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이 중기를 지나게 되면,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돌봄 없이는 생활이 어렵다. 치료가 불가능하고 점진적으로 퇴행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돌봄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중요하다. 국가의 지원도 돌봄 도우미와 같은 돌봄 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돌보는 가족의 극심한 수고가 요구되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병을 ‘가족 병’이라 부르기도 하고, 돌보는 가족도 함께 고통을 받기 때문에 가족들을 ‘숨은 환자’라고도 한다. 회복이 불가능하며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는 알츠하이머병의 특성 때문에 본인과 가족들의 절망과 우울은 점점 깊어지게 된다.(본문 중)

김준(총신대학교 상담대학원 교수)

 

기대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나라도 급속하게 고령 사회로 변하고 있다. 국민 7명 중 한 명이 노인으로 분류되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을 조사했더니 ‘치매’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기억을 상실하여 자신의 삶이 비참해질 뿐 아니라 주위 가족들에게도 큰 고통의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고령 사회의 재앙’이라고까지 불리는 치매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도 치매가 국민과 가족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인 ‘치매’는 병명이라기보다는 기억 상실과 관련된 다양한 증상들을 말한다. 치매 증상을 유발하는 병으로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뇌졸중 등이 있는데, 알츠하이머병이 치매의 60%-80%를 차지한다. 유전에 의한 조발성 알츠하이머병도 있지만, 대부분의 알츠하이머병은 65세 이후 노화에 의해 발병한다. 특히 기억을 주로 담당하는 해마 세포 안에 단백질 노폐물(아밀로이드)의 축적과 이로 인한 뇌세포의 손상이 주요 원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아밀로이드는 점차 뇌의 전반에 퍼지게 되어, 사고 및 행동상의 장애를 유발하게 된다.

 

ⓒpixabay.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이 중기를 지나게 되면,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돌봄 없이는 생활이 어렵다. 치료가 불가능하고 점진적으로 퇴행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돌봄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중요하다. 국가의 지원도 돌봄 도우미와 같은 돌봄 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돌보는 가족의 극심한 수고가 요구되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병을 ‘가족 병’이라 부르기도 하고, 돌보는 가족도 함께 고통을 받기 때문에 가족들을 ‘숨은 환자’라고도 한다. 회복이 불가능하며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는 알츠하이머병의 특성 때문에 본인과 가족들의 절망과 우울은 점점 깊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80대 이상 노인의 33%가 알츠하이머병 환자라는 통계는 이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포함되어 있고,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알츠하이머병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기독교인들과 그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다양한 필요가 있겠지만, 이들이 신앙인으로서 알츠하이머병과 환자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갖는다면 알츠하이머병에 대처하거나 환자를 도울 때 절망과 우울보다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며 의지하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알츠하이머병은 기억에 관한 질병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다. 예언자 이름인 ‘스가랴’는 “하나님은 기억하신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고 반복하여 강조한다. 이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그 백성들도 하나님이 베푼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원하신다. 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에게 돌 12개를 취하여 세우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베푼 구원의 역사를 백성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수 4:7). 또한, 하나님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공급자가 되어 채워주셨던 은혜를 기억하도록 항아리에 만나를 보관하라고 지시하셨다(출 16:33).

 

ⓒpixabay.

 

하나님이 유지하도록 지시한 열두 개의 돌과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우리의 삶에도 우리가 체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물들이 많다. 예를 들면, 즐겨 불렀던 찬송가, 교회 생활을 담은 사진과 영상 앨범들, 성찬과 예배와 같은 은혜의 공간 등이다.

루이빌대학교에서 노인 의학을 가르치는 벤자민 마스트(Benjamin Mast)는 이러한 신앙의 상징물들을 이용하는 돌봄의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1) 그에 의하면, 인간의 기억은 ‘의식적 기억’, ‘과정 기억’, ‘감정 기억’이 있다. 의식적 기억은 알츠하이머병이 일차적으로 영향을 주는 기억으로서, 주로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사실, 정보에 관한 기억으로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러나 과정 기억과 감정 기억은 뇌의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는 신비한 기억으로서 의식적인 기억보다 더 오래 남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의 환자들이 멜로디를 듣고 기억하지 못한 노래를 부르거나, 방금 참석한 모임에 관해서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 모임에서 가졌던 감정을 기억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 기억과 감정 기억의 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알츠하이머병을 다룬 영화로 잘 알려진 <스틸 앨리스>(Still Alice, 2014)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도 감정 기억에 관한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의 말기에 있는 엘리스가 배우 지망생 딸의 대사를 들은 후, 인지적으로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대사에서 느끼는 감정인 ‘사랑’을 말하고, 딸은 엄마의 말에 역시 ‘사랑’이라고 답하며 엄마를 끌어안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지식적이고 인지적인 영역을 넘어 영혼 깊숙이 체험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이 인지 영역에서 많은 도전을 주고 상실감을 주지만, 신앙인들은 환자들 영혼 깊숙이 남겨진 은혜의 기억을, 앞서 언급된 은혜의 매개물을 사용하여 조금이나마 끌어낼 수 있다. 이렇게 알츠하이머병의 환자가 신앙의 기억을 가능하면 오랫동안 유지하고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기억들을 나누면, 환자에게 신앙적 유익이 있을 뿐 아니라 불안했던 정서에도 안정감을 준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환자를 보며 상실의 고통을 느끼는 가족들이 천국에서 온전히 회복되어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을 품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개인과 가족들은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체험하거나 함께 공유한 은혜의 상징들을 모으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성구 모음, 신앙 일기, 찬송 모음, 교회와 소그룹에 관한 영상과 사진들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일이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예배와 신앙 소모임에 참석하여 신앙의 의미를 깊이 체험하는 습관을 유지한다면, 후에 기억이 사라져 갈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더 오래 느낄 수 있고, 또 우울하고 불안할 때 가족들이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여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잊을 때가 많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들 중에는 신앙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받으신다. 알츠하이머병은 회복이 불가능한 병이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본인과 가족들 안에 절망과 우울이 쌓여 간다. 어떤 경우에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의식이 없어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때 낙심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겨준 은혜의 흔적들을 다시 나누며, 하나님은 잊지 않고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며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회복하신다는 소망을 함께 붙들도록 하자.


1) 벤자민 마스트, 『내 기억 속의 하나님의 은혜』(그리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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