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40대의 성인 남녀를 처음 만날 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흔히 묻던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말은 이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만큼 이제 결혼 여부, 결혼 시기와 관련된 부분은 개인적 선택의 영역이며 이에 해당하는 정보 역시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다.(본문 중)

신하영(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2019년 현재 한국의 초혼 연령은 남성 33.15세, 여성 30.40세로서 지난 2016년을 기점으로 남녀 모두 30세를 넘겼다. 서울의 경우에는 초혼 연령이 남성은 33.51세로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높고, 여성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31.32세로 나타난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비혼’(非婚)이라는 단어를 이제는 언론이나 일상생활에서 어렵지 않게 듣게 되었다. 비단 단어의 모양새만 바뀐 것이 아니다. 비혼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소수의 별종’에 머물지 않고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유의미한 집단으로 등장했다. ‘싱글족’ 혹은 ‘비혼족’, ‘1인가구’를 위한 레저, 취미, 가구, 가전, 주택 형태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사회적 합의보다 시장이 이러한 변화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시도별 평균초혼연령 (통계청, 2019)

 

비혼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현재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서의 비혼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과 기존에는 ‘미혼’으로 표현되던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보다 가치 지향적이고 개인의 신념, 삶의 양식을 드러내는 표현으로서의 비혼이다. 이 경우는 보통 ‘비혼주의자’라는 말처럼 ‘주의’(-ism)가 따라 붙는데, 그만큼 개인의 신념과 가치가 깃든 경우가 많다. 비혼주의자들은 전에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향후에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적극적으로 선택한 이들이다. ‘비혼주의자 선언’은 여성이 성평등의 관점에서 불합리한 가부장제와 결혼제도를 거부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구축한 삶의 태도와 취향, 경제적 토대와 가족관계 등을 바꾸기를 거부하는 등 다양한 동기에서 비롯될 수 있다. 굳이 포함관계를 따진다면, 전자의 ‘상태적 비혼’ 안에 후자의 ‘선언적 비혼’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30, 40대의 성인 남녀를 처음 만날 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흔히 묻던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말은 이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만큼 이제 결혼 여부, 결혼 시기와 관련된 부분은 개인적 선택의 영역이며 이에 해당하는 정보 역시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비혼 청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도 존중보다는 우려가 많고, 심지어는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주택 청약 조건이나 복지 혜택 등 국가적 보장과 지원 시스템은 결혼을 통해 맺어지고 출산으로 확장되는 ‘정상 가족’을 전제로 작동한다. 오죽하면 ‘결혼 제국’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을까. 그리고 이 결혼 제국의 신민 혹은 국민 되기에 실패한 이들은 ‘난민’ 지위에 머무른다. 특히 비혼 여성에 대한 편견은 다양한 성차별 기제와 엮여서 비혼 여성의 증가가 곧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게 만든다. 2017년에 크게 인기를 얻었던 웹툰 『며느라기』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을 선택한 여성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차별과 편견에 대해서 다루었다. 흥미롭게도 기혼 여성들이 이 웹툰에 공감하는 만큼이나, 10대, 20대, 30대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도 웹툰의 주요 장면들을 ‘퍼 나르면서’ 비혼을 선언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렇게나 불평등한 결혼 이후의 세상을 두고 ‘알고도 당하지는 않겠다’라는 선언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에서는 어떨까. 한국교회에서 비혼자들의 위치는 어떨까? 교회 안에는 나이와 연령, 사는 지역에 따라서 번호를 붙여 남전도회, 여전도회, 구역별로 교인을 구분하고 조직별 기능에 따라서도 분류하는, 참으로 부지런한(?) 분류와 호명의 체계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1남전도회는 대체로 가장 나이가 많은 결혼한 중년 남성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이러한 분류 체계는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는 큰 결함을 지닌다. 그런데 한편으로 교회에는 ‘결혼하지 않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모든 교인’을 뭉뚱그려 ‘청년’이라고 칭하는 게으른 분류 항목이 존재한다. 교회학교와 장년부 사이에 애매하게 끼인 세대를 뭉뚱그려서 모아 두는 ‘청년부’에는 나이도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아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거나 함께 어울리기에 무리가 있다. 이들 청년들은 결혼을 통해 장년부로 진입하지 못하면 만년 청년부에 남는다.

고교 졸업 후 대학 시절 혹은 사회 초년생 시기에는 ‘대학부’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고 그 시기에 청년들은 결혼보다는 진학과 취업을 격려 받고 그에 따른 관심과 기도 후원을 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들이 소위 ‘결혼 적령기’를 지나게 되면 교회 내의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은 갑자기 모두의 근심거리가 된다. 장년들은 청년들을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고 갑자기 배우자 기도를 해 주겠다며 나선다. 원치 않는 외모에 대한 조언과 부탁한 적 없는 만남의 주선도 이어진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무례한 말을 관심과 걱정이라는 미명하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지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아이를 낳으려면 한 살이라도 빨리 시집을 가야지”라든가, “예쁜 여자만 찾지 말고 눈을 낮춰야 한다” 등 교회 밖 공동체에서는 ‘실례가 되니 하지 못하는 말’까지도 교회 안에서는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 순간에는 애매하게 웃거나 답변을 피하는 ‘비혼 청년’이 어느 날부터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 자취를 감추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교회 안에서 가정 단위로 사역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는 배우자 기도도 절실하고 만남의 주선도 고마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적극적인 비혼주의자일수도 있고, 현재의 여러 조건 때문에 결혼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 비혼을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선언하지 않았을 뿐인 비혼자들에게는, 위와 같은 언행은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하는 폭력적 언사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간절히 결혼을 원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혹은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거나 다른 여러 이유로 결혼에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도 그런 말들은 ‘결핍된 존재’ 혹은 ‘부족한 존재’로 평가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이 된다. 그래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오히려 자신의 자존감이 하락하는 불행한 상황에 이르게 한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큰 틀에서는 교회 활동을 결혼한 부부를 기본 단위로 설정하고, 이혼 가정, 한부모 가정, 비혼 1인 가구, 조손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하지 못하는 교회 안의 ‘다양성 부재’에서 근본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교회 안에서 민주적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성인지 감수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미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청소년기에 교회학교를 통해 신앙 양육을 받고 청년 시기에 열정과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한 이들도 적지 않다. 교회가 비혼 상태에 있거나 삶의 양식으로 비혼을 선택한 이들을 포용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가 교회를, 치유 받고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는 역동적 성장을 위한 공동체로 기대하며 찾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청년들의 비혼은 결코 걱정거리나 기도제목이 아니다.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야 할 현재의 상태요, 우리가 존중해야 할 그들의 삶의 모습이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

우에노 지즈코, 미나시타 기류,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조승미 옮김 | 동녘 | 2017.1.16. | 292쪽 | 15,000원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와 또 다른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을 엮은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는 한국보다 한발 일찍 다가온 일본의 비혼 및 결혼을 둘러싼 사회 변화, 가족관계의 변모, 저출생(산) 문제 등에 대한 논의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두 사회학자는 기본적으로 결혼은 사회적 관계 형성, 생활양식의 변화, 경제문화적 조건의 막대한 변동을 가져오기 때문에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문제라는 생각을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혼은 결혼과 마찬가지로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게 두 사람의 주장이다. 특히 이 책에서 두 저자는 변화된 사회상에 어울리지 않는, 남녀 모두에게 고통만 주는 보수적인 결혼관 및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하면서 그런 낡은 틀을 깰 것을 주문한다. 결혼을 강요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삶만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괴로움을 주고 있으므로, 비혼을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고 페미니즘에 물든 여성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더 이상 눈앞에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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