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철학의 두 거장, 앨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와 리처드 스윈번(Richard Swinburne)의 책이 최근 연이어 출간됐다. 두 철학자 모두 오랜 시간 철학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적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은 학자들이다. 플랜팅가의 저술은 몇 종이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지만, 그의 중요한 작품들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스윈번의 책은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됐다. 이 두 철학자는 모두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변호하지만, 그 방법에서는 서로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기보다는 이들의 기독교 변증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각각의 특징을 간략하게 제시해보겠다.(본문 중)
최경환(과학과신학의대화 사무국장)
앨빈 플랜팅가 | 지식과 믿음(Knowledge and Christian Belief)
IVP | 2019.8.28.(원서: 2015) | 284쪽 | 15,000원
리처드 스윈번 | 신은 존재하는가(Is There a God?)
복있는사람 | 2020.4.27.(원서: 1996, 2010) | 228쪽 | 12,000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독교 철학의 두 거장, 앨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와 리처드 스윈번(Richard Swinburne)의 책이 최근 연이어 출간됐다. 두 철학자 모두 오랜 시간 철학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적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은 학자들이다. 플랜팅가의 저술은 몇 종이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지만, 그의 중요한 작품들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스윈번의 책은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됐다. 이 두 철학자는 모두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변호하지만, 그 방법에서는 서로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기보다는 이들의 기독교 변증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각각의 특징을 간략하게 제시해보겠다.
먼저 앨빈 플랜팅가는 20세기 후반부에 기독교 철학계를 이끈 대표적인 학자로서 미국 철학회(서부 지부)와 기독교철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영국의 기포드 강좌에서 두 번이나 강연했다. 2017년에는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그는 개혁파 신앙에 뿌리를 두고, 현대 인식론을 연구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철학과 학생들이 보는 현대 인식론 교재에서도 그의 이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학문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겼다 할 수 있다. 처음에 그는 분석철학과 양상논리학을 통해 신 존재 증명과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가 『신과 타자의 정신들』(God and Other Minds, 1967), 『신, 자유, 악』(God, Freedom, and Evil, 1977)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지식론, 특별히 ‘우리는 어떻게 신을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연구 주제를 옮긴다. 플랜팅가는 증거주의(evidentialism)나 고전적 토대주의(classical foundationalism)을 반박하고, 유신론적 믿음은 마치 우리가 타자의 마음이 존재한다고 당연히 믿는 것과 유사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플랜팅가가 본격적으로 현대 인식론의 다양한 논의와 대결하기 시작한 것은 보증(Warrant) 3부작을 쓰기 시작하면서다. 먼저 『보증: 최근 논쟁』(Warrant: The Current Debate, 1993)에서는 현대 인식론의 난제였던 ‘게티어 문제’ 이후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e belief)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현대 인식론의 전체적인 지형도를 그린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증과 적절한 기능』(Warrant and Proper Function, 1993)에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논증을 전개한다. 여기에서는 적절한 기능, 설계, 배경지식, 그리고 보증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제시한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본인이 진짜 하려던 작업, 바로 보증 개념을 통한 기독교 지식론을 완성한다. 『보증된 기독교 믿음』(Warranted Christian Belief, 2000)은 그동안 그의 기독교 철학 작업을 집대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지식과 믿음』(Knowledge and Christian Belief)은 이 책을 가능한 한 쉽게 요약한 것이다.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같은 고전적인 무신론자들뿐 아니라 오늘날 과학주의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이들은 종교적 믿음이 자기중심적이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플랜팅가는 도리어 이들의 종교 비판은 모두 잘못된 지식 이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올바른 지식이 형성되려면 다음의 조건, 즉 “믿음이 적절한 인식 환경에서, 진리를 목표한 설계 계획을 따라, 나아가 성공적으로 진리를 목표하는 설계 계획에 따라, 올바르게 작동하는 인지 능력 혹은 인지 과정”을 만족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지식과 믿음』, 125쪽). 그리고 기독교의 믿음은 이 조건을 충분히 만족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플랜팅가의 전략은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전제된 인식론의 근거를 격파해서 그들의 공격이 유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기독교의 신념이 그들의 논리나 근거에 장단을 맞출 필요가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반면, 리처드 스윈번은 플랜팅가와 정반대의 방법론을 취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종교철학을 가르쳐온 리처드 스윈번은, 20세기 중반에 논리실증주의와 언어분석철학을 공부하고, 이들과의 대결을 통해 유신 논증을 펼쳤다. 그는 일상언어학파의 대부인 오스틴(J. L. Austin)에게 철학을 배우면서 논증과 검증의 엄밀성을 습득한다. 그리고 과학철학을 연구하면서 전문적인 학자로서의 신뢰를 쌓는다. 초기에 그가 쓴 책으로는 『공간과 시간』(Space and Time, 1968), 『확증 이론 입문』(An Introduction to Confirmation Theory, 1973) 등이 있는데, 이런 연구를 통해 그는 과학 이론의 의미와 정당화 문제를 깊이 연구하고, 분석적 유신론(Analytic Theism)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그리고 그의 철학적 신학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유신론의 정합성』(The Coherence of Theism), 『신의 존재』(The Existence of God), 『신앙과 이성』(Faith and Reason)을 집필한다. 이 책들은 과학철학의 다양한 논증을 통해 유신론의 개연성을 높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나온 『신은 존재하는가』(Is There a God?, 1996)는 그 내용을 쉽게 설명한 책이다.
스윈번은 근대 학문의 토대와 전제 위에서 신 존재 증명을 수행한다. 근대 자연과학의 기준을 사용하고, 근대 철학의 엄밀함을 통해 기독교 신학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신앙의 내적 경험이나 기독교 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세계에서 출발한다. 엄밀한 언어 분석을 통해 기독교 현상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다루는데, 이때 유신론은 경쟁하는 다른 이론보다 더 좋은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확정적으로 선언하지는 않는다. 신이 존재할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높음을 보여줄 뿐이다.
과학철학에서는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라는 방법으로 가설의 설명력을 입증하려 하는데, 스윈번은 바로 이 방법론을 사용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유신론을 하나의 가설로 상정하고, 그동안 제시된 신 존재 증명의 논증을 하나씩 쌓아 올리면 결국 “모든 현상들을 상당한 정도의 개연성을 가지고 예상할” 수 있다(『신은 존재하는가』, 100쪽). 유신론을 가정할 때 자연 세계와 일상의 현실을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스윈번은 의심이 많고 뭐든지 꼼꼼하게 따지고 분석해서 증거를 찾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는 플랜팅가와 달리 외부 세계나 타자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증거를 찾아 저울에 달고 그 저울의 추가 유신론 쪽으로 기울면, 그때서야 비로소 믿음을 가진다.
플랜팅가와 스윈번은 동시대의 기독교 철학자이지만 상반된 방식으로 신 존재 증명과 기독교 신앙을 변호한다. 플랜팅가는 근대가 구축한 합리성과 토대주의의 기초를 깨트리고 허무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도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인식의 기준을 제시한다. 반면 스윈번은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와 논리가 있다고 보며, 오늘날 과학철학과 논리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를 통해 이를 입증한다. 가설이 하나의 이론으로 입증되는 과정을 그대로 기독교 신념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그 기준으로 봐도 유신론은 타당하다는 것이다.
플랜팅가와 스윈번 중 누구의 변증이 더 효과적이고 성공적이었는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상반된 방식으로 기독교를 변호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둘 다 자신의 학문 영역에서 탁월한 성과와 업적을 남겼고, 동시대의 학문을 충분히 습득하고 진지하게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철학자들은 자신의 동료라 하더라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을 고운 눈으로 쳐다볼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은 플랜팅가와 스윈번의 논의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치열하게 토론에 응해주었다. 왜 그랬을까? 플랜팅가와 스윈번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철학의 흐름과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증명했다. 그리고 그 방법론을 기독교 신앙에 동일하게 적용했다. 이들의 논증과 이론은 일반 철학계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지금까지도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 철학자의 소명, 혹은 그리스도인 학자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새로운 학문이나 이론이 등장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진취적으로 연구하고 고민하는가, 아니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경계하고 배척하는가? 새로운 사상이나 과학적 발견이 소개되면 그것이 기독교에 유익한지 해로운지만 먼저 따져 보려고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일반 학계의 문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진지하게 그들과 토론하는 것이 학문의 기본적인 자세일 것이다. 기독교 철학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기독교 신앙을 학문적으로 변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이야기(그것이 기독교를 반박하는 무신론자들의 논의라 하더라도)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응답해야만 그들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줄 것이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학문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독교 철학자 플랜팅가와 스윈번에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들이 얼마나 기독교 신앙을 탁월하게 변증했느냐보다는 그들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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