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기세가 어찌나 강한지 전국 초중고 개학이 연기되었습니다. (중략) 아이들이 집 안에 갇혔습니다. 정약용이 유배당해 꼼짝없이 갇혔을 때 이렇게 말했답니다. “드디어 책 읽을 때를 만났구나!” 지금이야말로 책을 읽을 때입니다. 아이들과 밤샘 독서를 해보세요. 얼마나 오랫동안 책을 읽는지 기록을 재 보세요. 자녀가 읽을 책 목록을 구하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합니다. (중략) 지금이야말로 책의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본문 중)
권일한(책벌레 교사)
밤샘 독서,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독서 행사입니다. 저녁 6시, 어둑어둑해질 때부터 12시까지 책을 읽습니다. 잠깐 간식 먹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읽기만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만 참여해야 하는 행사일까요? 아닙니다. 엄마가 억지로 보낸 아이, 친구 따라온 아이, 집에 가도 재미없어서 온 아이, 학교에서 하루 자려고 온 아이, ‘설마 책만 읽겠어? 놀기도 하겠지!’ 하며 온 아이도 있습니다.
“얘들아, 책 읽자. 12시까지 읽는 거야. 시간이 짧지? 책 읽다 보면 금방 12시가 될 거야!”
책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책을 지루하게 생각할 거라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조금만 더 읽어 보자. 지루해도 읽다 보면 재미있어질 거야!”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저 스스로 기대에 차서, 정말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을 내보이며,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을 믿고 이렇게 말합니다. “책은 정말 재미있어. 한 권 읽으면 두 권, 세 권 계속 읽게 될 거야.”
저도 아이들 곁에서 책을 읽습니다. 시작할 때의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처음 10분은 아이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책에 빠져 안 들리는 척합니다. 꼼짝도 안 하고 읽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서서히 책에 빠져듭니다. 30분, 한 시간이 지나면 한 권을 다 읽고 책을 추천해달라고 합니다. 읽은 책을 책상 한쪽에 쌓아두고 또 읽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 높이가 높아집니다. 책이 쌓일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해 하는 걸 봅니다. 10분 읽기도 어려워하던 아이가 여섯 시간 동안 책을 읽습니다.
“벌써 12시가 되었네. 다음날이 된 거야. 이제 자야 하지 않아?”
“선생님, 이렇게 오래 읽은 게 처음이에요. 더 읽어도 돼요?”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많이 읽은 건 처음이에요.”
2시까지 읽을 때도 있습니다. 밤샘 독서를 할 때마다 놀랍니다. 저보다 아이들이 더 놀랍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어찌나 강한지 전국 초중고 개학이 연기되었습니다. 학교는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집 안에 갇혔습니다. 정약용이 유배당해 꼼짝없이 갇혔을 때 이렇게 말했답니다.
“드디어 책 읽을 때를 만났구나!”
지금이야말로 책을 읽을 때입니다. 아이들과 밤샘 독서를 해보세요. 얼마나 오랫동안 책을 읽는지 기록을 재 보세요. 자녀가 읽을 책 목록을 구하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합니다. 잔소리하며 강요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읽으면 선물 준다고 하지 말고, 책을 즐기는 시간을 가지세요. 지금이야말로 책의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1-2학년을 위한 책 읽기[1]
1-2학년은 상상의 세계를 좋아합니다. 동물 이야기도 좋아합니다. 부모가 보기에 유치한 이야기가 아이들에게는 딱 맞는 책입니다. 그런데 상상의 세계가 아니어도, 동물이 나오지 않아도, 좀 어려워도 1-2학년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읽어 주는 겁니다. 아이를 곁에 앉히고 책을 읽어 주세요. 책 읽는 도중에 아이가 계속 물어볼 거예요. 그때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면 스스로 답을 찾는 능력이 자랍니다. 짜증 내지 말고 대답해주세요. 대답해주고 나서 또 읽어 주세요. 다 읽은 뒤에는 아이가 읽을 기회를 주세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읽어 주라고 하세요. 반려동물이 없다면 친구를 생각하며 읽어 보라고 하세요. 친구에게 전화해서 읽어주게 하면 되겠네요.
- 똥과 오줌과 방귀를 다룬 책을 읽어 보세요.
저학년 아이들은 똥과 오줌과 방귀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어른들이 ‘금기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지요. 특히 남자아이들은 더럽고 지저분한 똥과 방귀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실에서 『오줌이 찔끔』에 나온 대사를 읊으며 깔깔 웃습니다. 똥과 방귀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통쾌함과 해방감을 줍니다.[2] 도서관에서 똥과 방귀에 대한 책을 잔뜩 빌려와서 읽어 주세요. “이런 책은 화장실에서 읽어줘야지!” 해 주세요. 빈 욕조에 누워, 화장실 변기에 앉아 읽는 똥과 방귀 이야기, 아이들에겐 좋은 추억이랍니다. 책을 읽고 나서 찰흙으로 똥과 오줌을 만들면 ‘그 책’은 ‘내 책’이 됩니다.
① 똥을 소재로 한 책 : 『강아지똥』, 『돈벼락 똥벼락』, 『똥자루 굴러간다』, 『똥벼락』, 『마법사 똥맨』, 『밥 먹을 때 똥 얘기 하지 마』, 『우리 선생님도 똥 쌌대』, 『쿵푸 아니고 똥푸』 등.
② 오줌을 소재로 한 책 : 『대단한 오줌싸개 대장』, 『오줌 멀리싸기 시합』, 『오줌이 찔끔』, 『오줌을 연구하자』 등.
③ 방귀를 소재로 한 책 : 『노랑 각시 방귀 소동』, 『방귀대장 조』, 『방귀 만세』, 『방귀 스티커』, 『절대로 안 씻는 코딱지 방귀 나라』 등.
- 딕 킹 스미스가 소피를 주인공으로 쓴 책을 읽어 보세요.
딕 킹 스미스는 영화로 만들어진 『꼬마 돼지 베이브』의 원작자입니다.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는 소피가 농장에서 지내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소피의 작은 농장에서 달팽이와 놀고, 친척과 이웃을 만납니다. 딕 킹 스미스가 글로스터셔의 농장에서 여러 해 동안 농부로 일한 경험을 살려 재미난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소피가 학교 가는 날』에서 소피는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학교에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기대하며 읽다 보면 소피가 겪는 일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우리도 학교에 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학교에 갈 날을 기대하며 읽으면 좋겠지요. 이 두 책은 1-2학년이 읽기에 약간 길므로 한 장(chapter)씩 읽어 보세요. 15쪽 정도의 짧은 이야기 6-7편이 이어집니다. 『소피는 농부가 될 거야』를 읽고 가까운 산이나 들판에 가 봐도 좋겠네요. 그곳에서는 지금쯤 식물과 곤충과 농부가 봄맞이 준비로 한창 바쁘겠네요.
3-4학년을 위한 책 읽기
1, 2학년 때 왕성했던 상상력이 현실성을 갖추기 시작할 때입니다. 주변 사회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관심 분야도 생깁니다. 그림이 없어도 책을 보며 연상하는 힘이 생깁니다. 논리적 사고도 발달하여 공감과 비판, 찬성과 반대를 표시합니다. 독서 능력의 차이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때입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 일어날 법한 일을 다룬 책을 추천합니다. 친구 관계, 학교에서 일어난 일, 부모와의 관계 등을 다룬 책이 좋습니다. 특히 또래 친구들이 쓴 글 모음집을 추천합니다.
- 또래 친구들이 쓴 글모음: 『내 손은 물방울 놀이터』, 『이빨 뺀 날』, 『비교는 싫어』
(주)우리교육 출판사에서 1991년부터 학급문집 공모전을 했습니다. 학급 아이들과 글을 쓰고 문집을 만든 선생님들이 학급문집을 보냈습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모은 학급문집 천여 권에서 시와 일기를 골라 책으로 엮었습니다. 『내 손은 물방울 놀이터』는 시 모음집입니다. 자연을 마음에 담은 시, 동식물이나 작은 생명을 마음에 품은 시, 집안 식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하고 마음을 나눈 시, 어린이들이 살면서 마음에 맺힌 말이나 스스로 깨우친 생각을 나타낸 시를 모았습니다.
『이빨 뺀 날』은 2-3학년, 『비교는 싫어』는 4-6학년 일기 모음집입니다. 전국 각지의 아이들이 겪는 일을 쓴 일기여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습니다. 일기를 읽으며 올해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면 좋겠지요. 『이빨 뺀 날』은 조금 유치할 수도 있습니다. 『비교는 싫어』는 약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쓴 글이라 재미날 겁니다.
- 우리나라 대표 작가 한 분의 책 찾아 읽기
초등 3학년부터 중고등학생까지 모두 학교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합니다. 한 권을 천천히, 깊이 읽는 수업입니다. 저는 지난해에 3–4학년과 김리리 작가, 유은실 작가의 책으로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했습니다. 도서관에 두 작가의 책을 여러 종류 준비했습니다. 김리리 작가의 『뻥이오 뻥』을 읽은 아이는 『검정 연필 선생님』, 『나는 꿈이 너무 많아』, 『만복이네 떡집』, 『엄마는 거짓말쟁이』, 『우리 사부님이 되어주세요』를 계속 빌렸습니다. 유은실 작가의 『멀쩡한 이유정』을 읽은 아이는 『나도 예민할 거야』, 『나도 편식할 거야』, 『우리 동네 미자씨』, 『일수의 탄생』을 계속 읽었습니다. 특히 『일수의 탄생』은 자녀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아이의 쓸모를 누가 정하는지, 부모가 자녀를 위해 얼마만큼 해주어야 하는지 이야기하면서 읽어 보세요. 고정욱, 김태호, 송언, 이금이, 정연철, 진형민, 황선미 등 좋은 작가가 참 많아요.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 보세요.
5-6학년을 위한 책 읽기
이 시기는 독서습관이 양극화되는 시기입니다. 책을 읽는 아이는 엄청나게 읽지만 전혀 손을 대지 않는 아이도 생깁니다.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지적 호기심이 커지고 합리적 사고가 발달하여 어른들의 권위에도 도전하며 비판하는 시기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라면, 특히 남자아이라면 로알드 달이 쓴 책을 추천합니다. 물론 책을 좋아하는 아이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입니다.
5-6학년 아이들은 영상을 좋아합니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보거나 친구와 함께 영화관에도 갑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책을 읽고 영화와 비교해 보세요. 책을 읽기 싫어한다면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게 해보세요. 그런 뒤에 영화에서는 책 내용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커질 거예요.
- 로알드 달의 책
책을 읽지 않는 아이를 위한 책 : 『마녀를 잡아라』, 『멋진 여우씨』, 『멍청씨 부부 이야기』, 『제임스와 슈퍼복숭아』,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
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책 : 『마틸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로알드 달의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 『우리의 챔피언 대니』
[1] 학년별 책 읽기 특징은, 권일한,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 이야기』(우리교육, 2011)에서 인용했습니다.
[2] 한미화, 『아홉 살 독서수업』(어크로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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