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찰이 사라진 한국 장로회 교회의 모습은 참담하다. 교구 교회가 어떠한 무리수를 두어도 노회는 간섭을 포기한 지 오래다. 목회자들 세계에서는 개별 교회에 대한 조언이나 간섭은 목회 윤리의 파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노회도 크게 문제화가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조용히 넘어가 주는 형편이다. 어느 교회는 교인이 수천 명이 되어도 장로는 10명이 되지 않는다니, 이는 장로회 교회의 원형을 포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본문 중)

김중락(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말씀동산교회 장로)

 

한국의 대부분 장로회 교회는 ‘시찰회’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시찰’이라 불리는 이 모임은 노회의 하부 조직으로 10개 내외의 교회 목사와 장로들의 모임이다. 노회보다 더 작은 모임으로 이웃 교회 간에 서로 시찰(visitation)을 행하라는 의미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모임이 하는 일을 보면 수상하기 짝이 없다. 시찰회가 그 기능을 행하지 못하고 이웃 교회 목회자들 간의 친목회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들의 주된 업무가 교회에 대한 시찰이지만 교회 시찰은 사라지고 관광지 탐방이나 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회가 시찰회에 시찰을 독려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노회나 시찰회나 누구도 시찰에는 관심이 없다. 도대체 장로회 교회와 시찰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제1치리서』와 『제2치리서』의 시찰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도 가장 늦은 1560년에 이르러서야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1560년 8월 스코틀랜드 의회는 ‘교황의 사법권 폐지법’(the Papal Jurisdiction Act)과 ‘신앙고백 추인법’(the Confession of Faith Ratifica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종교개혁의 첫 단계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선언적 의미가 강했고, 지방이나 개별 교구 차원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정착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종교개혁이 위로부터 이루어진 측면이 있었으므로 지방이나 교구 교회 차원에서는 새로운 개혁 신앙에 대한 혼란이 적지 않았다. 어떤 형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도 모르는 교회가 많았고, 교회 운영에 대한 혼란도 많았으며, 교회가 아예 없는 지역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격을 갖춘 시찰관을 임명하여 혼란을 바로잡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었다.

1561년 스코틀랜드 교회의 정치를 규정한 『제1치리서』가 탄생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제1치리서』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시찰 감독’(Superintendents)이라는 직책이다. 『제1치리서』는 전국을 10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 시찰 감독을 임명하였다. 『제1치리서』가 규정한 시찰 감독의 기능은 교회를 개척하여 일으키고, 목회자가 없는 곳에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민중을 위한 조치였다. 따라서 시찰 감독은 주어진 지역 내에서 계속 순회하면서 그 직분을 감당해야만 했다. 이처럼 『제1치리서』는 시찰(visitation)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시찰의 중요성은 장로회 제도가 전국적으로 정착되고 있던 1570년대 말에도 강조되었다. 1578년에 제정된 『제2치리서』의 7조 7-8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모든 치리회는 그들의 회원들 가운데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시찰 위원을 보내서 관할 구역 내에서 모든 것이 잘 치리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2. 교회에 대한 시찰은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항존적인 교회의 직분이 아니다. 시찰관에게 감독이라는 이름이 주어져서도 안 되며, 항상 동일한 사람만을 임명할 필요도 없다. 자격 있는 이를 임시적으로 파견하는 것은 치리회 임무의 일부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제1치리서』의 시찰 감독이나 『제2치리서』 시찰자 모두 임시직이라는 점이며, 주교와 같은 권력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코틀랜드의 시찰 제도는 장로회 교회의 전파와 함께 장로회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

 

ⓒunsplash.

 

스코틀랜드 장로회 교회의 시찰

『제2치리서』에서 보듯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총회나 노회 모두가 시찰의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도 1570년대 스코틀랜드 총회는 적지 않은 경우 시찰 위원들을 임명하여 어떤 지역에 대한 시찰을 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곤 하였다. 그러나 전형적인 것은 교구 교회에 대한 노회의 시찰이었다. 종교개혁 초기에 총회 주도의 지방 시찰이 많았던 것은 노회의 설립이 미비한 점도 있었고, 교구 교회 차원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었던 탓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580년대는 노회의 시찰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노회의 설립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1582년 총회가 노회의 시찰권을 재강조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스코틀랜드 노회의 교구 교회에 대한 시찰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노회는 2명 이상의 시찰단을 조직하거나, 전 노회원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개별교회에 대한 시찰을 시행하였다. 대개 특정한 교회의 시찰에 앞서 노회는 시찰일과 설교자를 정하였다. 시찰일에는 해당 교구 교회에서 시찰 위원들과 교인들이 먼저 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 헌금은 그 교구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시찰의 첫 업무는 교구 교회의 목사에 대한 감사였다. 시찰 위원들은 교구 목사를 제외한 당회원들과 모임을 갖고 목회자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난 뒤 당회원들과 교인들의 불만을 들었다. 그 후에는 교구 목사와의 면담을 통해 장로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사를 행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당회의 기록과 교회당의 상태와 교회의 재정 문제 등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실행하였다. 대부분의 경우 시찰은 하루 종일 소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의 시찰

시찰이 사라진 한국 장로회 교회의 모습은 참담하다. 교구 교회가 어떠한 무리수를 두어도 노회는 간섭을 포기한 지 오래다. 목회자들 세계에서는 개별 교회에 대한 조언이나 간섭은 목회 윤리의 파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노회도 크게 문제화가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조용히 넘어가 주는 형편이다. 어느 교회는 교인이 수천 명이 되어도 장로는 10명이 되지 않는다니, 이는 장로회 교회의 원형을 포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노회는 간섭하지 않는다. 기분이 나쁠까 봐 재정 기록을 보자고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개별 교회의 설교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다. 같은 단위 교회로서의 관심은 없고, 그저 남의 교회이고 이웃 교회일 뿐이다. 노회가 하나의 교회라는 사실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교인들도 이러한 상황에 편리함을 느낀다. 정당한 노회의 관심은 부당한 간섭으로만 보인다. 노회와의 교류가 전혀 없으니 상회비도 부당한 수탈로 보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시찰은 감시, 감독, 감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같은 교회 교우들 간의 교제이며 노회와 교구 교회를 더욱더 튼튼하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회가 교회의 단위라면 노회는 교구 교회의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바른 복음이 전파되도록 만들어야 할 책임을 지닌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회 내 모든 교구 교회가 한 식구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사실 시찰은 스코틀랜드 교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시찰은 제네바 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576년 베자(Beza)는 스코틀랜드 귀족 글라미스(Glamis) 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회는 자주 시찰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시찰은 장로회 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제도이다. 지금이라도 진정한 시찰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시찰회의 기능을 바로잡든지, 특별 시찰단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교회를 시찰해야 한다. 개별 교회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노회의 회복이고, 노회의 회복이 한국교회 회복의 시작이다. 시찰이 없으면 노회의 존재 이유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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