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나가지 않거나 혹은 오래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이들도 왠지 성탄절엔 교회에 가야만 할 것 같았지요.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성탄 전야를 즐기고, 동네 아이들의 손엔 풍성한 선물이 들려졌습니다. 성도에겐 손을 비비며 새벽 길거리에서 캐럴을 불렀던 추억을 선사했고,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베들레헴 마구간, 예수 탄생 현장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구원과 생명의 온기를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성탄절은 그렇게 교회를 중심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억되고 나누어졌던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본문 중)

백광훈(목사, 문화선교연구원장)

 

얼마 전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출연자들에게 성탄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는데 이구동성으로 산타클로스가 생각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어서 성탄 트리, 선물 등이 성탄절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했는데, 정작 그날의 주인공 되시는 아기 예수가 떠오른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답변들이었지만 목회자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이제는 그리스도인만의 절기가 아니고 모두가 쉬고 즐기는 공휴일이 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정작 성탄의 정신은 사라지고 웃고 즐기는 엔터테이닝의 시간, 먹고 쇼핑하는 소비의 시간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Unsplash.

 

크리스마스의 상업화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블랙프라이데이, 그리고 성탄절로 이어지는 쇼핑의 황금 기간이 기업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소비의 시즌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성탄절 특수가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성탄절의 이미지가 소비하고 즐기는 시간이라는 이미지로 변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을 이삼십 년 전으로 돌려보면, 성탄절은 한국 교회가 사회 안에 의미 있게 문화화(inculturation)한 대표적인 절기였습니다. 신앙인뿐만 아니라 비신앙인도 성탄절에 관련된 따뜻한 추억 하나쯤은 아련히 떠올릴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거나 혹은 오래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이들도 왠지 성탄절엔 교회에 가야만 할 것 같았지요.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성탄 전야를 즐기고, 동네 아이들의 손엔 풍성한 선물이 들려졌습니다. 성도에겐 손을 비비며 새벽 길거리에서 캐럴을 불렀던 추억을 선사했고,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베들레헴 마구간, 예수 탄생 현장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구원과 생명의 온기를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성탄절은 그렇게 교회를 중심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억되고 나누어졌던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급속하게 팽창한 경제 규모와 뒤따르는 상업화와 소비중심 문화 속에서 성탄절의 풍경도 바뀌어 갔습니다. “성탄절은 백화점에서 온다”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교회에서 성탄절을 먼저 경험하지 않고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과 빛나는 상품들을 보면서 성탄의 이미지들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상업화하는 소비문화는 산타클로스를 성탄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각종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교회의 성도 역시, 12월을 대림과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며 아기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기보다는, 성탄절을 의례적인 교회 행사의 날 정도로 여기고 세속의 분주함과 소란한 분위기에 휩쓸려 별 감흥 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201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서울 명동으로 나들이를 나온 가족과 연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거리.(출처: 연합뉴스 갈무리)

 

소유의 삶 vs. 나눔의 삶

사실 교회 공동체가 성탄절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성탄절이야말로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소비주의적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물질주의와 소비적 가치들이 미덕이 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타인과 자신을 평가하곤 합니다. 구매력에 따라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소비하거나 소유하지 못할 때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런 소비 중심적 욕망의 심연 속에서 우리는 닻을 내리지 못한 채 끊임없이 부유하며 불만족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오심과 탄생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먼저, 그것은 움켜쥠이 아닌 내어줌의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은 그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은혜’(Gabe)라고 합니다. 이 ‘은혜’는 ‘책임’(Auf-gabe)의 삶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성탄절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선물을 나누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소비하고 소유하려고 애쓰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것을 감사하며 나누는 삶이 바로 예수 성탄의 정신을 닮아가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경건과 절제, 평화와 생명 나눔의 문화 만들기

이러한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면 대림절과 성탄절을 보내는 우리의 풍경들도 달라질 것입니다. 먼저, 대림과 성탄의 절기는 경건과 절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대림절 4주간의 시간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오도된 욕망들을 돌이켜보는 회개와 성찰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사순절 없는 부활절이 없듯이, 대림절의 시간을 통해 우리 마음에 주심을 모실 성탄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대림과 성탄의 절기를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겁게만 보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와 절제, 단순하고 겸손한 삶의 방식은 더 나아가 자신만을 향했던 시선을 이웃에게로 돌려보는 나눔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낮고 낮은 이 세상에 오셨듯이 우리도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육신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구원의 빛 되신 예수님의 탄생을 세상에 널리 알리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총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먼저 가족과 함께 성탄절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가정마다 4주간 대림절 초를 켜고, 가족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며, 크리스마스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기억을 자녀에게 선물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성탄은 우리의 작은 이웃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탄생의 첫 소식이 권력과 욕망이 가득했던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이방인 동방박사들과 야외에서 밤을 지새우던 목동들에게 전해진 것에는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대림·성탄절의 기간은, 이 시기에 더욱 외로워하고 아파할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갈 시간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교회는 이 시간에 이웃과 함께 하는 연대와 나눔의 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초대하거나,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바자회를 열거나, 병원과 요양원 침상에 있는 환우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기획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또,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여 함께 크리스마스 콘서트나, 뮤지컬, 영화 등을 관람하는 것도 생각해봄 직합니다. 뜻을 모은 성탄 기부금과 헌금들을 멀리 떨어진 제3세계의 자매형제들을 돕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탄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여지고 모든 것이 소비의 대상이 되는 우리 시대의 모습들을 보며, 유감과 비판을 넘어 예수 성탄의 의미를 나누는 대안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물질주의적 가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의 유익과 쾌락을 추구하는 자기 과시적 소비문화가 만연한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받은 예수 생명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성탄의 은총과 신비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눅 2:14)라고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한 천사들의 노래처럼, 성탄의 의미를 따라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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