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5년마다 돌아오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재지정을 위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해이다. 지난 6월 20일 전주 상산고와 안산동산고가 자사고 재지정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탈락한 것을 계기로 자사고 제도 존폐 자체 대한 토론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자사고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김진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제도 존속이 필요하다는 의견(우수호, 대광고 교목실장)을 두 번에 걸쳐 들어본다.

우수호(목사, 대광고등학교 교목실장)

 

5년마다 돌아오는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재지정 평가 시기가 되어 자사고 제도 존속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자사고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모든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사립학교의 시작과 역사를 짚어 보면서 자사고 존속의 필요성을 2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겠다.

첫 번째는 사립학교의 본래 의미와 역할 측면이다. 사립학교는 학교법인 또는 사인(私人)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학교로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하는 국·공립학교와는 구분된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는 해방 이후 국가가 공교육을 통해 국민의 교육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상황에서 교육 부문에 민간 자본을 유치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실제로 국·공립학교의 숫자가 적었던 해방 이후 초기에는 사립학교가 80%가 넘을 정도로 많았다.

사립학교도 국·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학교교육을 수행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교육과정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립학교법 제1조가 법의 목적을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는 바와 같이, 사립학교는 공공성을 앙양함과 동시에 사립학교가 가지는 특별한 교육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자주성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사립학교의 특수성은 국·공립학교가 가질 수 없는 특성을 살려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건학 정신이나 설립 이념을 따라 역사와 전통을 지켜나가는 근거가 되어왔다. 또한 사학의 자율성은 교육의 자유와도 직결되는 것으로서, 외부 간섭 없이 전문성과 특수성에 따라 독자성을 지니도록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외적인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에는 국·공립학교뿐 아니라 사립학교가 존재한다. 같은 교육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학교를 설립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자녀들에게 시킬 자유를 보장한다.

 

자사고 입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면접.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자사고 이전의) 우리나라의 사립학교는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했다. 교육과정의 편성권도, 학생선발권도, 재정운영의 자율성도 없었다. 사립이라는 이름만 있었지 사립의 특수성과 자주성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학교는 거의 없었다. 모두가 국·공립학교처럼 운영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도입된 자사고 제도는, 보완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해주며, 사립학교가 실제로 자율성과 자주성을 가지고 교육하고 운영할 수 있는 출구를 마련해 주었다. 학생의 학교 선택권과 다소 미흡했지만 학교의 학생 선발권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교육과정의 편성권도 허용해 주었다. 사립학교 본래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준 제도인 것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교육과 복지에서 국가가 더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가 교육을 책임진다는 말의 의미는 국가가 국민을 대신해서 교육의 내용이나 철학까지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교육과정이나 철학은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하되 그것을 위한 비용과 필요한 지원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이어야 한다. 즉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와 필요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교육적 평등과 기회균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지정된 자사고들이 얼마나 오래 존속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제도의 존속의 여부는 국가가 강제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사고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주장은 국민의 다양한 교육적 욕구와 필요를 외면하는 일이며 헌법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종립학교(종교계에서 설립한 학교)의 종교교육과 선교적 측면에서 자사고의 존속이 필요하다. 본인은 기독교교육을 하는 자사고에 근무하는 교목이다. 근래 몇 년간 자사고 문제로 고민하며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고 표현하기도 했다. 각 학교들이 자사고로 전환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리 학교는 2004년 학생의 종교 자유를 주장하며 예배와 기독교교육을 거부함으로 시작된 ‘강의석 군 사건’으로 대법원 재판까지 받게 되면서 고민 끝에 자사고로 전환하였다.

2010년 대법원 판결에서 법적 기준은 명료했다. 입학생 강제 배정 제도 아래에서는 자유로운 종파교육(기독교교육과 선교)을 할 수 없으며, 자유로운 종파교육을 하려면 학생이 학교를 선택해서 입학해야 하고 국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당시에 우리 학교는 통학 거리 기준으로 교육청이 입학생을 강제 배정하였고, 교육 운영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전과 같은 신앙 교육과 선교가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학교가 설립된 1947년부터 2004년까지 계속 기독교교육과 선교를 해 왔는데, 그런 활동이 입학생 강제 배정과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학교 형태로 이루어질 경우에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대광고 문화채플(출처: 대광고 교목실)

 

그 이후로 우리 학교는 복음의 가치를 교육하면서도 불법을 저지르는 것처럼 항상 눈치를 보고 위축된 모습으로 교육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합법적인 기독교교육의 길을 찾던 중 2010년에 다양한 교육적 수요를 수용한다는 취지로 시행한 자율형 사립고 제도가 대법원판결에서 명시한 기준에 근접한 학교 형태를 제시함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2/3의 학교 운영비(약 40억 원)를 지원받지 못하고 학생 선발권이 없는 추첨 방식 선발이었지만, 기독교교육을 할 수 있는 합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학교 형태였기에 많은 부담과 두려운 마음으로 자사고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자사고는 우리나라 현행법 아래서 기독교학교들이 제도권 안에서 신앙을 교육하고 선교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학교 형태다. 물론 지금의 자사고 형태도 충분한 것은 아니다. 사립학교가 당연히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교육과정의 편성권(‘종교’가 아닌 ‘성경’을 필수 과목으로 편성하는 등)이나, 학생 선발권(기독교교육을 원하는 학생 우선 선발 등)이나, 재정의 자율성(기독교교육이나 선교에 필요한 재정 편성) 등이 아직도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법 제도 안에서 기독교교육의 자율성을 주장하고 확보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이다. 자사고 제도가 고교서열화를 부추기고 일반고의 교실붕괴를 가져온 주범이라고 비난하며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이 있지만, 선교와 기독교교육을 지향하는 종립학교들이 합법적으로 선교의 자율성을 얻어 교육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이므로, 자사고 제도의 존속은 필요하다.

고교서열화나 입시 위주의 교육, 교실 붕괴의 문제는 자사고가 생기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자사고 제도가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였다. 자사고가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대학의 서열화와 지금과 같은 입시제도가 존재하는 한, 고교서열화나 입시위주의 교육, 교실 붕괴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사고 제도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자사고들이 본래의 지정 목적대로 고유한 건학 이념을 살리고 교육의 공공성에 기여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견인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국민의 다양한 교육적 욕구와 필요를 존중해주면서, 교육과정이나 철학은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하고, 그것을 위한 모든 지원과 비용은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주는 형태가 바람직한 교육정책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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