명이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육체의 생명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눈을 들게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영원한 생명이 우리가 알아야 할 생명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생물학적 생명을 보아야지 생물학적 생명으로 성경의 생명을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과학과 성경의 생명에 대한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이 말하는 생명을 잘 보면 원칙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 과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나 영원은 다루지 않는다. 생명의 기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증거를 찾는 일도 과학적 실험을 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은 윤리적 평가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다. 그래서 과학이 물질의 수준에서 다루는 생명 개념을 성경의 생명 개념과 같은 수준에 두고 평가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현대 과학이 막강한 힘을 얻어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려고 하며 때로 과학의 영역이 아닌 주장을 할 때, 그것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런 반응 자체가 오히려 과학을 성경과 같은 수준으로 높이는 잘못이 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위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과학이 말하는 생명은 생명의 전부가 아니므로, 성경이 말하는 생명을 과학이 말하는 생명으로만 축소시키지 말아야 한다. 즉, 과학을 하나님의 많은 창조 영역 중 하나로 바라보아야 한다. 과학의 생명 개념은 다른 다양한 영역들의 통찰과 합쳐져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과학을 포함하는 더 온전하고 풍성한 생명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참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여야 한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과학에서 말하는 생명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과 다르다고 해서 과학을 기피하고 물러설 것이 아니라 이런 이해의 터 위에서 과학 분야에서 얼마든지 생명을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다. 이것이 생명의 이슈들을 다룰 때 기독교인에게 꼭 필요한 태도이다.


[1] 원자의 수준에서 보면 DNA는 수소, 탄소, 산소, 질소, 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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