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48호 :: 2019.06.13(목)
197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의 주체로 활약한 진보 기독교뿐만 아니라, 예장 통합, 합동, 고신 등 주류 교단도 6월 항쟁의 현장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보수적인 기독교인조차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보수 교단의 교회에서도 박종철의 죽음을 추모하는 예배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일상화된 인권 탄압과 고문이 하나님의 창조 의지에 반하는 크나큰 범죄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본문 중)
본회퍼의 생애와 신학을 연구할 때, 쟁점이 되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 “본회퍼는 평화주의자였는가?” “히틀러 암살공모에 참여했던 본회퍼를 평화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가?” “본회퍼는 목사로서 어떻게 암살 서클에 가담할 수 있는가?” “본회퍼의 정치적인 행동은 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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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을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실천적 의미가 약하다. 일상의 언어로 다시 말하자면, ‘세상의 고통에 응답하는 존재’일 것이다. (중략) 내가 서 있는 자리, 삶의 영역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한 실패의 경험도 하나의 고통이다. 그런 경험은 대개 고통과 좌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실패 속에서도 부르심에 응답하는 존재로 세워진다. 그 부르심에 대답하는 위치로 나가는 순간, 들끓음이 시작된다. 나에게는 그 순간을 경험한 것이 1992년이었다.(본문 중)
송인수 대표가 말하는 소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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