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노년을 걱정하고 노년 준비를 고민하면서도, 막상 노년, 노년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지금의 노년에게서 나의 노년을 볼 수 있고, 내가 앞으로 걸어가게 될 길을 헤아려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노년에 닥쳐올지 모르는 질병과 빈곤과 할 일 없음과 고독과 소외는 물론이고, 그분들이 긴 인생길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와 넉넉함과 통찰력을 보고 느끼고 배워서 내 노년 설계에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관심’입니다.(본문 중)

유경(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코로나19로 인해 어르신들을 직접 만날 수 없게 되기 전까지, 저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노인복지관과 노인대학에 가서 강의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어르신들과 함께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인해 세상이 비대면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마주 앉아 마음 편히 밥 먹을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지난 30년 가까이 노인복지 현장을 다니며 만난 어르신들 가운데는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나 배움의 정도를 떠나 성숙함과 너그러움으로 본이 되는 분이 계신가 하면, 결코 닮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기억에 남은 분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모든 한 분 한 분이 결국 제게 나이 듦의 진짜 모습을 가르쳐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어르신들의 가르침에서, 또, ‘50플러스’, 또는 ‘신중년’이라 부르는 50세 이상 중년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며 얻은 경험으로부터, 제대로 잘 나이 드는 데 필요한 몇 가지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첫째, 관심

사람들은 노년을 걱정하고 노년 준비를 고민하면서도, 막상 노년, 노년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지금의 노년에게서 나의 노년을 볼 수 있고, 내가 앞으로 걸어가게 될 길을 헤아려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노년에 닥쳐올지 모르는 질병과 빈곤과 할 일 없음과 고독과 소외는 물론이고, 그분들이 긴 인생길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와 넉넉함과 통찰력을 보고 느끼고 배워서 내 노년 설계에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관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모습 속에 자신의 노년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모습대로 나이 들어가고 늙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의 노년이 힘들고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가올 노년을 거부와 공포로만 대할 것은 아닙니다. 또한 노년 준비에 ‘돈’만 생각하며 재테크, 노(老)테크에 집중하지 말고,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사람

93세이신 제 어머니는 아버지와 금슬 좋게 60년을 해로하시고 5년 전 혼자 남으셨습니다. 손수 살림을 꾸려 가시다가 더 이상은 혼자 계실 수 없어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신 지 3년 반입니다. 지금은 요양원 유리 출입문을 사이에 둔 비대면 면회조차 허용이 되지 않아 애가 탑니다. 요즘 자주 떠오르는 어머니 말씀이 있습니다. “살아보니 가난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 가난이더라.”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고 홀로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곁에 아무도 없는 노년은 상상할 수 없고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거저 곁에 다가오거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정성을 기울이고 마음으로 내가 먼저 다가가야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보내는 따뜻한 노년을 꿈꾼다면, 이 또한 미리 준비하고 내가 먼저 내 곁의 사람을 진심으로 보듬어야 합니다.

 

 

셋째, 자기관리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 그리고 돈도 잘 챙겨야 합니다. 오래 사용한 몸이 나이와 함께 변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지만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게 굴 일도 아닙니다. 몸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담는 그릇이고,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꼭 필요하므로 소중하게 돌보면서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여서, 오랜 세월 살면서 때가 끼고 찌꺼기가 달라붙은 것을 깨끗하게 닦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욕(老慾), 노추(老醜)를 피하려면, 몸을 돌보는 것 이상으로 매일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닦고 보살펴야 합니다.

돈 또한 잘 관리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일찍 손을 놓고 자식에게 넘겼는데 문제가 생기면, 노년의 생활이 불안정해집니다. 반대로 때를 놓쳐 판단력이 흐려지는 바람에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평생의 수고가 덧없이 사라지거나, 자손들 간에 싸움과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넷째, 할 일

하루 24시간 365일이 모두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난 시간이 되면, 막막해집니다. 돈 버는 일, 취미 여가 활동, 신앙생활, 봉사 활동, 집안일 돌보는 것 등 무엇이든 좋으니, 긴긴 노년의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많이 생각해 보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지혜를 나눠야 합니다. 사람은 할 일이 없을 때 위축되면서 스스로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할 일이 있고 책임져야 할 역할이 있을 때, 활력을 얻고 힘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19로 전면 중단된 상태지만, 교회 생활 역시 노년의 일상에서 크고 소중한 영역입니다. 젊은 세대들도 이 점을 공감해서 적극적으로 어르신들의 신앙 활동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살 곳

나이 들어 누구와 어디서 살 것인지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살던 곳에서 계속 살면 익숙하고 편하지만, 지출 규모에 맞는지, 집 구조나 설비가 노년에 적합한지 따져봐야 합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적응 문제와 함께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자녀와는 가까이 이웃해서 살 것인지 아니면 거리를 두고 살 것인지, 건강, 가족의 경제적인 상황, 심리적인 상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정도를 생각하며 결정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만의 힘으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때, 전적으로 자녀의 도움을 받을지, 비용을 지불하고 타인의 돌봄을 받을지, 또는 전문 시설로 옮겨 갈지를,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가족들과 의논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비용 문제라든가 의견 차이로 인해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섯째, 죽음 준비

죽음 준비는 비단 노년 준비 항목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고, 남은 생을 정성껏 진지하게 살도록 이끌어 줍니다. 죽음 준비는 지금 당장 죽자는 게 아니고, 죽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며, 죽음을 미리 체험해 보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생각하고 기억하면서 지금 여기서 정성껏 잘 살아가는 일입니다.

2018년 2월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간 연명의료결정법만 봐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해 임종의 시간이 왔을 때 치료 효과 없이 임종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뜻을 밝혀 두도록 권고합니다. 예전이라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이 다 되었다고 모두가 동의할 만한 상태라도, 현대 의학 기술의 힘과 의료 기기의 발달로 그 시간을 한없이 연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음 준비를 통해 나의 마지막 시간과 내가 떠난 후의 일들을 생각하며 정리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한 번 내가 살아온 인생을 점검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가슴 속에 되새기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우선순위를 다시 한 번 깨달아 알게 됩니다. 결국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웰빙(well-being)과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웰에이징(well-aging), 그리고 존엄하고 품위 있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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