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5년마다 돌아오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재지정을 위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해이다. 지난 6월 20일 전주 상산고와 안산동산고가 자사고 재지정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탈락한 것을 계기로 자사고 제도 존폐 자체 대한 토론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자사고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김진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과 제도 존속이 필요하다는 의견(우수호, 대광고 교목실장)을 두 번에 걸쳐 들어본다.
김진우(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자사고 제도의 도입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1971년 중학교 입시 경쟁 문제 해결을 위해 무시험 전형이 도입되었고, 이어서 1974년 고교 무시험 전형(일명 고교평준화) 제도가 전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고교평준화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꽤 존재했는데, 가장 중요한 비판 이유는 하향평준화 문제였다. 우수한 학생과 평범한 학생을 섞어 놓으면 학력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 근거는 교육의 획일화와 관련된다. 어느 학교를 가든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붕어빵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정책 때문에 학교 교육을 통제하는 관료주의가 심화되었다는 비판도 따라온다. 이와 같은 비판을 배경으로 1995년 5.31 교육개혁안(김영삼 정부)은 학교 교육의 다양화를 내세우며 외국어고등학교(외고), 과학고등학교(과학고)와 같은 특목고 제도를 도입했고, 2002년에는 민족사관고 등에 적용된 자립형 사립고 제도가 도입되었다(이후에는 자율형 사립고로 분류된다). 현재와 같은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10년부터이고, 현재 40여 개 학교가 자사고로 운영되고 있다. 자사고는 학생선발권을 가지는 한편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등록금을 일반고의 3배 정도 받는다.
자사고나 특목고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꾸준히 존재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주요 대선 후보들이 자사고와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국민 여론 또한 자사고 외고 폐지 측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1]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몇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고교평준화=하향평준화?
고교평준화가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왔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 관련 연구가 몇 개 있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학력의 하향평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가설은 입증되지 못했다.[2]
교육과정의 다양성 확대?
자사고가 존재해야 하는 명분으로 교육과정 다양화를 제기하였으나 실제로 교육과정 다양화가 의미 있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자사고의 경우 국영수 수업 시간이 늘어났는데, 이는 입시교육 심화와 획일화를 의미한다. 자사고의 자율성이 교육과정 다양화에 필요한 것이라면, 이와 같은 자율성은 자사고에만 특혜적으로 부여할 것이 아니라 모든 학교에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사고와 같은 별도의 학교가 존재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가치이다. 그것을 등록금을 많이 내는 학생들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생 선발권
결국 자사고와 외고 같은 학교 문제의 핵심은 바로 학생 선발권에 있다. 해당 학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음으로써 일반 학교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고, 이로 인해 고교가 성적순으로 서열화 됨으로 인해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부작용은 크게 보아 세 가지다.
첫째, 고교 서열화로 인해 중학교 과정에서 점수 경쟁이 심화된다. 입시 경쟁은 한국 사회에서 피할 수가 없지만,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경쟁의 시작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룰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중학교 평준화에 이어 고등학교 평준화가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꽤 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과거처럼 또다시 고교 서열화가 심화되면서 중학교 교육이 고교 입시에 종속되고 조기 사교육이 늘어나는 문제가 생겼다.
둘째, 성적에 따른 고교 서열화는 학생들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 물론 대학 진학 단계에서 어차피 서열이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으나, 특별히 성장기 학생에게 주어지는 열패감은 자존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셋째, 사회 통합을 저해하게 된다.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섞여 지내는 과정은 교육학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사회적으로도 통합을 촉진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부잣집 아이들이 사립초, 국제중, 자사고 등을 거치며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과만 접촉하며 성장하는 것은 그들의 세계관을 협소하게 만들고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더 많은 등록금을 내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는 필연적으로 계층적 분리를 가져오고 그들만의 캐슬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성적에 의한 학생 선발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은 반면, 얻게 되는 사회적 이익은 분명치 않다.
상산고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오해를 제거하자. 자사고 재지정 탈락은 학교 문을 닫는 것이 아니다. 신입생부터 일반고식 입학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므로, 현재 재학생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도 아니다. 학교 운영권을 박탈하는 것도 아니다. 성적순 선발이 아닌 일반 학생을 받아들여 얼마든지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다.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결국 지금까지 상산고 교육의 우수성은 우수한 학생 선발에 기인하고 있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요컨대, 좋은 교육을 하는 것에 성적순에 의한 학생 선발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영재학교와 같은 특수 목적의 학교를 제외한다면, 정말 좋은 학교란 평범한 학생들을 비범하게 가르치는 학교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성적 우수 학생을 선점하여 입시 명문고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자사고 외고 문제는 원천적으로 교육부가 시행령을 개정하여 해결했어야 할 문제다. 일부 자사고가 재지정에서 탈락한 후에는 남은 자사고들의 위상은 더 올라가고 문제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교육부가 입법 작업을 하지 않고 그 책임을 교육감에게 넘김으로써 각 지역별로 행정적 낭비와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평가 기준을 상향한 교육감의 조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된다.
학교 선택권과 종교 사학의 문제
학교의 학생 선발권은 제한하지만 개인의 학교 선택권은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선지원 후추첨제를 적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보장된다.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선호하지 않는 학교로 배정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불만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열악한 형편에 처한 학교의 교육 여건을 끌어올리기 위해 충분한 투자를 해야 하고, 학교도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교육에 대한 수요는, 학교를 다양화하는 것보다 학교 안의 교육을 다양화하여 개인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 현재 시범 운영 중인 고교학점제는 이와 같은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종교 사학의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종교 사학의 경우는 건학 이념이 매우 중요한 가치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학교의 자율성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 경우 자율성이란 종교 의식 참여를 강요하는 자율성이 아니라, 건학 이념을 구현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자율성이어야 한다. 교육 방법은 학생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여 토론과 같은 방식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교 교육을 희망하지 않는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서, 선지원 후추첨제 내에서 특정 학교에 배정받지 않을 수 있는 기피권을 적용할 수 있다.
결론
교육의 다양화와 자율성 확대를 명분으로 탄생한 자사고와 특목고 체제에서 핵심 문제는 학생선발권이다. 학생선발권 없이도 자사고나 모든 학교가 교육과정 다양화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고,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학생선발권이 있어야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물론 대입 단계에서는 서열화가 이루어진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그 서열화를 고교 단계부터 허용해야 하는가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판단이 중요한데, 우리 사회는 이미 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1] 리얼미터(2019.6). 폐지 52.5%, 유지 27.2%, 모름 20.3%.
[2] KDI 연구(김태종, 2004)에서는 학력이 저하되었다고 주장했으나, 보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한국교육개발원 연구(강상진, 김기석, 2005)에서 오히려 평준화 지역의 학력이 상승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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